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헨리 나우엔

조회 수 6753 추천 수 534 2006.10.30 08: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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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편지)

아우님 우리 주님의 은혜안에서 잘 계시는 줄 아네.
공부하는데 방해될 것 같지만 조금 도움이 필요하네.


내 주위에 '헨리 나웬'이라는 천주교 사제의 글에 감동(?)하여 매일 그의 글을 남에게 소개시키는 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런데 난 '헨리 나웬'이라는 분의 글을 몇권 읽었는데 도덕적으로 마음의 수양이 될지 몰라도 요즘 한국교회에 (개신,천주 할 것없이 영성이라는 말이 전부인 것 같네) 부는 영성이라는 열풍이 잘못된 것 같고 따라서 영성의 대가로 인정되는 '헨리 나웬' 이라는 사제의 글을 무분별하게 출판하는 출판사( 두란노,홍성사,가톨릭 계열 출판사)의 책임자들의 신앙적인 식견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 난 신학적인 안목이 부족하지만 아우가 고견을 한번 말해주게.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는지? 이니고 내 생각이 맞다면 어떤 의견을 제시해 주어야 '헨리나웬'의 글을 감동적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안 상하게 하면서 성경적인 길을 안내해줄 수 있을까?


요즘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수주의'(강남중앙침례교회 피영민 목사가 편저한 책)를 읽고 있네.그 책에서 소개한 벤자민 워필드의 '구원의 계획'과 윌리엄 커닝햄의'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원본으로 읽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네만 그럴 기회가 오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네.
항상 우리 주님의 은혜안에서 제수씨와 조카들이 평안하기를 기도하네.

(답변)



사랑하는 형님,

그 동안도 평안하신가요? 부족한 동생에게 질문하시는군요. 고견이라기 보다는, 아직도 천박한 저 자신을 보면서 답변을 드리기가 죄송한 마음일 뿐입니다.

하오나,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형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그 안타까워하심이야말로 올바른 영성의 발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성'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나 오용되고 혹은 남용되고 있는 현실임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저도 그런 현상을 너무나도 안타까워하고 있고, 그 현상이 너무나도 광범위한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오히려 연구가 늦어지는 중에 심화시키고자 하는 이유들이 그런 놀라움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합니다.

늦어지는 연구에 대해서 오늘 아침 갈라디아서묵상을 시작하면서 위로를 받는 중에 간단한 글을 올리고 나서야 형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헨리 나우엔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리라고 여겨왔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 영성의 대가로 알려지고 있는 것은, 그 동안 보수주의(혹은 개혁주의)신학에 기초한 신학자들이나 교회들이 마땅한 모습들을 보여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는 반동이라고 여겨집니다. 삶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비판은 오히려 식상할 수 밖에 없고 비판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판하지 않고(혹은 못하고) 있다고도 보여집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해야 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현대교회의 영성에 대한 열기는, 어쩌면 좀 더 거시적인 세계정신사의 흐름과 관계해서 설명해야만 좀 더 이해되기가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이 짧은 리플로는 그런 설명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지고 또한 형님께서도 그런 것을 기대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단지, 헨리 나우엔의 영성은 결코 기독교적이거나 복음적이거나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그가 죽기 직전에 써서 출판했던 책에서 분명하게 보여집니다. 그의 마지막 책인 Sabbatical Journey(1998년 Hard cover)의 51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Today I personally believe that while Jesus came to open the door to God's house, all human beings can walk through that door, whether they know about Jesus or not. Today I see it as my call to help every person claim his or her own way to God." 예수를 알든 모르든 모두가 하나님에게 이를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유일성을 부인하고 단지 "영성을 위한 영성"을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가 비록 예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코 성경 속에서 강조하고 있는 예수와는 다른 예수인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러한 그의 견해를 타종교인들도 간파하고 있어서 그 중에 불교인들은 헨리 나우엔에게 대해서 굉장히 동정심을 갖고 있고 또한 나우엔 자신도 그렇습니다. Here and Now라는 책에서는 이런 자신의 견해를 더욱 분명히 드러냅니다: "The God who dwells in our inner sanctuary is the same as the one who dwells in the inner sanctuary of each human being"(p.22). 그의 하나님은 결코 성경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고 그냥 모든 종교인들의 마음 속에, 아니, 비종교인들의 마음 속에라고 있는 그런 신적 본성을 기독교적 용어로 포장하였을 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기조차 합니다.

그가 강조했던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 사상의 핵심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헨리 나우엔은 노장철학, 특별히 장자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그 사상을 추구했었습니다. 그리고 사막의 교부들, 그러니까 신비주의명상가들을 사상을 추적했고, 카톨릭명상가들 중에서는 토마스 머튼같은 사람 그리고 데이야르 데 샤르댕같은 사람들의 삶의 태도들에 대해서 영향을 깊이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힌두교의 Eknath Eswaran같은 신비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기독교사상가 혹은 영성가라기보다는 기독교용어로 포장한 일반영성가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가 기독교용어로 포장해 있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현혹되어 있고, 바로 그것을 노리고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볼 때 가슴이 무척 아픕니다. 아마도 복음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체험이 천박한 것에서 유래한 분별력의 상실이 아닌가 진단해 봅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사도가 갈라디아서의 서론 부분에서 그렇게도 신속하게 갈라디아교회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서 다른 복음을 좇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긴 것에 주의해야 할 것인데, 바로 이 주의함이 없는 셈입니다. 이런 저의 진단이 교만하게 비춰지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랑하는 형님, 형님께서는 이 헨리나우엔의 글에 빠져서 현혹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조언하면 좋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것은 헨리 나우엔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참된 복음에 대한 소개야말로 올바른 길일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 '참된' 복음의 소개야말로, 혼탁한 한국교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에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 참된 복음인양 포장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저의 의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몇번 고국방문을 하는 중에 수많은 동료목사들, 혹은 선배목사들이 저의 회심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저 어떤 체험 정도를 한 모양이라는 식으로 반응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됨의 의미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숙고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조언할 것인가? 참으로 지난한 문제입니다.

형님께서 언급하신 벤자민 워필드의 글이나 윌리엄 커닝힘의 글들은 이런 신학적 왜곡현상들을 제대로 분별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임에 분명합니다. 문제는, 그런 글들이 전문적인 신학적인 용어들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혹은 번역이 거칠게 되어 있어서(워필드의 '구원의 계획'을 번역한 분이 어떤 분인지 형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더욱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실상인지라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하는데 그런 책을 소개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형님께서 그 책들을 원서로 읽으시는 것은 적극 추천합니다. 혹시 저로서도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에 대한 조언은, 저로서는, 그들이 헨리 나우엔의 사상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것을 분별하도록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우선적이라고 여겨집니다. 베뢰아사람들처럼 '신사적'일 것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얼마큼이나 예수 그리스도중심인가를 환기시키면서 그 예수 그리스도중심의 성경에서 헨리 나우엔이 얼마큼 벗어났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혹은 병행되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얼마나 "가장 고상"한 것인지를 알도록 권하고 또한 기도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깊은 영성이고 넓은 영성인 양 오해되고 있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법만이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태도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로만 말미암아 은혜를 입게 된 자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성이 가능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영성이야말로 가장 깊고 또한 가장 높고, 가장 넓은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8-19)라고 하였습니다. 부족한 저이지만, 저도 그런 마음을 가져보고 또한 그 기도에 동참하기를 소원해 봅니다.

형님과 저 안에서 역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영성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의 풍성함과 고상함을 더욱 흠모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형수님과 조카들에게 사랑의 안부를 부탁드립니다.

ps. 우선 간단하게 적겠습니다. 기회있는 대로 헨리 나우엔의 영성에 대한 비판의 글을 인터넷상에 올려볼까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ImagoDei 원문보기  글쓴이 : Ho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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