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발행인과 저자의 서문

스탠리 존스 조회 수 3166 추천 수 0 2009.09.01 04:55:17

발행인 서문

모한다스 K. 간디의 생애를 그린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역사적인 문서로서 대중에게 선사된 것입니다. 이 책은 간디의 삶과 메시지의 의미를 도발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계의 저명한 복음주의자인 E. Stanley Jones. 박사가 쓴 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존경 받는 기독교지도자가 본 간디의 삶에 대한 평가가 있습니다. 인도인과 그들의 희망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그들과 함께 살며 체험하고 또 간디의 친구였던 그는 이 책을 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자의 해석 전부를 받아들이지 않을지라도 그가 살던 시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위인 간디를 다시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띄워 줄 것입니다.. 

이 책은 간디의 메시지가 수식용이 되고 그의 이름이 종종 정치인의 입에서 공허하게 남발될 때 저자는 우리에게 간디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조국의 아버지를 불명예롭게 하는 것보다 더하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더하여 우리와 우리의 자녀, 그리고 세계가 진리의 훈련 아래 살아가는 삶의 값어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간디의 삶은 세상만민에게 진리를 받아들이며 다른 이들의 죄악을 감당하고자 결단한 한 사람 또는 다수에 의해 세상이 서로가 화목하게 되고 사회가 변화되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관하여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구름떼 같은 선남선녀들이 이 같은 삶을 살고자 선언하지만 애석하게도 단지 몇 명만이 이 능력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더하여 인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재판하게 됨을 발행자로서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저자 스탠리 존스 목사의 서문


이 책은 나에게 쓰기가 만만찮은 책이었다. 미국에 있는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쓰도록 연락이 왔을 때 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곁으로 제쳐 두었다.. 난 결코 누구의 요구에 의해 책을 쓴 적이 없었다. 나의 내면에 꼭 써야 한다는 강렬한 욕구가 일어나기 전에는 결코 책을 쓰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해서는 그런 욕구가 없었다.

나는 서로가 가지는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다년간 마하트마 간디를 신뢰하고 사랑해왔다. 그가 주변의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에도 간디편에 서서 그를 옹호하고 그를 이해하는 편에 섰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복잡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해석한다는 것은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며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단순한 성격을 가졌으나 그 단순성 가운데서 묘한 복잡함이 숨어 있었다. 당신이 그를 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그를 안 것이 아니다. 이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사람을 헷갈리게 하고 당황하게 하는 일이 복병처럼 놓여 있다. 복잡함으로 어우러진 다양한 측면가운데 통일된 성격, 단순하고 불가항력적인 단순성이 생겨난다. 어떻게 내가 이를 해석하랴? 이것은 마치 에베레스트산을 해석하는 것과 같다. 다양한 요소가 이 산을 이루고 있다. 에베레스트 산맥이라는 하나의 장엄함으로 서있으나 거기에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 크레바스, 깊은 계곡과 평원이 있다. 내가 마하트마의 성격 중에 버금가는 일에 붙잡힌 채로 그것을 확대하여 마하트마가 가진 장대함, 으뜸의 정수를 보지 못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왔다. “마하트마 간디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책이 있는데 이것은 간디가 지난 수 년 동안 선언한 말과 행위의 불일치성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철저하게 미시적 시각에서 분석된 실험이었는데 그 결과 참 인간 간디를 잃어 버렸다. 현미경으로 그를 면밀히 본 후에 반드시 그의 진정한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망원경으로 멀찌감치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가 시대의 배경을 등지고 서있다면 그 배경과 함께 그를 해석해야지만 그 사람의 의미와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부수적인 말과 행동에 집착하여 그의 가르침이 가지는 의미의 핵심을 잃어버린다. 서구에서 온 저명한 사람은 ‘Young India’에 기록된 두개의 간디의 선언에 묘한 집착을 보였다. “힌두이즘의 소 숭배는 내 의견에는 인도주의 혁명에 공헌한 인도 특유의 것이다. 카스트제도 법의 발견은 진리에 대한 부단한 추구의 괄목한 결과이다.” 비평가는 말하기를 “마하트마 간디는 암소숭배와 카스트제도를 힌두이즘의 독특한 공헌으로서 도출해 내고 있다. 그 같은 사람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바랄 거리가 있겠는가?” 허나 당신이 수년 동안 마하트마 간디를 지켜볼 때 그것이 암소 숭배가 아니고 그를 붙들고 빚어내고 만들어낸 신에 대한 경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암소는 연민의 시다”라고 말하고 “그를 보호한다는 것은 곧 말 못하는 모든 피조물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게다가 그에 의해 해석된 바는 그의 사상이 암소 숭배와는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현존하는 암소 숭배의 아이디어와 카스트제도는 원래 갖고 있는 나의 의견의 캐리캐처이다.” 간디는 카스트에 대해서는 그의 실천적인 삶을 통해 카스트를 없애는 것이 그의 주된 사상임을 주장한다. 그는 일생동안 카스트의 모든 규칙을 부수고 이 제도를 초월하며 불가촉천민을 그의 양녀로 삼고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카스트의 제도를 무너뜨리고자 애를 써왔다. 마하트마 간디에게 있어서 카스트는 그것에 관해 그가 무엇이라고 말하든 없어져야만 할 것이었다. 간디는 그의 말에 토를 다는 이들을 지속적으로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 내에 있는 불일치를 뛰어넘었다. 그래서 내가 변죽을 울리다가 중심부를 놓쳐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에 대한 글쓰기를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망설임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40년 동안 인도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두 가지 투쟁, 즉 정치적, 종교적 문제에 있어서 서방과 투쟁 가운데 서 있었다. 인도는 인도 스스로 실수를 할 수 있는 권리와 인도 자국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정치적 자유를 원했다. 그리고 나아가 인도는 외래 신앙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의해 빚어지고 이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도 자신이 가진 종교로 이루어지는 인도의 영혼을 갈망했다. 힌두이즘속에는 현대 힌두 심상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많은 일이 있었으나 최소한 인도에 속했기 때문에 그것을 감싸 않았다. 그들은 선과 악을 방어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그 정치-종교 전투의 최선봉이었다. 그는 그들의 소리였다. 

나는 일찍부터 그의 정치적 투쟁에 있어 그의 편에 섰다. 몇 년 동안 나는 무척 신중했다. 독립을 위한 투쟁이 계속되는 수 년 동안 인도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처신했다. 나는 투쟁의 정점에 인도의 정치 수장이자 국무위원이었던 제임스 그레랄에게 가서 나의 의견을 표명했다. “나는 인도 독립의 도덕적 정당성을 믿는 바요. 그리고 국가 지도자들과 그들의 목적에 대해서도 동감하는 바요. 그러나 나는 내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정치에 만큼은 그렇게 참여하고 있지 않소.” 나의 체류는 허용되었다. 그러나 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난 경련을 일으키는 신중성을 집어 던져 버리고 나의 마음을 드러내고 싶었다. 나는 서방에서 한 많은 연설에서 내 말하고 싶은 대로 했다. 이것 때문에 1944년에 인도에 돌아오길 원했을 때 비자 발급이 거부되었다. 비자를 신청했을 때 나는 말했다. “나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나의 명예를 걸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인도가 자치 정부를 할 도덕적 권리가 있음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정당함을 원했다. 내가 그 자유를 허용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이슈에 대해 인도 외부에서 나의 주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특권이었다. 나는 정치적 독립에 대한 투쟁의 방법과 동기에 있어 원천적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서방과 종교적인 투쟁은 나에게 있어 더 심각한 문제였다. 인도가 총력을 기울여 자유를 얻고자 투쟁하고 있을 때 나는 복음주의자였다. 내가 보일 수 있는 모든 것은 제국주의의 종교적 측면에서 볼 때 서방의 지배와 연계되어 있었다. 나는 서방을 통한 어떤 매개체로부터 자유함으로 말미암아 나의 권리를 가지고 얽매임을 푸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자 애를 썼다. 나는 우리 동양이나 서양이나 동일하게 그의 필요성을 깊이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자 노력했다. 나의 실제적인 시간의 분배, 즉 6개월 미국, 6개월 인도에서의 삶은 우리의 공동된 필요성에 대한 나의 신조의 실제적인 적용이었다. 나는 둘 다 선교 현장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얼마나 우리가 얽매임을 푸는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우리의 위치를 분명히 하고자 애를 쓰는 것과는 상관없이 부딪침은 항상 있어왔다.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는 이의 제기의 목소리를 높였다. ‘Young India’ 의 면들은 논쟁의 장소였다. 다른 편집물들은 마하트마를 추종하면서 그의 논쟁에 더하여 그들 자신의 이견을 발표했다. 나의 공식적인 만남에서 이 일들은 표면으로 떠올랐고 때론 쓰라린 만남이 되었다. 그 격돌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그 당시 인도에는 공동사회 대표제가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 공동체의 숫자가 정부 대표 숫자를 좌지우지 하는- 개종은 한 공동체의 권력을 키우는 일이었고 나아가 다른 공동체의 정치권력을 누르는 일이었다. 즉 힌두의 정치적 힘이 개종, 특히 대중이 한꺼번에 개종하는 것에 위협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 30년 동안 나는 그 충돌의 예민한 핵심에 살았다. 그것은 나에게 쓰라린 상흔을 남겼다. 반복하여 나는 마하트마 간디의 위치에 대해 동의치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10일 동안 사바르마띠 아쉬람에서 이른 아침 그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열었다. 거기에는 깊은 불일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불일치 가운데서 무엇인가가 나를 그에게 붙들어 매었다. 그의 지성이 종국적으로 나에게 동조할 수 없게 하더라도 나는 그에게서 사물의 올바른 데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그가 틀렸다고 생각했을 때라도 그는 옳게 되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정신적 과정을 초월하여 사물의 올바른 면으로 나아왔다. 

인디안 내셔널 콩그레스 의장이었더 아차리야 끄리팔라니는 어느날 이점에 대해 나에게 말했다. “마하트마의 잘못 되었다는 때가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때보다 더 정당하다.” 그것은 깊은 통찰력이었고 그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이다. 그의 영과 놀라운 집중력은 과거 정신적 우회를 지나게 하였고 거의 오류 없이 그의 목적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의 위대한 영혼은 정신적 한계를 흡수할 수 있었고 심지어 그들로부터 어떤 위대한 것을 만들었다. 우리들중 많은 이들이 우리의 작은 정확성에서 옮음을 찾으나 진척은 미소하다. 그러나 마하트마는 많은 일에 부정확해보이고 부조화성이 크나 총체적인 면에서 정당하다. 그의 일의 결론은 항상 선으로 귀결되었다. 브라우닝의 시가 이런 그의 모습을 전적으로 잘 나타내주고 있다.

나는 이르리 어느 시간, 순환의 처음의 어디에 나는 묻지 않으리….
어느 때, 하나님의 좋으신 시간에 나는 이르리

그리고 마하트마가 부조화스럽다는 이야기는 정정이 필요한데 왜냐하면 이것이 그가 마치 커다란 사상의 잘못을 하고 있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의 감탄할 만큼 청결한 마음과 양식, 그리고 어휘를 생각할 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들은 그의 내부 영의 표현이다. 그의 의도가 단순하고 청결했기에 그는 명백하게 사고했다. 그는 지적으로 명석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그의 도덕적인 의도에 근본을 둔 직관은 자동적으로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게 하였다.

이 모든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 작은 거인의 발에 정직한 찬사를 드리울 수 있다고 결론에 도달한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 일을 마음을 다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0여 년 동안의 충돌가운데서 진정어린 호의를 갖고 있는 복음주의자에게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작은 승리가 아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나를 정복했다. 이 책은 그 정복의 표식이다. 마하트마 간디는1938년 하리잔(간디가 운영하던 잡지-역자주)에 이렇게 썼다.

물론 지성적으로 심지어 서방으로부터 온 많은 사람들이 폭력의 무가치성에 대해서 깨달아 오면서 과연 비폭력 운동을 시도할 값어치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스탠리 존스 박사는 그의 최근 ‘곤경에 처한 중국의 간디식 해법’이란 기사에서 성공적으로 채택될 비협력의 다양한 형식들을 진지하게 논의했다. 스탠리 존스 박사가 비협력에 대해 별로 신뢰를 두지 않는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진지하게 이것을 비폭력 해법이라고 제안하면서 유럽에 가서 평화를 외치라고 나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별로 신뢰를 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내가 오늘날 서있는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걸어야했던 먼 여로를 표현한다. 처음에 내 안에 있던 상흔들은 충돌로부터 상처보다 더 큰 어떤 것을 종국에 얻은 나에게는 빛나는 상흔으로 바뀌어졌다. 종종 의견의 충돌을 일으켰으나 신뢰와 사랑을 집중적으로 해오고 나의독자들에게 내가 본 그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마하트마는 의미를 지닌, 그것도 엄청난 의미를 지닌, 실로 세계적인 의미심장함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복음주의자이다. 나는 마하트마 간디에게 절을 하였으나 그리스도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분에게 나의 전적이고 궁극적 헌신을 드린다. 그리고 어떻든 내가 선 토대의 체제에 도전을 한 작은 사람은 동서를 막론하고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나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쳤다. 이 책은 나의 감사의 상징이다.

이 책을 쓰는데 나의 망설임을 극복하게 하였던 상기의 그 어느 것도 나의 내부의 강요가 아닌 ‘너는 반드시 해야만 해’라는 ‘내면의 소리’였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아마 몇 년간 준비했어야 했다. 

E. Stanley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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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눈꽃

2009.09.01 16:43:20
*.187.19.193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를 통해 스탠리죤스라는 분을 알게되었고 그 책을 통해서 간디와 인도에 관심을 가지게되었지요 서문 마지막에 '너는 반드시 해야만 해"라는 내면의 소리에 이책을 쓰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너는 반드시 이책을 읽어야만 해 라는 소리로 나에게 다가옵니다

네~~ 반드시 읽겠습니다! ^ ^*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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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사띠아

2009.09.02 04:38:13
*.162.215.21

눈꽃 집사님이 읽기에 편하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려운 책들을 읽어나가시는 사이 사이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가시도록 하겠습니다.

스탠리존스목사님의 간디와 인도이해의 폭에

이 책 한권으로 이를 수는 없겠지만 

위대한 영혼이라고 불린 간디라는 한 생명에

스탠리 목사님이 가지셨던 그 바램,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지요.

profile

[레벨:38]클라라

2009.09.01 18:04:52
*.229.154.102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의 저자 서문이군요.

혹시나, 번역이 사땨 선교사님인가, 했더니 아니넴요?^^

머, 그렇다해도 언릉 읽어 봐야 겠어요.

이런 거목들과 길을 걷는 다는 것은 큰 행운이지요.

절대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으니까요.

 

선교사님, 인도의 날씨는 어떻세요?

여기 서울은 무지 상쾌하거든요.

콧속이 다 시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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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사띠아

2009.09.02 05:04:10
*.162.215.21

저도 그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제가 지금 이 책을 번역 시작한 것이 훨씬 그 이전인데

아직도 간디가 첫 투옥될때 진술서부분인 7장에서 머뭇대고 있는 사이에

이 분은 책으로 내셨더군요.

저도 모르는 분이랍니다.


스탠리존스목사님의 '개종 또는 거듭남'의 개념에 대해

한 쪽으로 요약한 글 링크합니다.

영문이지만 읽기 부담스럽지 않으실겁니다.

http://ashram.modular.intuisite.com/site/local/docs/WHAT%20IS%20CONVERSION.pdf


인도는 많이 후덥지근합니다.

그래도 온도가 그렇게 높지 않아서 살만합니다.

언제 한국의 그 상쾌한 가을 초엽의 기후를 맛볼 날이 올까요?

profile

[레벨:38]클라라

2009.09.02 10:06:38
*.229.154.102

아, 그랬었지요.

선교사님께서 서두르셨다면,

서점에서 선교사님을 뵐뻔 했군요.  무지 아쉽네요.^^

번역본은 계속 올려 주신다는 거지요?

그럼, 뭐 굳이 딴책 읽을 필요 없겠어요.^^

profile

[레벨:23]모래알

2009.09.01 20:23:06
*.116.154.149

사땨 님!

발행인과 저자의 서문을 읽었으니

이젠 먼저 올려 주신 글들로 돌아가 읽어야겠군요. ^^

 

30 년 동안이나 의견의 충돌과 갈등을 느꼈던 사람에 대해 글을 썼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발 아래 엎드린 마음으로 썼다니까 더욱 더 잘 읽어 보아야 할 듯 싶네요..

 

인도! 하면 자세한 것들을 모르는 사람도 간디를 기억해 내는데

생각해 보니 인도에 대해서 전 너무 아는 게 없군요.  고맙습니다.

profile

[레벨:26]사띠아

2009.09.02 05:07:27
*.162.215.21

모래알님.

원래 번역은 읽는 이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너무 투박한 초벌번역이라 읽어나가시기가 

고역이실 겁니다.


그냥 행간을 읽으신다고 생각하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인도올때 인도가 어디 붙었는지도 몰랐고

다만 지도교수님이 써주신 추천서에

간디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합니다.

스탠리존스 목사님의 눈을 통한 간디해석..

계속 즐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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