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선비 열전을 읽었다.

조선의 초석을 놓은 삼봉 정도전부터 정암 조광조, 남명 조식, 퇴계 이황, 화담 서경덕, 고봉 기대승, 율곡 이이, 지천 최명길, 다산 정약용,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에 이르기까지 23명의 기라성 같은 선비들의 사상과 삶을 여러 저자들이 간략하게 풀어낸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를 13년 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선비의 특징은 대략 이러했다.

첫째, 학문을 사랑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했고,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 배울 만큼 열정이 있었다.

단지 벼슬을 위해 공부하지 않았다. 나를 세우고 삶의 이치를 궁구하기 위해 일평생 정진했다.

남명 조식은 평생을 초야에 묻혀 공부에 힘썼고,

퇴계 이황은 죽는 순간까지 벼슬을 거부하거나 벼슬에 올랐다가도 이내 곧 물러나기를 20여 차례나 하면서 공부했다.

다산은 오랜 귀양살이에도 굴하지 않고 경전을 새로이 해석하는 일에 매진했고,

서경덕은 종일토록 무릎 꿇고 앉아 침식을 잊은 채 3년이나 궁구했다.

 

둘째, 학문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많은 선비들이 귀양살이에도 불구하고 뜻을 굽히지 않았고, 임금의 사약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소를 올렸다. 뜻이 통하지 않으면 언제든 벼슬을 하직하고 낙향하는 기개(氣槪)가 있었다.

화담 서경덕은 세속의 욕망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는 그가 얼마나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자기가 배운 학문에 갇혔다고도 할 수 있지만 배운바 가르침대로 살고 또 가르침을 펴기 위해 살신성인(殺身成仁)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염려하는 애민정신이 극진했다.

하서 김인후는 500년 전에 이미 ‘천지를 슬퍼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정치는 시작된다’고 말했고, 화담 서경덕은 평등의 철학을 주창했고, 고봉 기대승은 ‘언로는 국가의 중대사다. 언로가 뚫리면 국가는 안정되고 언로가 막히면 국가는 위태롭다’고 말했고,

정약용은 ‘나의 소망은 온 나라 안을 모두 양반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왕의 다스림을 지배행위가 아니라 섬김과 봉사로 해석했다. 이들은 제각각 자기가 터득한 학문에 기초한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현실에 참여했고, 현실을 혁파하기 위해 옴 몸으로 싸웠다.

 

선비들의 삶을 읽다보니 오늘의 목사들이 생각났다.

물론 성리학에 기초한 조선의 선비상이 목사상의 전형일 수는 없다.

목사는 선비들이 터득한 학문보다 더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도(道)를 따르는 자들이기에 마땅히 선비의 길을 넘어서야 한다. 목사는 선비처럼 고고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어둠에 짓밟히고 으깨어진 삶을 보듬어야 한다. 흐트러진 존재와 삶을 예언자적 통찰력으로 일깨워야 한다. 역사 속에 하나님나라의 씨앗을 심는 거룩한 농부여야 한다. 자신이 터득한 학문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을 따르고 실현하기 위해 삶과 생명을 걸어야 한다. 한 사람을 우주보다 더 귀히 여겨야 한다.

 

그렇다. 목사와 선비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

근본 토대가 다른데 어떻게 마주 놓고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목사가 공자의 말씀을 배운 선비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비들은 스스로를 경계하며 학문에 정진했는데 목사들은 뛰어다니기에 바쁘지 않은가.

선비들은 부와 명예를 초개(草芥)처럼 버렸는데 목사들은 교회 성장에 연연하지 않은가.

선비들은 삶의 지평이 넓어 호연지기가 있는데 목사들은 시야가 좁고 편협하지 않은가.

선비들은 부패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삶을 던졌는데 목사들은 현실에 영합하는 기술을 터득하기에 여념이 없지 않은가.

하여, 조선의 선비들을 읽는 내내 심히 부끄러웠다.

특히 서경덕의 허심(虛心)과 정약용의 목민(牧民)정신을 보면서는 더했다.

정약용은 이 시대 목사의 사표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목사들이 다 함량 미달인 건 아니다. 선비를 능가하는 목사도 있다. 하지만 선비들의 추상같은 기개와 드넓은 호연지기에 미치지 못하는 목사들이 부지기수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오래된 선비에게서 목사의 미래를 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조선의 선비들이 두루 갖춘 학문의 깊이와 폭넓음, 수신(修身-자기 수양과 관리)의 엄정함과 뜻의 올곧음을 보면서 이 시대의 목사들이 배워야 할 훌륭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의 목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선비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의 부족한 현실을 타파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도 조선의 선비 정신과 선비 문화만큼 좋은 자양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는 목사가 정신 나간 소리를 한다고 힐난할지 모르겠다.

기독교를 유교의 범주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것이냐고 항의할지 모르겠다.

나도 그럴 생각은 없다. 아니, 그래서도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목사는 선비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나 솔직히 목사가 조선의 선비만큼만 되어도 나는 춤을 추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