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선 글(예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에서 “교회 없이는 예배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한 쪽으로 치우친 교회 패권적 발상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이쪽일 수도 있고, 저쪽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진영논리에 갇히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진실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럼 진실의 실체를 검토해보자. 우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순서이겠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근원적인 관계에 있다. 본회의 말을 들어보자. “교회 밖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지 않고는 새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혼자 새 사람이 되려고 하는 자는 결코 옛 사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새 사람이 된다 함은 교회에 온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다는 말이다. 의롭다, 거룩하다 함을 받은 개인이 새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의 교회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이시다.”(나를 따르라. 229). 본 회퍼의 이 말은 신학적 비약이 아니라 성경적 증언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엡1:2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고전12:27)이라는 바울의 증언은 너무 많이 들어서 진부할 정도이지만 교회의 정곡을 찌르는 핵심 진술임에 틀림없고, 본 회퍼는 이러한 성경적 진술에 터해 말한 것이다. 본 회퍼는 이보다 강하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지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는 게 아니며, 그리스도는 오순절 이래 자신의 몸인 교회의 형태로 지상에서 살고 있는 것’(나를 따르라. 227)이라고도 했다.
 
칼 바르트도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현존이듯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필연적인 묶임을 이렇게 설명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과 하나의 거룩한 교회의 삶, 이 둘은 구별하여 이해할 수는 있으나 사실 둘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삶이 없는 곳에는 교회가 없을 것이며, 교회가 없는 곳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없을 것이다.”(하나님 ․ 교회 ․ 예배. 177쪽). 그 이유에 대해서도 “왜냐하면 그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으며 영원한 나라 안에서, 즉 교회의 가장 높은 곳에서 신비하고도 불가시적인 교회의 머리로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계시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와 더불어 신앙하지 않고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닐 수 없다. 교회는 정당도, 협회도, 학설도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존재형태이다. 왜냐하면 이 신앙은 한 사람에 대한 신앙, 곧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에 대한 신앙이기 때문이다. 이 신앙의 내용은 이(교회의) 형태를 지녀야만 하고, 오직 이 형태만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하나님 ․ 교회 ․ 예배. 179쪽)라고 했다. 자, 이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리스도인 ․ 교회 ․ 그리스도는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는 것 외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으며, 또한 이 진실을 외면하거나 평가 절하할 수도 없다.
 
그럼, 그리스도인과 예배는 어떨까? 역시 신앙의 소중한 선배인 칼 바르트의 입을 빌려보겠다. 칼 바르트는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 대한 해설에서 하나님 인식과 예배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을 ‘하나님에 대한 봉사(예배)로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 인식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요약하면서 ‘하나님 인식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며, 그러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이미 예배(하나님에 대한 봉사)인 것’이라고 했다. 즉 ‘하나님 인식은 예배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하나님 ․ 교회 ․ 예배. 130쪽). 칼 바르트의 이런 진술은 내가 앞선 글에서 “하나님을 아는 일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고 했던 것과 같은 말이다. 즉 하나님을 예배하지는 않는 그리스도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이다. 참 하나님을 알면서 그분을 예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극한 모순이다. 그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교회의 삶은 곧 예배다. 교회의 일차적인 존재 의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공동체라는데 있다. 교회는 자선기관도 아니고, 세계와 인간을 개조하는 운동을 하는 기관도 아니고, 공동생활을 훈련시키는 기관도 아니고, 정신적인 위안을 주는 기관도 아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고, 이미 들은 자들이 또한 듣기 위해 모이는 것이 교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누구나 말씀의 주체이신 그분을 예배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을 아는 자의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영혼의 끌림이요 생명의 설렘이요 환희에 찬 경외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순종이기 때문이다. 옳다.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예배가 아닌 것은 하나의 종교 행위일 뿐 교회의 예배가 아니다. 교회의 예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서의 예배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 ․ 교회 ․ 그리스도의 관계적 진실이며, 내가 아는 교회의 예배에 대한 진실이다. 만일 내가 아는 진실이 틀리지 않다면, 과연 예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됨이 가능할까? 교회 없는 예배가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