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맑스와 바르트

조회 수 2609 추천 수 30 2005.04.29 0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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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머리 속까지 더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목사님도 더우셨는지요?
그래서 더운 질문하나 올립니다. 아니 질문이라기보다는 목사님의 견해를 듣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맑스가 <경제학 비판>의 서문에서,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그의 의식이 아니며,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을 에리히 프롬은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사상이 그 사회적 존재를 형성한다고 믿고 있어도, 사실은 반대로 그 사회적 현실이 사상을 형성 한다.”
   이를 바르트가 표현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진리 인식체계와 깊은 관계가 있지 않은가(?) 하는 엉뚱한(오늘 같이 뜬금없이 더운) 생각이 들어서 질문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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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5.04.29 13:52:50
*.249.178.23

허정수 씨,
날씨가 덥다고 인사를 주면서, 더 덥게 만드는군요.
유럽 정신사의 세 거물인 맑스, 프롬, 바르트를 중심으로
뭔가를 말해보라는 요청은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논술보다 더 골치 아프네요.
맑스가 이렇게 말했나요?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그의 의식이 아니며,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존재'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직역이어서 이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군요.
'인간존재'는 아마 독일어 'Menschsein'의 번역이며,
'사회적 존재'는 'Sozialsein'의 번여기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존재라는 독일어를 무시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니까 맑스가 했다는 위의 문장은 아래와 같은 뜻이겠지요.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그의 의식이 아니며, 오히려 사회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
글쎄요.
인간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어떻게 단정적으로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생각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시대정신의 소산이라는 말은 옳습니다.
그렇다면 사회가 결국 인간의 인간됨을 결정하는 기초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유물론적 변증법을 주창하는 맑스다운 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생각이 늘 사회로부터 결정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네요.
수도승들의 삶은 철저하게 사회로부터 격리되면서도 어떤 근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 수도승 전승마저 나름으로 사회적 산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인간을 결정하는 요소는 심층적 의식과 사회가 변증법적으로 작용하는
그 어떤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프로은 맑스의 주장을 그대로 추종했다는 말인가요?
위에서 인용된 문장만 보면 그런 것 같군요.
내가 잘 모르니까 그건 덮어두지요.
맑스와 프롬의 주장이 바르트와 연결될지 모른다는 허 선생의 '엉뚱한' 생각은
옳은 생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르트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진리 인식 체계라는 게 무언가요?
바르트의 하나님 나라 개념을 말하는지,
아니면 바르트의 신학적 인식론을 말하는지?
다른 신학자와 마찬가지로 바르트도 하나님은 무엇무엇이다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엇무엇이 아니다 하고 말한다고 보아야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가시적인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등등....
만약 맑스와 프롬의 인식론이 변증법적이라는 관점에서 바르트와 유사하다고 본다면
이건 옳은 말입니다.
개인의 의식과 사회적 환경이 '정반합'의 논리로 발전하는 것이라면
결국 바르트도 기본적으로는 그런 변증법의 틀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르트는 결코 사회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의식이나 사회환경이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지배당할 뿐이지요.
물론 여기서 개인과 사회의 역학관계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오늘도 역시 덥네요.
잘 알지도 못하는 걸 쓰느라 더 덥군요.
이만.
깊고 넓게 생각하고 질문하고 대화한다는 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활동이니까
허 선생이 가는 그 길을 계속 가보세요.




[레벨:5]이신건

2005.04.29 15:44:35
*.105.144.162


바르트의 하나님 나라 이해와 바르트 신학과 맑시즘의 관계에 관해 상세히 알기를 원하신다면, 아래의 글을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1. 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
target=_blank>http://sgti.kehc.org/myhome/system-theology/9.html


2.동서를 오간 평화의 비둘기, 칼 바르트
http://sgti.kehc.org/myhome/who-i-am/book/ideology/4-2.htm


[레벨:7]허정수

2005.04.29 23:52:05
*.115.41.172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역사를 인간의식의 활동인 변증법적 지양으로 설명하면서,
그 지양활동의 대리자로서, 역사를 관통하는 절대이념,
즉, 이성의 교활성(Die List der Vernuft)을 개입시킵니다.
이런 헤겔의 ‘이념의 천상’에서 맑스는 ‘인간 활동의 지상’으로 역치시킵니다.
프롬은 여기서 헤겔과 맑스의 결정적인 사상차이가 난다고 맑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의
한 문장을 인용합니다.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
인간중심에서 물질중심적인 인간이해로 세계를 정립시킵니다.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그의 의식이 아니며, 오히려 사회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

여기까지에서 멈추고,
저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에 바르트가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을 끌어와서 ‘하나님의 계시’를 설명한다면
어떠할까하고 말입니다.
헤겔의 절대이념을 유일의 중재자로서 예수그리스도로 정치시키고,
맑스의 물질중심적인 인간이해를 ‘하나님의 계시’로 표현해서 다음과 같이 적어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며, 절대타자인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 인식이 가능하다.”

이목사님 감사합니다. 정독해 보겠습니다.
정목사님 더우셔도 넓은 이해바랍니다.
성령의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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