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궁금증...

조회 수 2026 추천 수 18 2005.05.30 12:17:00
관련링크 :  
목사님.
안녕하신지요?
따뜻함이 담겨있는 답글에 저 또한 무진장 감사합니다.

목사님 한가지 궁금하것이 있어서 또 다시 들렀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지난 5월 기독교 사상에 목사님께서 기재하신
"설교 비평" 글 중에
"신학적 설교" "신화적 설교"에 대하여
조금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주 통쾌한 기분을 갖게하는 강한 글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바쁘신줄 알면서도 궁금증에 몇자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 저는 현재 포항 해병대 군교회에서 민간사역자로 사역중인 새내기 목사입니다.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5.05.30 14:55:00
*.97.233.82

목사님이시군요.
'신화적 설교와 신학적 설교'에 관해서는
'샘터교회' 메뉴 81번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신화와 신학의 관계에 관해서 글을 쓰려면
신학 석사 학위 논문으로 충분할 겁니다.
혹시 그런 논문이 나왔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방대한 주제를 여기서 간략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방향만은 잡을 수 있겠지요.
설교의 텍스트인 성서에는 신화적인 요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단순히 에덴설화, 노아홍수 설화 같은 것들만이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든 삶의 이해와 습관, 윤리 등등,
이런 모든 것들도 역시 신화적인 요소들입니다.
물론 신화라는 말을 고대인들의 미숙한 세계관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점에서 현대의 우리보다 고대인들이 근원적인 세계에 관해서는
훨씬 지혜로웠습니다.
다만 그들은 그런 영적인 지혜를 '신화'의 형식을 통해서 해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신화는 그 당시의 세계관이며 과학입니다.
요즘 황우석 박사가 연구하고 있는 배아복제와 줄기세포도 역시
오늘의 신화입니다.
앞으로 5백만년이 흐른다음에는 결국 신화가 된다는 말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적인 인식과 통찰이 신화의 방식으로 서술된 게 성서라고한다면
그 성서를 해석해야 할 설교자들은 그 형식이 아니라 그 인식과 통찰에 접근해야합니다.
신화라는 세계관은 시대에 따라서 변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존재양식이라 할 영의 활동에 관한 우리의 경험 자체는
늘 진리로 남아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결국 신화적 설교는 성서 기자들의 영적인 통찰과 그런 해석의 근본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시대의 세계관적 형식에 머물러 있는 설교입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세계관은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처럼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요.

신학적 설교는 무엇일까요?
앞에서 말한 신화적 설교와 반대의 설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세계관과 풍습과 윤리 안에 활동하는 영의 실체를
오늘의 우리의 삶에서 새롭게 해석해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우리는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인지 오늘 우리가 인식하는 인문학적 토대에서 풀어내야 합니다.
신학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하고 있듯이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아가던 삶의 형식을 흉내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 자체, 혹은 그의 계시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 사이를 구별하지 못할 때
우리는 구약 텍스트를 일종의 규범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라지고 그 껍데기만 만게 되는 거죠.

두서가 없었습니다.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성서 텍스트에 하나님은 갇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명의 신비를 여전히 다 모르듯이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따라서 사람이 인식할 수 있은 한도 안에서
자기를 계시하시는 분이지 완전히 자기를 드러내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구원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생명을 모르는 데 구원을 알 수 있나요?
아마 목사님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데, 구원을 모른다니 한심하군."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것과
구원의 실첵가 무엇인지 아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좀 깊이 생각해보세요.
아직 우리는 시간도 모르고 공간도 모르고, 존재도 모릅니다.
이런 궁극적인 어떤 것에 관해서 여전히 모른채
구원을 실증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의 진리가 희미하다거나
혹은 다원주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창조자이며 세계심판자라고 한다면
고대 이스라엘의 신화적 세계표상이 갇히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 하나님을 오늘의 용어로 새롭게 해석하는 게 곧 신학적 설교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7741 정용섭 목사님 감사합니다. [2] [레벨:0]김기정 2005-05-11 2018
7740 늘 좋은 가르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 [레벨:0]도무광 2005-05-15 2104
7739 박용현 전도사! [1] [레벨:100]정용섭 2005-05-15 2329
7738 말씀과 삶 받아보고 싶습니다. [2] [레벨:0]강현수 2005-05-17 2303
7737 어제 불렀던 [3] [레벨:0]강현수 2005-05-18 2215
7736 스트리밍 테스트~ file [3] 이길용 2005-05-18 3345
» 궁금증... [1] [레벨:0]김기정 2005-05-30 2026
7734 이런저런 이야기 [3] [레벨:0]강현수 2005-06-02 1819
7733 수동적 적극성 [2] [레벨:0]이세란 2005-06-03 2459
7732 키 큰 나무숲에 흐르는 깊은 강물 [2] [레벨:0]이병만 2005-06-03 2383
7731 스킨을 바꾸었습니다~ [4] 이길용 2005-06-04 2044
7730 평신도 아카데미에 다녀왔습니다 [1] [레벨:0]박석원 2005-06-08 1924
7729 결근계(결석사유서) ^^ [3] [레벨:16]홍종석 2005-06-08 2289
7728 당혹스러움 앞에서... [3] [레벨:0]조기성 2005-06-11 2258
7727 성서 영감설에 대한 역사적 변천과정을 세밀하게 살... [1] [레벨:0]여병찬 2005-06-16 2426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