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 시간 뉴스에 눈과 귀를 막고 살았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산 것은 아니었지만, 나 하나의 생명을 돌보는 것도 힘겨운 판에 세상을 기웃거릴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내 삶의 언저리만 맴돌며 조용히 지냈다.  

그런데 요 며칠 채동욱 검찰 총장과 진영 보건복지부장관의 사퇴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한 사람은 개인적인 처신 문제가, 한 사람은 정책 노선 갈등 문제가 불거져 사퇴를 했기에 조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았다. 곧바로 머리가 복잡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나라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벌어지는 일인지라 진실의 실체가 무엇인지 판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개연성만 난무할 뿐 진실의 알속을 찾기란 어려웠다. 하기야 이번 일만 그런 건 아니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뒤흔든 사건일수록 언제나 진실은 묘연하고 공방은 뜨거웠으니까. 

사실 진실에의 접근이 어려운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한없이 복잡 미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걸 말할 수는 없고, 대신 사회가 거대해지고 복잡해진 것이 한 몫을 거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잠시 생각하려 한다.

일찍이 키르케고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진실은 줄어든다’고 경고한바 있다. 옳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관계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관계의 수가 늘어나는 것만큼 진실의 유통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한 바와도 일치한다.

우리는 그동안 집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수많은 비리 사건을 접하면서 학습했다. 사건은 있는데 실체적 진실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때로는 거짓과 흑색선전으로 군중의 눈을 홀려 진실을 묻어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교양의 옷으로 갈아입고 우아하게 진실의 길목을 빠져나가기도 한다는 것을. 조직적으로 진실을 감추거나 호도하는 일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필요에 의해 진실을 왜곡하거나 비트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우리는 지금 진실은 포기한 채 생존 게임에만 열중하고 있다. 진실은 기왕 베일에 가려져 있고 외양과 포즈가 난무하는 것이 삶의 현실임을 학습했기에, 생각 없이 진실을 꺼냈다가 오해로 낙착되거나 왜곡되는 아픔을 적잖이 겪었기에, 힘으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비트는 것을 목도했기에, 객관적인 정보만 주고받는 것이 가장 안전한 처세술임을 터득했기에 너도 나도 진실은 적당히 외면하고 감춘 채 뿌리 없는 정보만 유통하며 소비하고 있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의 내면이 진실을 두려워하고 있다. 진실과의 대면은 물론 진실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대신에 진실 덮기 · 진실 숨기기 · 진실 비틀기 · 진실 가장하기 · 진실 역이용하기 기술을 연마해가고 있다. 물론 누구도 그걸 가르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구도 가르치지 않는 기술을 모두가 학습하고 있다. 나는 이 사실이 너무 두렵다. 

사실 우리네 생활이 과거에 비해 풍족하고 편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이렇게 피폐하고 허허로운 것은 서로 진실을 나누지 못하는 것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끝없는 경쟁 때문에도 삶이 무너지고 있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배경은 서로 진실을 나누지 못하는 것 때문이다. 외적 진실과 내적 진실을 맘 편하게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관계가 겉돌고, 관계가 겉돌기 때문에 삶이 고독하고 무겁고 허허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