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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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적인 삶의 한 중심에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것들을 뛰어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라는 생각들이 자라나야 합니다."

판넨베르크의 도전적인 권면 앞에서,
일상을 뛰어넘기보다는 일상을 파괴하여 그 여파를 즐기고자함이 손쉬운 생각입니다.
피상적으로는 일상이지만 그 깊은 곳에 있는 현실이 존재함을 잊지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몫인 것 같습니다.
'기꼬'를 읽으며 '보이지 않는 현실성' 이라는 구절을 반복하여 대하며,
생각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군요.
아직은 보이지 않는 것과 이미 존재하는 현실성을 구분하는 중심축은 '시간'입니다.
어제는 갑자기 시간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여러가지 구분이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기서는 순수한 시간이라기 보다는 종말을 향한 한 축이 되는 시간과
인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말합니다.
시간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다면 저의 초보적인 생각에 대하여
여러 정확한 팩터들로 가위질하겠지만 일단 적어봅니다.

factor : 종말로 향하는 시간, 인간의 내면 혹은 영혼

1. 인간의 수동성
    종말로 향하는 시간을 매질(媒質)로 했을 때, 그것을 타고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일 때를
    말한다. 종말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망각의 상태에 해당한다.

2. 인간의 능동성
     종말을 향하여 선취하겠다는 입장이다시피 앞을 향하여 달린다. 그러나 종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오류를 범할 수 있겠다.

3. 인간의 피동성
     인간이 앞으로 가는 것 만이 아니라 종말의 미래가 다가오는 개념인데 시간의 vector 조절에
     다이나믹한 사고가 필요하다.

4. 인간의 합동성(?)
     인간이 시간에 대하여 이중나선처럼 맞물려가는 느낌이 강하다.

위의 네가지 가운데에 속할 것 같습니다. 일관성이 있다기보다는 삶에서 성향이 이동하기도 할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인간의 피동성'에 대한 생각으로 요즘 새롭습니다.
보이는 일상을 내가 이끌어가는 느낌보다는 보이지않는 다가옴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여하튼,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면의 작업들로 우리를 위로 끌어주시기만을 바랍니다.
수평이동이 아닌 우리의 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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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은 약손, 네 배는 똥배... 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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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09.09.05 23:11:03
*.83.93.130

다비아 여성 평신도 신학자가 탄생하겠군요.ㅎㅎ
사실, 저번주는 제가 주일설교시간에 말씀을 나누었답니다.
수련회때 공부한 골로새서 말씀과 틈틈히 기꼬공부를 하면서 같이 나누고 싶은 글들을
짧은 시간 같이 나누었는데,  예상외로 신선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더군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이문제 시인이 학생들에게 두가지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1. 오늘 새롭게 본 것에 대하여
2. 평소 익숙한 것들 속에서 새롭게 와 닿거나 깨닫은 것,

참 좋은 질문이라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요즘 저도 모든 사물에 대하여 오늘 한가지 새로운 것을 보려고 마음을 애쓰고 있답니다.
오늘 새롭게 본 것은 직원들과 깊은골짜기에서 점심 먹어면서
그 유명한 지리산 사과를 보고 사직도 찍었다니다.(역시 먹는 것이 새롭게 보이더구요)
그리고 익숙한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 것은 기꼬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느낌이 달리 오는 것...

어쨌든 유니스누님의 신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유니스누님 만세^*^

덤어로 지리산 사과 감상해 보시죠
S1035165.JPG S1035172.JPG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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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09.09.07 10:34:29
*.104.196.82

 탐스러운 사과를 보니 입안에 침이 고이는군요.
신학적인 글.....ㅡㅡ;
달팽이님께서 언급하신 시인의 '새로움'에 대한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한편 생각해보면 왜 '새로움'을 추구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이 생기는군요.
저도 그렇고 그 시인도 그렇고 모든 인간이 그런가요?
'익숙함'을 추구하는 좋은 권면은 없을까요?   ㅎㅎㅎ
풍성한 수확의 계절에 바쁘신 달팽이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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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9.09.07 16:04:55
*.120.170.243

와, 오랜 만에 보는 홍옥 사과군요.
저게 정말 토종 사과이죠?
홍옥은 수분이 많은 종이에요.
입안에 침이 도네요.
그림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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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사띠아

2009.09.07 04:47:26
*.173.252.170

아 기꼬!
어제부로 인도 다비아 기꼬공부 모임을 종강하였습니다.
델리 Book Fair 휴게실에서 만나서
짧게 그러나 포인트 분명하게 기독교 윤리와
한국의 기독교의 미래, 남북통일은 구원이다.
그렇게 매듭을 지었습니다.
루비님이 아이스크림으로 책걸이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올드델리팀은 전철로
저는 오토릭샤로 각자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탈도 많고 사연도 많았던 기꼬 공부
그래도 그렇게 함께 했던 시간들
내용을 다 잊어 버렸으니
언젠가 생명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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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09.09.07 10:44:38
*.104.196.82

사땨님~
와, 대단하십니다.
그 두꺼운 '기꼬' 스터디를 마치셨다니요.
저는 읽다가보면 눈물이 나는 곳도 있더라구요.
이런 딱딱한 책에 왠 눈물이...ㅠㅠ
델리라는 지명을 들으니 저는 대학로의 커리전문 집이 생각이 납니다요.
그 집이 맛있었기 때문에 델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군침부터...ㅋ
더운 곳에서 사땨님의 대장정의 마무리를 축하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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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9.09.07 16:22:03
*.120.170.243

눈물 나는 대목이 어딘지 알만 한데요.
가끔 내가 노랫말이나 시를 읽었는데,
그 언저리에서 뭔가 전달이 됐을 것 같군요.
그건 그렇고,
위 꼭지글에서 수동성과 피동성이라는 단어는 비슷한 것 같은데,
좀 구별되는 단어가 필요하겠군요.
시간은 하나님의 오른팔이 아닐까요?
그 팔을 당해낼 피조물은 하나도 없네요.
그건 또한 은총이기도 하구요.
이 슬픔, 이 절망을 시간이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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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09.09.07 18:37:27
*.104.196.82

목사님, 저도 '수동과 피동'에 대하여 좀 고민했습니다.
피동법에는 화자가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과
결과를 바라는 화자의 의도가 더해지는 것..이렇게 있다는군요.
그래서 저는 전자의 피동을 수동으로 표현을 하기로 했는데
결국은 무리이군요...ㅡㅡ;
아..허접합니다.
수동성 - 인식이 없이 종말로 가지는 것(순방향)과,
피동성 - 종말을 인식하는 자의 순방향과 종말이 다가오는 역방향의 느낌(결국은 양방향이군요,)
으로 구분해보았습니다.

'기꼬'에서 눈물나는 대목에
시나 노랫말은 없던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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