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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해

조회 수 517 추천 수 0 2016.09.23 1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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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해]


사람들, 그들 중에서도 종교인들의 한계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현상 중에는 신앙의 과정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자기와 뜻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줄기차게 추종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기독교에서는 교파로도 나타난다. 예를 들면 장로교는 칼빈을, 이름도 루터교나, 감리교나 성결교회는 역시 웨슬리를 따른다. 대부분의 교단들이 자기들이 추종하는 인물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성경이 말하는 신앙이란 그 성경이 보여주는 셀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다함께 모아져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물론 그 모든 인물들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확인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말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다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예수를 표현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역시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 한명만은 아니다.


즉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런면에서 성경에 나오는 그 많은 사람들이 나름으로 표현하고 있는 하나의 지적들을 함께 모아서 그 예수를 아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기에 성경은 어는 한 개인의 기사만이 아닌 그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최종 목표는 역시 그리스도인 예수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인 예수라는 사실이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나누는 이유다.


오해 방지를 위해 덧붙이자면 그리스도와 예수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르다. 예수는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예수가 아니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즉 예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개념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긴 그리스도라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저 인간인 예수를 믿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극단적으로 석가를 믿는 것이나 마호메트를 믿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종교인들이 오해하는 것은 이런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신의 실제적 현현을 가진다고 믿는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전설과 신화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성경이기도 하다. 또 이런 표현 자체가 오해를 살 수 있지만, 즉 예수의 탄생 모습을 비유와 상징으로 그 의미를 표현한 것임에도 그것을 문자 그대로 실제 역사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창세기의 창조를 보고 창조과학을 주창하듯 말이다. 


그런데 그도그럴것이 성경은 그리스도와 하나된 그리스도인이 읽어도 그 시각으로 그렇게 보이고, 반대로 율법주의자의 시각으로 읽어도 진리라고 보인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진리가 다르다. 내용으로의 진리인가 하면 문자로서의 진리라고 설명 할 수 있다. 문자적으로도 그 나름으로 고상한 의미로 받아 드릴 수 있다는 말이다. 바리새인들의 모습이었다. 문제는 그런 이해가 오히려 영원의 길을 막는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예수가 그들을 심각하게 의도적으로 지적하고 꾸짖었던 것이다.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둘 다 구렁텅이로 인도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그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을 택하여 은혜의 폭격을 가해 구원하는 것은 신앙이란 결국 그런 바리새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로 만들어지는 과정인 것을 보여 주심이기도 하다. 진흙으로 만들어지고 그 코에 그 숨이 불어넣어 지는 것이다.


문제는 상징이지만 그 생기 곧 그 숨이 불어넣어지지 않으면 그 진흙들은 종교를 만드는데, 그 종교가 곧 한 사람을 추종하는 특징을 가진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인 예수가 아닌 예수를 그 종교적 신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불교는 석가모니를 그렇게 인식한다. 그리고 그 또다른 그러나 같은 원리의 행태를 하는데 곧 종파들이 그것이다. 나누어진 교단들이다. 교파는 그들이 추구하는 한 사람이 있다. 즉 예수를 믿기 위해 칼빈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라는 의미를 알면 그저 예수나 부처로 족한데 그것을 모르기에 그 예수를 믿기 위해 서로 다른 추종자를 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교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불교에서도 서로 다른 종파가 나누어지는 이유다. 기독교가 장로교 감리고 성결교 침례교 등등으로 그렇게 여럿 나누어지는 것처럼 불교도 조계종이니 태고종 그리고 무슨 종으로 나뉘고 아예 원불교도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인 것이다.


그런 현상은 한마디로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임재가 분명하지 않은 것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불교로 말하자면 해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임재가 개인적으로 분명하면 내 시각이 아닌 그리스도 곧 영 곧 말씀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당연하게 종교를 초월하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출애굽이다. 그것은 불교적으로 설명해도 마찬가지다. 해탈하면 불교라는 종교가 별 의미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종교가 전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그런 종교들을 통해서 시작하고 거쳐가는 껍데기인 것이다. 열매가 자라려면 반드시 껍데기 안에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것 없으면 열메도 없다. 사람이나 동물의 출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것을 예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곧 창조 원리이기도 하다. 그것을 알면 이제 종교를 보는 시각이 전혀 달라진다. 분명 필요하지만 결국은 버릴 것이다.


교파들 안에서 자기들이 추종하는 믿음의 선조 또는 교조라는 존재를 추앙하고 그를 따르는 것은 좋으나 그런 태도로 온전히 예수를 알고 믿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그런 존재가 오히려 원치 않게 그 후손들인 우리들 때문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다.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나 역사 속에서 나름 깨달은 그런 분들은 전부가 다 긍정 부정으로 그 예수를 알게하기 위한 섭리임을 알고 제대로 알고 믿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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