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전기를 읽었다. 바르트의 제자이자 생애 마지막 때의 비서였던 에버하르트 부쉬가 쓴 900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전기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바르트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익숙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누구의 삶을 읽을 때보다 흥미롭고 유익했다.

 

나는 칼 바르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의 한 모습을 보았다. 대대로 목사요 신학자인 집에서 태어난 그는 십대 후반에 신학을 시작하지만 83세에 죽기 전날까지 신학을 공부했다. 그의 미완성 대표작인 <교회 교의학>만 해도 9,185쪽이나 되고(기독교 이천년을 통틀어 최고 많은 분량), 성경 강해와 강연, 논문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글을 남겼을 만큼 그의 신학 작업은 치열하고 행복하고 창의적이었다.

 

그는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길 위의 신학자였다. 그는 평생 어떤 사상, 어떤 이데올로기, 어떤 체계화된 신학 안에도 머문 적이 없다. 위대한 선배들이 남긴 신학적 사상적 유산을 공부하고 섭취하는 데는 누구보다 열심이었지만, 어떤 학파나 사상에도 갇힌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열어 놓고 공부했으며, 공부할 때마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잣대로 꼼꼼하게 따져 물으면서 말씀의 깊이를 추적해나갔다.

그에게 신학은 학문이 아니었다. 그에게 신학은 곧 신앙이었다. 그의 신학은 오로지 신앙으로 수행되었고, 그의 신앙은 오로지 신학(하나님 말씀)으로 규명되었다. 하나님의 계시 외에는 그 무엇도 그의 신학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더욱이 그가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놓지 않은 건, 신학은 오직 설교단과 교회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그렇다고 성경만 붙잡고 씨름한 건 아니다. 교회와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지도 않았다. 그는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광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쉬지 않고 역사적 현실과 대화했다. 히틀러의 포악한 폭력에 항거하는 고백교회 운동에 앞장섰고, 전쟁으로 몰아가는 히틀러와 독일을 비판했다. 그로 인해 본 대학교 교수직에서 퇴직당하고, 출판과 강연 금지 조치도 당하고, 나중에는 독일에서 추방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발언과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정치적 발언과 행위는 정치적인 이해관계의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항상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하고 발언했으며, 하나님 말씀이 지향하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 행동했다.

내가 칼 바르트를 읽으면서 가장 크게 감동한 건 이것이다. 삶과 신학(신앙)의 일치. 신학자로서 신학을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신학을 했다는 사실. 진실로 그랬다. 그의 삶은 곧 신학이었고, 그의 신학은 곧 삶이었다. 이것은 단지 수사가 아니다. 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학적(신앙적)이었고, 그의 신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삶을 위한 것이었다.

바로 그랬기에 죽기 전날까지 신학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바로 그랬기에 그의 신학적 삶이 매우 창조적이고 풍성하고 행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신학적 삶은 고독을 피할 수 없었다. 쉼 없이 이곳저곳에서 비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의 신학은 그 안에 철저히 육화된 신학이었기에 그의 신학적 발언 또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육성일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칼 바르트의 생생한 육성 세 마디만 전해야겠다.

“신학 자체로 신학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신학에게 닥쳐오는 것이다. ……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그 위에 오신다. 신학은 그 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 영을 제 것으로 삼지도 못한다. 그저 그 영을 기뻐하면서 그 영에 부응하는 것이다.”(774쪽).

 

“신학 작업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이미 해결된 문제, 이미 완성된 결과, 이미 확실해진 결론이나 편안하게 넘겨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 오히려 매일, 아니 매순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775쪽).

 

“아마도 내 앞에는 아직 힘겨운 나날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깝거나 먼 어느 날에는 나도 확실히 죽을 것이다. 어제를 돌아볼 때, 그보다 앞서간 모든 날을 돌아볼 때, 또한 앞으로 다가올 나날을 돌아볼 때, 끝으로 확실하게 다가올 그 마지막 날을 돌아볼 때, 내게 남은 일이라고는 ‘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잊지 말아라!’ 이 말씀을 부단히 떠올리며 그것을 내 안에 새기는 일밖에 없네.”(8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