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환원의 습격

조회 수 5390 추천 수 0 2009.11.02 16:58:12
관련링크 : mms://61.111.3.15/pwkvod/seoul/091101.MP3 
위 녹음 강연은
이길용 박사님이 "환원의 습격"이라는 제목으로 행한
종교개혁주일기념 특별강연입니다.
이전에 몸과 구분된 개념으로 받아들이던 마음이
이제는 뇌의 생리공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몸으로 환원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강연 제목이 "환원의 습격"이었습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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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3]웃겨

2009.11.02 20:29:55
*.152.197.249

이길용박사님, 강의 정말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명강의시네요...!! 특히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셨어요~^^
뇌과학의 발달이 신앙과 대치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오늘날 현대신앙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중요성을 한층 깊이 열어주는군요.
이길용교수님의 견해를 들으면서
습관적으로 작용하는 뇌기능의 일환으로서의 신앙경험을 탈피하려면,
탈 자아적인(?) 신앙경험 쪽에 더 촛점을 두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카톨릭 전통인 묵상기도, 피정을  통한 하느님 경험..
이런 것들이 좀더 개신교에 도입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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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이길용

2009.11.03 15:02:46
*.114.16.4

예 그렇게 볼 수 있겠죠.
근데 구태여 개신교 쪽에서 가톨릭의 묵상기도나 피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해요.
왜냐하면 개신교의 시작 자체가 바로 그러한 '하나님 경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지요.
루터의 첨탑의 경험이 그렇구요. 칼뱅의 하나님의 주권이 그렇다고 봐야겠죠.
다만 지금의 개신교가 그런 영성전통을 많이 소실, 혹은 변질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죠.

[레벨:18]눈꽃

2009.11.02 21:52:09
*.187.19.193

 

요 근래 이교수님이 강의해 주신 내용을 단편적으로 책을 통해서 접하고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이번 종교개혁주일 기념 특강 [환원의 습격] 을 듣고
넘 좋았습니다 시간 관계상 질답 시간을 못 가졌던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강의후 식사 끝나고 티타임을 갖고 싶었지만 너무나 많은 인기 때문에 계속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자리를 뜨신 이교수님~~
언제 한번 정말 듣고 싶은 부분 !
 결론의 뒷부분을 듣고 싶습니다

내친김에 이교수님의"이길용의 종교학 이야기"와 개인 블로그에 들어가 봤는데 와 ~보고가 그득하더라구요
열강해주신 이교수님 다신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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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병훈

2009.11.03 07:24:39
*.91.60.12

목소라도 대단히 좋으시고 내용도 재밌습니다..
과학 쪽에도 상당히 안목이 깊으신거 같네요..
처음에 제목에 환원이란 단어를 보고 자연과학에서 하는 환원주의적 방법론(물질을 원자단위까지 쪼개어 그 각각의 구성을 파악함으로 전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근현대 과학의 방법론)이라고 생각해서 뇌과학 인지과학이야기라고 하셔서 약간의아했는데 다른의미였네요..
멀다고만 느껴졌던 과학과 신학의 대화 or 대응을 알차게 설명해주셔서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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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이방인

2009.11.03 09:17:19
*.118.129.226

과거에 정신적인 영역으로 치부되었던 많은 부분들이 뇌의 활동으로 환원되어
설명될 수 있다고 하니 정신과 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신학 내지 인문학적인 관심에서 종교적인 수행에 보다 관심을 집중해야한다고
하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부분에서
보다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연결 고리에 대해 저의 이해가 부족해서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새로운 종교적 연구에 대한 시도에 대해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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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이길용

2009.11.03 13:26:11
*.114.16.4

예..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정신과 육체의 경계를 많이 허물고 있지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뒷부분은 좀더 여유를 가지고 설명했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져서 성급하게 마무리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하고픈 말의 요지는
정신과 육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기존 인문학이나 신학의 영역이 해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구요.
오히려 그것을 통해 관점의 전환이 가능한 또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다는 거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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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이방인

2009.11.03 23:13:31
*.118.129.226

처음에 든 생각은, 사실에서 당위를 추론하시는 듯하다는 점이었구요.
하룻밤 자고 나니 목사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가 이해가 되더군요.

그런데 교육의 경우로 말씀 드리면, 과거 논리학, 수학 등의 형식도야에 중점을 두었는데,
그 많은 부분들이 뇌의 활동으로 규명이 된다 할지라도
논리학이나 수학 등의 중요성이 간과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과거 정신영역이라고 불리운 부분들에 대해 과도하게 치중했던 부분들에 반해
여태껏 소홀히 했던 육체의 부분에도 관심을 함께 가지자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자연스러운데요.
쿵푸라는 말이 사실상 정신과 육체 양면의 도야를 아우르는 말인 것 처럼요.

목사님의 요지의 말씀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이나 인문학이 살아남아야할 이유들이 더욱 있을 것 같아요..
profile

[레벨:28]정성훈

2009.11.03 11:13:42
*.151.252.103


성경에서 말하는 통전적인간이 바른 것이군요..

같은 언어를 말하지만 소통이 어려운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각자의 메트릭스다.."

[레벨:28]첫날처럼

2009.11.03 16:17:36
*.54.79.126

강의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네요... ㅜ..ㅜ 미디어 플레이어가 뜨는데... 뜨고는 "볼수없다" 고 딱 뜨는뎅...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죠?
profile

[레벨:20]떡진머리

2009.11.04 16:37:17
*.54.186.199

무엇때문에 볼 수 없다고 하는지 자세히 알아야 겠지만 미디어의 경우 대체로 코덱문제가 아닌가 싶은데 네이버 등의 자료실에서 통합코덱 등을 다운받아 까시면 되지 않을 런지...

[레벨:5]퀄리아

2009.11.03 17:27:45
*.222.66.211

스스로 식물인간이 되기를 자처하는 인간도 있다'에서 뿜었습니다. ㅎㅎ

제가 어디선가 본 듯한 글이 있는데요. ( 출처는 기억이 안납니다. )
내용인 즉, 뇌과학자들이 사과를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는데,
시간상 사과가 떨어지는 사건이 먼저고, 뇌는 그 후에 반응 한다는 것 인데요.
그 순간이 워낙 짧아서, 마치 뇌가 명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뇌가 아니라면, 무엇이 ...
profile

[레벨:23]모래알

2009.11.03 23:52:37
*.232.97.185

이길용 선생님!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정확한 제목이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올 해의 최고 강의상??을 그냥 받았을리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ㅎㅎ

이 강의 듣기 바로 직전에 전 뉴욕타임즈에 올라온 동영상 하나를 보았는데
overlap 되는 부분이 있어서 어!  그랬어요.
Daniel Gilbert 라는 하바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의 동영상이었습니다.
2009 년 5 월 20 일 올라왔던 글  덧붙였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이 보면 어떨까 싶어서..

What You Don’t Know Makes You Nervous  By Daniel Gilbert 

Daniel Gilbert is professor of psychology at Harvard University and author of “Stumbling on Happiness.” More of his writing and videos of his appearances can be found at his Web site.


노래는 언제 들려 주시려나요?  오십견 극복의 방법으로 수영이 아주 좋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건강하게 지내시면서 좋은 강의 많이 들려주셔요.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20]떡진머리

2009.11.05 21:43:42
*.202.39.253

종교적 전통이 뇌를 무시하는 것, 뇌작업을 해체하려는 것, 의식의 세계를 해체하는 것, 의식적 자아를 해제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와같은 뇌 그 자체를 지각하려는 행위, 종교적 수련을 통하여 획득된 무엇이 또다시 뇌의 메카니즘에 의한 작용이 아니라는 것은 무엇으로 부터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인지요?
뇌 이외의 어떤 것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뇌가 없이도 가능한 과정인지요?
뇌를 해체하는 작업이 뇌 없이는 불가능한 수련이라면 이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닌지요?
고대와 근대의 철학자들이 던졌던 질문같지만 여기에서는 여전히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뇌가 세계를 불완전하게 인식.반영한다는 것이 뇌의 자체 메커니즘에 의한 부분이 존재하겠지만 사회적 경험과 실천의 문제로 부터 기인하는 것이 의미있을 것입니다.
제가 읽었던 책에 나오는 예를 들어볼까 합니다.
제 나이정도 이신 분들은 보셨을 만한 영화로 부시맨을 아실 것입니다.
그 부시맨이 가지고 있는 콜라병의 경우 그 부족의 부시맨A는 이 병을 마시는 콜라병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부시맨B는 병을 호두를 깨는 물건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시맨C는 이 것을 입으로 불어보고 피리로 생각하였습니다.
무엇이 옳을 까요? 물론 콜라를 잘 알고있는 우리들은 당연히 콜라병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콜라를 모르는 부시맨들이 이것을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 부족에서 호두까기로 사용하는 것과  피리로 사용하는 것이 더욱 유용하다면 그들은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사용할 것입니다.
이렇듯 뇌의 세계는 단순히 우리 신체의 운동만을 메커니즘에 의하여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행동을 관장하고 있고 이것이 어쩌면 더욱 의미있는 뇌의 작용일 것입니다.
이들에게 콜라병의 용도가 무엇이라고  말해주는 것 조차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경험이 그러한 그들에게는 콜라병의 용도는 모두 다 의미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콜라병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려면 그것으로의 유용성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더욱 유용한 것 이것이 가치를 얻어가는 것이고 인간의 의식은 그렇게 형성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한 유용한 과정이 증거되는 과정은 사회의 변화와 역사의 발전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이 속에 신의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종교적 체험이 번뇌와 고행을 통하여 해탈에 이르는 것 보다는 사회적 실천을 통하여 신의 의지를 깨우쳐 가는 과정과 지나온 역사속에서 이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profile

[레벨:100]이길용

2009.11.05 22:42:57
*.141.162.167

제가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서 간단하게만 말씀드릴게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종교라고 하는 문화체계는 일종의 밸런스 맞춤을 위한 문화적 시도라는 겁니다.
뇌 위주의 세계 재구성이 가져오는 존재론적 피곤함으로부터
스스로를 쉬게하게끔..
따라서 저는 특별히 뇌나 기타 등등 특정 기관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고 있다기 보다는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의 몸의 자기 유지 내지 보존작업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기에
'성급한 형이상학적 호들갑'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둬 보자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신경과학자들이나 뇌연구가들의 전지전능성에 경도된 듯한 의욕에
약간의 '찬물'을 끼얹고 싶을 뿐입니다.

[레벨:5]퀄리아

2009.11.06 13:12:32
*.222.66.211

말씀하신 유물론적 관점에서 출발하게 된다면,
종교의 소임과 목적은 진보하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콜라병과 다름없는 도구로 전락-환원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사회적 실천 즉 혁명이 불러일으킨 재앙은 말씀하신 역사가 잘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마르크스 이론가 이진경씨 같은 분들은 시스템을 바꾼다고 사회는 변하지 않는 다는 걸 깨닫고
들뢰즈의 내재적 사유로 침잠해 들어가지 않습니까?

결국, 개개인의 진보가 사회의 진보라는 결론을 받아들인다면,
관점을 역전시켜 거꾸로 세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과정중에, 예수님의 참모습도 오롯이 들어나리라 믿고 있고요.

사실, 수많은 기독교 비평가들의 이론은 기독교의 껍데기를 까는 일만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밝히 보일날이, 눈앞에 베일이 벗겨질 날이 오겠죠.

그리고, 뇌에 관련된 지식에 관해서는 푸코의 권력에 의한 담론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으로 그냥 무시하고 싶지만,
연구결과들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뇌에 대해서는 천천히 두고 봐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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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떡진머리

2009.11.06 20:17:51
*.202.39.253

저의 관점이 명쾌히 유물론적 관점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많은 유물론자로 부터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의 문제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실천이 통속적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을 이야기 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것은 들뢰즈의 욕망의 분열적 흐름일 수도 있으며 편집증적 욕망의 운동을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들뢰즈가 그리고 이진경이 내재적 사유로만 침잠해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천 개의 고원' 이후 거대체제에 대한 관심을 접었지만 '디알로그'에서 보이는 들뢰즈는 욕망의 분열적 흐름이 가질 수 있는 혁명적 사례 자체에 주의를 기울였고 자본 내에서의 혁명적 분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들뢰즈의 욕망은 스스로 역사를 구성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 이후의 역사는 우리들의 몫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어떤 대안도 체제를 구성하는 한 욕망의 분열적 흐름을 억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들뢰즈의 생각과는 다를 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물론 들뢰즈는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가 욕망의 분열적 흐름을 차단하는 의도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욕망의 분열적 흐름을 억압하지 않는 체제는 불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구성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민주주의 보다는 더욱 포괄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이에 대한 물음을 지속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재미있게도 콜라병에 대한 이야기는 이진경씨가 자신의 책에서 예로 든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님께서 말씀하신 침잠-저는 이 표현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에서 빠져나와 그의 표현대로라면 '노동의 인간학이 갖는 이론이나 이데올로기를 자본의 욕망안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욕망의 배치를 전복'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미-래의 맑스주의'   저자 이진경   출판사 그린비 참조
환원적 유물론자들의 뇌에 대한 생각이 예들에서 처럼 기계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뇌는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만을 즉자적으로 인식하거나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 조차도 정확하게 인식하는 가의 의심을 받고 있지만 말입니다.
가끔 우리들은 인류가 이룩해놓은 과학의 업적에 대하여 무시하거나 무지한 경우가 있습니다. 학문을 하는 인문학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닙니다. 인문학이 인간과 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인간에 대하여 침잠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변화를 인식하여야만 합니다.
여기서 과학을 이야기 하는 것은 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아주 오래전 양자학과 상대성 이론이 나왔습니다.
도저히 평범한 인간의 뇌로는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원자의 세계와 우주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핵의 주위를 돌고는 있으나 그 위치를 확률로만 이야기 할 수있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전자의 세계와 중력을 향하여 휘어진 시공간과 어떤 경우에도 일정한 속도로만 진행하는 빛, 아무리 빨리 달려도 끝에 도달할 수 없으며 어쩌면 지금 있는 자리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우주의 공간,  창세기에는 궁창이 있고 물이 있으며 땅이 있는 세상, 중세에는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만 지는 지구가 둥글고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않던 성직자들의 세상, 하지만 현재는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이 초끈이론으로 설명되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이 창조해 놓은 세상입니다.
뇌의 매커니즘의 문제가 세상을 인식하는 근본적 한계라기 보다는 사회적 실천-사회.경제적 활동과 역사적 행위 및 과학적 연구와 실험, 토론과 사유의 행위의 포괄적 의미-의 부족으로 부터 오는 한계가 오히려 더욱 근원적일 것입니다.
현대 과학의 결과는 개인적 뇌의 매커니즘에만 주목해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 입니다. 오히려 많은 인간들의 실천과 의미있는 행위들 그리고 인간간 지식의 주고 받음을 통하여 이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환원적 유물론자들이 걱정하는 매커니즘의 오류도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수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해결되지 않던  빛에 대한 고민을 아인쉬타인의 시공간 개념이 해결해 주었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뇌는 인식과 학습을 통하여 인간의 신체를 외줄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바늘을 던져 100미터 전방에 있는 개미를 명중하는 것 보다 더 힘이드는 우주선을 달에 쏘아올리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1조분의 1초로 측정이 가능한 원자시계를 만들어 인간의 감각기관과 이에 의존한 뇌로만은 인식할 수 없는 입자의 생성과 소멸을 측정해 내고 있습니다.
뇌가  실천과 생산을 통하여 이룩해 놓은 일입니다.
뇌가 그리는 야구공의 괘적에만 몰두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생체학적 불완전성에만 머문다면 환원적 유물론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우리는 초월적 무엇으로 만 신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레벨:5]퀄리아

2009.11.06 21:44:04
*.128.165.224

밑에 질문에서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여기서 해주시네요. 
약속 때문에 막 나가려던 참에, 잠깐 들어왔다가, 잘 배우고 돌아갑니다.
평안한 금요일 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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