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말씀샘교회에서 했던 '구원론을 구원하라' 시리즈 설교를

다비안 여러분들과 나누려 합니다.

1주일에 한 편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듣고 배우는 신앙의 핵심 주제이면서 동시에 가장 무지하고 깊이 왜곡되어 있는 신앙의 질곡입니다. 누구나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할 만큼 익숙한 주제이면서 동시에 누구도 제대로 말하기 어려운 신학적 난제입니다. 구원론은 신론과 인간론은 물론이고 기독론 · 성령론 · 종말론 · 교회론 · 윤리론 등 신학의 모든 영역이 날줄과 씨줄로 얽혀 있는 신학의 중심이자 봉우리이고, 대부분의 이단과 여러 신학적 분파의 진원지로 작용했던 신학적 소용돌이입니다.

그런 만큼 구원을 말한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작업이 아닙니다. 매우 방대하고 복잡할 뿐 아니라 자칫 이단 논쟁에 휩싸이기 쉬운 예민한 작업입니다. 그런데도 감히 이 작업을 자처했습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구원 세계를 알고 구원의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하고 근원적이며 흥미진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2) 한국교회의 구원론이 구원을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하게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는데다가 가닥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백가쟁명이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3) 뒤틀리고 왜곡된 구원론을 바르게 세우지 않으면 한국교회를 바르게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심히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약속하지 않은 구원을 약속해왔고, 성경이 말하지 않은 구원을 말해왔습니다.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값싼 구원, 달라붙지 않아야 할 이물질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거짓 구원을 말해왔습니다. 쓰레기 하차장에 온갖 쓰레기가 뒤섞여 있듯이 한국교회의 구원론에도 이런저런 쓰레기들이 마구 뒤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뒤틀리고 왜곡된 구원론으로 인해 한국교회는 개독교라는 비아냥거림을 받는 처지에 내몰려 있습니다. 구원파의 구원론이 세월호 참사를 낳은 것처럼 뒤틀리고 왜곡된 구원론이 현재의 한국교회를 만들었으며 한국교회의 일만 악을 낳았습니다.

하여, 감히 말씀드립니다.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시급히 전면적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실상의 어떠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께서는 지나치게 오만하고 부정적인 비판이라고 힐난할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겸허하게 말한다 해도 이렇게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구원론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심히 뒤틀리고 왜곡된 구원론이 구원받아야 성도들이 참된 하나님의 구원에로 해방될 수 있고, 성도들이 참된 하나님의 구원에로 해방되어야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하나님나라를 향한 교회, 하나님나라의 지상 식민지로서의 교회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현실에 눈감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구원론이 얼마나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는지도 모른 채 구원의 확신이라는 작은 성을 쌓고 그 안에 안주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으니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저 열심히 믿기만 하면 된다,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예수를 통해 마음의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으면 된다, 이것저것 묻고 따져봐야 골치만 아프지 신앙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헛된 신화만 앞세우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생각이 아닙니다. 구원을 탐색하며 알아가는 일이 귀찮게 다가오거나,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으니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천국행 티켓을 확보했으니 그거면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했다기보다는 구원의 확신이라는 자기 최면에 스스로 속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믿음은 앎을 추동하고, 하나님의 구원은 구원의 은총과 구원의 내용을 열어보게 하고 탐험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높고 넓고 오묘하고 풍성한 것이라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는 그 구원의 세계를 요모조모 살피며 탐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맛과 색깔은 어떤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맛보고 누릴 수 있는지를 묻고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귀찮고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선물꾸러미를 받은 아이가 온갖 상상을 하면서 신나게 선물꾸러미를 풀어보듯 호기심과 설렘과 신바람 가득한 눈으로 구원의 요모조모를 살피며 탐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영혼과 마음에도 조용히 손을 얹어보십시오. 아마 성령의 호기심과 탐구심이 살아 펄떡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억눌리고 길들여져 깊이 잠자고 있을 뿐이지 당신의 영혼과 마음속 깊은 곳에 성령의 호기심과 탐구심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진리의 영께서 당신의 영혼과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일어나십시오. 깊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한없이 복되고 오묘하고 심오하고 광대하고 풍성하고 아름답고 위대하기 이를 데 없는 하나님의 구원 세계로 나아가십시오. 어린 아이의 눈으로 새롭게 구원 세계를 향한 여행을 떠나십시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저는 심히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주제넘게 당신의 구원 세계 탐험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하여 도우미를 자처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 편으로는 기쁜 마음으로.

제가 도우미를 자처한 이번 구원 세계 탐험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뒤틀리고 왜곡된 구원론의 실상이 어떠한가를 살펴볼 것입니다.

2부에서는 한국교회의 구원론이 왜곡되고 뒤틀리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3부에서는 한없이 깊고 높고 넓고 오묘하고 심오하고 풍성하고 아름답고 위대하고 복된 구원 세계의 이모저모를 하나하나 살펴볼 것입니다.

4부에서는 기독교 역사에서 뜨겁게 논쟁되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구원론 논쟁의 뜨거운 감자 세 가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지극히 해맑은 어린 아이의 눈으로 관찰하고, 청년의 뜨거운 가슴으로 묻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세계를 탐사해볼 예정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여행이 은혜롭고 경이로운 발견의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혼과 심장을 흔들어 깨우는 은혜로운 각성과 도전의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 그 안에 잠기는 축복의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출발하기에 앞서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당신이 그동안 듣고 배운 것들을 일단은 내려놓고 빈탕(Zero Point)에 서시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듣고 배운 것들을 다 내려놓고 빈탕에 서서 성경이 말하는 구원,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정직한 눈으로 새롭게 살펴주시면 좋겠습니다.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아야만 진실에 다가갈 수 있고, 선입견을 내려놓아야만 진실에 눈뜰 수 있는 법이니까요.

아무튼 이 복된 여정에 참여하신 당신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이 여행 내내 당신 곁에서 때로는 오랜 말동무처럼, 때로는 낯선 여행지의 가이드처럼, 때로는 정밀한 수사관처럼 변신하며 동행할 것입니다.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의 이끄심을 신뢰하면서. 바울 사도님의 기도를 돼내면서.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해주시고,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의 희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이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영광스러운 축복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에베소서1: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