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조회 수 1819 추천 수 18 2005.06.02 12: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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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슬픈 기사를 보았습니다. 제 큐티노트엔 가슴아픈이야기라고 적었습니다. 그것은 한 가족이 한강에서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었습니다. 아빠(46)와 아들(10)은 죽고, 엄마(44)와 딸(11)은 살아남았습니다. 이유는 부도 이후의 생활고였습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오히려 저를 타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이렇게 가슴아프게 다가오는건 무엇때문일까요. 이들은 낮 12시에 한강 둔치를 찾아 밤 12시가 넘어 한강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이들은 하루종일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아이들은 각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버지가 먼저 들어가고 뒤를 따라 어머니가 두 아이를 안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들이 발견되었을 때는 둘은 죽고 둘만 살았습니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이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채권자도 직원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 저희 잘못입니다. 정말 가슴 아픈 것은 남편과 아이와 같이 가지 못한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나님의 따스한 돌보심이 떠난 가족에게 남은 가족에게 함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솔직히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죽으라고 해도 죽을 용기가 없습니다. 나에게는 없는 용기, 곧 죽음을 택하고 그것에 진짜로 손 내미는 그 순간, 그 찰라의 용기가 이들에게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말씀과 삶' 6월호 설교비평(15쪽)에 기도는 영적인 실제를 향해 촉수를 내미는 것이라고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죽으러 걸어들어가는 그 순간(혹은 그것이 다른 죽음의 순간이라고 할지라도 그 찰라, 그 순간)이 죽음을 향해 촉수를 내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전혀 내용과 다르게 엉뚱하게 가위질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읽는 순간 간밤에 읽었던 촉수를 내민다는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촉수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 순간, 생과 사의 현저한 갈림길 그 찰라의 순간에서조차도 촉수를 거두지 않았던 이들의 크나큰 아픔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왜 그들의 아픔을 버려두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이 믿지 못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지난 시간의 내용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지지난 시간에 있었던 통찰력의 결여에 대한 반박(?)으로서의 저의 믿음론(?)을 조용하게(?) 잘 깨주었습니다. 이들에게 믿음은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패러다임 쉬프트의 부재로 인한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공부 후에 이루어지는 질문과 논의가 치기어린 어떤 것으로 보여질까 염려됩니다. 자랑을 일삼기위함도 아니요, 뽐내기 위함도 아닙니다. 그런 철없는 나이는 스스로 지났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그렇게 보였다면 저의 수련의 부족이라고 봐주십시오.

'줄기세포 시대 앞에서'란 칼럼을 읽으며 기독교윤리를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사고가 없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어디까지가 생명에 관한 하나님의 고유권한을 침범하는 일인지, 나는 줄기세포 그리고 배아복제에 대해 찬성할 수 없는지 혹은 찬성할 수 있는지 오래오래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다음은 이번 말씀과 삶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구절중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기에 개량주의가 교회개혁의 선봉장으로 자임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향한 방향전환인 '메타노이아(회개)'마저 남을 교훈하기 위한 기회로 이용되는 것일까?"(18쪽)


항상 좋았지만 이번 설교비평은 너무 좋았습니다. 참고했던 설교집을 사려고 인터넷서점을 뒤졌더니 아쉽게도 나오지 않네요. 절판이거나. 빌려주시면 잘 읽을텐데^^

유희탁 목사! 받기만하고 아직 안읽었으면 빨리 읽으시라^^  






[레벨:6]유희탁

2005.06.02 18:18:59
*.230.133.221

왜 저를 태클거시는지. 그냥 냅두시죠...
광야로 내 몰린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셨네요.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어야만하는,
그 때 아무도 그들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는 것도 그런 것이겠죠...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사지로 내 몰아야만 하는 이 현실이 무섭기만 할 따름이죠.
오늘 나의 손이, 말이, 생각이 그들을 사지로 몬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가슴 아픈 사연을 나눌 수 있어서 그리고 다시한번 신앙의 걸음을 위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5.06.02 23:45:01
*.249.178.20

강 목사님,
우리 인문학적 성서읽기 모임이
강 목사님 부부의 적극적으로 참여로 훨씬 활기가 넘쳐납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특히 가족 동반으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앞에서
나는 유구무언입니다.
아직 살아있는 내가 그들의 생각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고,
판단할 수 있겠어요.
죽음이 두렵다는 말은 솔직한 겁니다.
그것의 극복은 다른 데 없습니다.
생명의 본질에 관해서 새로운 생각으로 들어가야 하겠지요.
그 새로운 생각이라는 건 자기 주관성을 극복하고
전체로서의 생명을 인식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이 곧 전체 생명이겠지요.
이 땅의 현실에서는 자아, 자기, 주체성이 너무 강하게 작용합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게 영성일지 모릅니다.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는 의미도 이런 거겠지요.
하나님과의 동일성을 회복한다는 것도 그런 의미이구요.
단지 교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인 차원에서
부활의 생명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내 영성에 내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지요.
하나님, 생명, 세계, 시간, 존재, 종말, 구원, 하나님의 나라, 해방, 자유 등등,
이런 모든 개념들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층적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세계와의 통전화를 통해서 우리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다는 대명제도 이런 구도에서 해석되어야하구요.
임영수 목사님의 설교집은 다음 만났을 때 빌려드리죠.

[레벨:6]유희탁

2005.06.04 07:34:34
*.225.129.145

어떤 이는 살아남은 우리들을 가리켜 자살 생존자들이라고 하더군요.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교육이 교회안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이런 추세라면 더 많은 자살자들과 더 많은 자살 생존자들이 양산될 테니까요.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의 그림자를 이겨낼 수 있는 생명력을 그들이 갖게 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우리의 힘을 줄이고 하나님의 힘을 늘리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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