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하다. 특히 입회 방식에 있어서 유별나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조직이나 단체는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춰야 입회할 수 있다. 즉 자격심사의 방식이 동원된다. 한 나라의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국적을 취득해야 하고, 특정 대학의 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그 대학에서 치르는 입학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특정 회사의 직원이 되기 위해서는 입사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동호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같은 취미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친목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회비를 내야 한다. 심지어 가족이 되기 위해서도 부모의 핏줄을 이어받아야 한다. 아니면 입양이라는 특수 절차를 밟거나.

 

그런데 교회는 자격 심사의 방식을 동원하지 않는다. 특별한 자격을 구비했는지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아는지 여부를 따진다. 나는 예수와 함께 이 땅에 도래한 새로운 세계(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될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아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따진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체계를 강화하고 보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체계가 어둠과 죽음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체계를 벗어버리는 매우 낯선 방식으로 입회 여부가 결정된다. 진실로 그렇다. 교회는 자격 요건을 구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격 요건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입회 여부를 따진다.

 

물론 아주 엄격하게 말하면 교회는 그 무엇을 따질 수도, 입회 여부를 결정할 수도 없다. 교회는 오직 성삼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자들을 받아들일 뿐이지,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단지 입회 방식으로 따진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방식을 사용하시니까.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구비한 자가 아니라 회개하는 자를 구원의 길로 이끄시니까. 교회의 머리이시고 온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이게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춤으로써 들어가는 게 아니라 들어갈 자격이 없음을 회개할 때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 나라에 합당한 자격 요건을 갖춘 자가 아니라 아무리 준비해도 합당한 자격 요건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들어간다는 말이다.

 

참 놀라운 역설이다. 자격 요건을 구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격 요건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입회 여부를 따진다는 건 우리에게 매우 낯선 일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항상 그렇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고 기이하기 그지없다. 너무 깊고 오묘해서 도무지 포착되지 않으며 이해되지 않는다. 바람이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요3:8) 성령(하나님의 바람)이 하시는 일은 매양 그러하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하늘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가고, 네 몸을 감싸고는 흔적도 없이 미끄러진다. 바로 그래서 교회는 있다. 하늘 바람이 이 땅에 붊으로 회심의 문을 통과한 복된 자들이 있고, 그들이 있기에 오늘도 교회는 있다.

 

진실로 그렇다. 교회는 사람의 노력이나 지혜로 서지 않는다. 자본의 힘이나 권세의 힘으로 서지 못한다. 교회는 오직 하늘 바람으로 선다. 하늘 바람에 실려 회심의 문을 통과한 복된 자들로 인해 선다. 그리고 하늘 바람에 실려 회심의 문을 통과한 자들의 모임이 곧 교회다. 이 교회는 지속적으로 회심의 문을 드나들어야 한다. 한 번의 회심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게 아니니까, 한 번의 회심으로 하나님나라에 소속하기는 하나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온전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또한 진리의 음성을 듣는 자는 회심의 문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으니까, 회심의 문을 통과한 자들의 모임인 교회는 지속적으로 회심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회심의 길을 가지 않는다. 회개하는 것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길이요 교회가 사는 길인데, 지금의 교회는 회심의 길을 가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의 길, 자본의 길, 권세의 길을 간다. 하나님나라의 경영을 따르지 않고 세상 나라의 경영을 뒤좇는다. 하지만 사람의 욕망이나 종교적 지혜나 자본의 힘이나 권세의 힘을 동원해 선 교회는 때가 되면 무너진다. 반드시 무너진다.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진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 온갖 가라지와 독버섯이 번성하고 있고, 그로 인해 파괴적인 굉음이 들리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인지 모른다. 회심의 문을 통과하지 않은 자들이 교회 위에 우뚝 서있기 때문에, 교회가 가진 것에 배가 불러 회심의 문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자본의 바람에 미쳐 하늘 바람을 외면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모른다. 아니, 정녕 그럴 것이다.

 

한국교회는 속히 회심의 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몇 가지 잘못을 회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교회의 체계 전체를 회개해야 한다. 지금의 교회 체제가 천박한 자본주의적 경쟁체제에 깊이 함몰되었다는 것을 자백하고 하나님나라 체제로 전환하는 근원적인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야 훼파된 교회의 성벽이 재건될 수 있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생명의 영이신 하늘 바람,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바람이 교회의 굳은 목을 꺾으실 것이다. 교회의 굳은 목을 꺾어서라도 회심의 문을 통과하게 하실 것이다.

 

하여, 나는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교회에 절망하면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오늘도 하늘 바람이 불어오기에, 생명과 삶을 억압하는 위대한 종교체계에서 생명과 자유를 호흡하는 하나님나라로 교회를 해방하는 성령의 바람이 온 세상을 따스히 감싸고 있기에(창1:2), 나는 깊이 절망하면서도 큰 희망을 갖는다.

물론 교회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다. 교회가 아무리 회개한다 해도,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을 아예 없앨 수는 없으니까. 세속적인 기복 욕망, 심리적인 안정 욕망, 종교적인 만족욕망에 이끌려 교회에 들어온 자들은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으며, 또 회심의 문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그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기란 매우 어려우니까.

 

이것은 엄정한 진실이다. 때문에 우리는 교회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한다. 대신 부지불식간에 그런 욕망에 이끌리지는 않는지, 그런 욕망을 부채질하거나 채워주는 일을 하지는 않는지 깨어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엄정한 진실을 기억하고 깨어 경계하기는커녕 교회가 앞다퉈 성장욕망, 성공욕망, 권력 욕망, 자본 욕망을 좇고 있다. 교회가 이런 욕망을 좇고 있기에 성도들의 욕망 또한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세속적인 기복욕망, 심리적인 안정욕망, 종교적인 만족욕망, 사회적인 성공욕망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주님의 교회가 이토록 수치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말한다. 교회에 대한 환상은 버리되 속히 회심의 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몇 가지 잘못을 회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교회의 체계 전체를 회개해야 한다. 지금의 교회 체제가 천박한 자본주의적 경쟁체제에 깊이 함몰되었다는 것을 자백하고 하나님나라 체제로 전환하는 근원적인 회개를 해야 한다. 세속적인 기복욕망, 심리적인 안정욕망, 종교적인 만족욕망을 찾아온 자들을 붙잡기 위해 타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올곧게 가르쳐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가 먼저 성장욕망, 성공욕망으로부터 돌아서야 한다. 그래야 훼파된 교회의 성벽이 재건될 수 있다. 하나님나라를 세상에 증언하는 교회의 길을 갈 수 있다.


         말씀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