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첫째 일하며(386DX 윈도우 3.0)

인도의 길 조회 수 630 추천 수 0 2022.02.14 03:05:05

'일하며'의 차례

  • 386DX 윈도우 3.0
  • 추억의 네루플레이스
  • 고기고픈 젊은이-공작도 먹고 개도 먹고
  • 그해 겨울은 따스했네
  • 한인경제인협의회 간사
  • 대사관의 도우미-영사과
  • 대사관의 집사-총무과
  • 나를 따라하세요
  • 타지마할1,2
  • 달밤에 부른 칠갑산
  • 무허가 장례사1,2,3
  • 수자타 아카데미
  • 대사들의 추억
  • 매형, 이모부 나 좀 살려줘요
  • 단 한번의 승진?
  • 부담스런 이웃
  • 세번째 스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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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일하며(나의 오병이어 386DX 윈도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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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의 가장이자

정체성이 자비량 선교사다 보니

호구지책을 마련해야 했다.

 

지구본을 돌리며 인도가 어디있는가

확인해 보는 것조차 불신이라 생각하며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지 않았는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나일지라도

예수님도 5천명을 먹이시기 위해

오병이어가 필요하셨듯이

9억 인도 영혼을 먹이고

나도 먹고살기 위해 뭔가 있어야 했다.

 

영어? 뻔하다.

인도 85%가 쓴다는 힌디?

더욱 꽝이다.

회사 직원으로 파견갈 기회?

더더욱 없었다.

이것저것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훈아의 노래 제목, 잡초 같았다.

 

자신을 돌아보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또다시 말씀에서 길을 찾았다.

빈들에 서서 무리를 보시며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답이 생겼다.

나에게 있는 다섯 개 보리떡

말라비틀어진 물고기 두 마리가 보였다.

 

컴퓨터였다.

 

고등학교때 '조국근대화의 기수'였다.

당시 공고생들은 어깨에 다 이것을 붙였다.

 

원주 상지대학교를 섬기는 4년 반동안

하반신 장애를 가진 형제가 있었다.

농과라 자신도 주변도 소망을 갖지 않았다.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업 하는 친구가 있었다.

농과인 이 형제를 돕고자

버스로 부품을 조달받아 아르바이트를 시켰다.

(이 형제는 나중에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종로기독교 백주년회관에서

선교훈련을 마친 후

인도 출발 직전 용산 선인상가를 방문했다.

 

당시 최고 사양인 386DX를 조립했다.

운용소프트웨어는 그동안 친했던 도스를 이별하고

쌈박한 GUI 윈도우즈 3.0을 깔았다.

286에서 쓰던 금성소프트의 완성형 하나와도 이별하고

똠방각하로 유명한 아래ᄒᆞᆫ글 1.52를 워드로 설치했다.

로터스 123를 스프레트쉬트로 깔았다.

물론 5.25인치, 3.5인치 FDD는 기본이었다.

 

14인치 CRT 모니터와 본체

이것만도 한 짐이었다.

선배 선교사들 선물,

당장 입을 옷가지 몇 벌로 가방을 꾸렸다.

김포공항에서 선교예배를 드렸다.

태국을 들러 비행기를 갈아타고
1993년 7월 30일 인도에 도착했다.

 

설레임반 두려움 반으로 내린 인도,

컴퓨터에 250불 관세를 때리면서 맞아 주었다.

한 푼도 아쉬웠던 그시절

한국에서 학생들은 다 이것을 쓴다

팔려고 가져온게 아니다.

손짓발짓 해가며 설명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세관원들이 이해가 되긴한다.

당시 인도 세관원들 눈에서는

엄청난 고가의 신문물이었으니까.

 

그러나 원주공단 동도전기 전기담당으로 일하다

퇴직금으로 받았던 그 피 같은 돈이

뭉텅 짤려 나갔던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아깝다.


더하여 해일같이 밀어닥치는 현실이 살짝 두려웠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무식해서 용감한 믿음이 있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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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2.02.14 21:38:11
*.182.156.92

컴퓨터의 세계에 일찌감치 발을 디뎠군요.

지난 그 일이 언제 일어난 것인지

연도를 이따금 적어주면 좀더 실감이 날 듯하네요.

그 시절에 우리나라 형편은 어땠고

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연결이 되면 재미있을 거 같아서요.

당시에 250달러면 어마어마한 액수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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