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지 '복음과 상황' 1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3회에 걸쳐 기고할 예정인데 차례로 올리겠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1)
                          
‘한국교회는 비정상이다’ 하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십여 년 전부터 꾸준히 회자되어 온 이야기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다들 지적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교회는 오늘도 여전히 비정상의 모습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 다들 염려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현실은 별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절망할 것인가? 절망은 모든 걸 파괴할 뿐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죄다. 때문에 부활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 절망이란 있을 수 없다.
교회의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문제지만 절망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 역시 해법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이기는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의 때를 묵묵히 기다리면서도 하나님께 구하고, 길을 찾고, 문을 두드린다(마7:7-8). 기다리면서 서두르고, 서두르면서 기다린다.
믿음이 본래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현실에 절망하거나 안주할 수가 없다.
  
교회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문제

  한국교회 안에는 교회 제도의 수직화와 경직성의 문제, 지나친 헌금 강조와 헌금 관리의 비민주성 문제, 왜곡된 교리와 신학의 문제, 또 윤리적인 타락과 부패의 문제, 지나친 경쟁과 갖가지 환원주의 문제 등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하지만 문제만 보아서는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문제의 진상을 알 수도 없다.
문제는 결과적 현상일 뿐이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에 집착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넘어설 수 없다. 문제의 진상을 제대로 보려면 반드시 문제의 배후에 있는 사람을 보아야 한다.
무릇 모든 문제는 결국 그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로 귀착되는 법이지 않던가. 가정, 학교, 교회, 정당, 회사, 나라를 보라. 문제를 파고 들어가면,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오늘 교회가 욕을 먹고 흉포한 모습으로 구겨진 것도, 실은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는 바로 나의 문제요, 우리의 문제다.

  그러면 한국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자들인지를 살펴보자.
한국교회를 들여다보면 크게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첫째,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것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는 아멘파(순종파). 보수적인 교회의 상당수가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교회에 실망한 나머지 교회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냉소적인 비판자의 입장에 서 있는 냉소적인 비판파. 이들은 아직까지 숫자는 많지 않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개인적인 신앙에 만족하는 안주파. 이들은 교회에 깊이 참여하는 걸 꺼린다. 교회문제로 깊이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저 개인적으로 영적 필요를 채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자들이다.
  물론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본래 사람을 몇 가지 범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세상에 사람처럼 복잡하고 오묘한 존재가 또 어디 있는가. 사람이란 한없이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고,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끝없이 다른 존재가 아닌가.
때문에 사람을 몇 가지 범주로 분류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섣부른 짓일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개략적으로 대별해 볼 수밖에.
하여, 한국교회 구성원의 특성을 세 가지 부류로 대별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