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여성 3명이 선정됐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7일 여성의 권리가 가장 뒤쳐졌다는 평가를 받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여성 3명(렐렌 존슨 설리프, 레이마 보위, 타와쿨 카르만)을 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3명의 여성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설리프(72)는 라이베리아의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는 민주화 투쟁을 한 이후 지금은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이자 아프리카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활약하고 있다. 보위(39)는 기도와 침묵시위로 라이베리아의 내전을 종식시키는데 일조했다. 카르만(32)은 예멘의 기자이자 인권운동가로서 아랍의 민주화를 위해 비폭력 시위를 이끌었다. 이들은 여성의 위상 강화와 정치적 참정권을 얻어내는 일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동의 오랜 숙원인 평화와 민주화를 이끌어내는 일에 헌신한 것을 인정받았다.

 

여성 3인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은 정말 반가운 뉴스였다. 그들은 여성으로서 활동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 속에 살면서도 여성의 인권뿐 아니라 군부 독재와 내전의 싸움터에서 평화를 일구어내고,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섰다. 더욱이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평화의 능력으로 비폭력 저항을 이끌었고, 남자들의 오랜 죄악을 뒤집어엎었다. 노벨 위원회가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매우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상을 주기에 앞서 세상의 모든 남성들은 여성들 앞에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남성이 세상을 지배해 오면서 한 일이 무엇인가? 평화를 구축하기보다는 평화를 짓밟고 싸우는 일에 매진해왔다. 여성의 인권을 짓밟고 생명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왔다. 폭력이 곧 남성다움이라는 허망한 신화로 자기들의 폭력성을 미화해왔다. 세상의 모든 폭력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남성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었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의 폭력에 오랜 세월 시달려왔으면서도 결코 폭력적이지 않았다. 여자는 한결같이 남자의 폭력이 낳은 상처를 싸매고 보듬어주었다. 생명을 낳고 기르고 보호하는데 헌신했다. 때문에 세상의 모든 남자는 세상의 모든 여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여성과 아이 앞에, 그리고 모든 생명 앞에 엎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위스의 폴 투르니에는 일찍이 [여성, 그대의 사명]이라는 책에서 21세기는 여성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옳다. 지금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발전, 질서, 건설이 아니라 나눔, 연대, 치유다. 전쟁, 죽임, 성공이 아니라 평화, 살림, 행복이다. 돈이 아니라 사랑이고, 법(法)이 아니라 시(詩)이다. 남성의 폭력에 짓이김을 당하고 깊은 상처로 몸살을 앓고 있는 모든 생명이 간절히 염원하는 것도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며, 처참하게 찢긴 세상과 영혼을 싸매고 치유할 수 있는 것도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21세기는 진정 여성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여성에게 있는 평화의 능력, 치유의 능력, 생명을 키우고 보호하는 능력을 충분하게 인정하지도 않았고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나폴레옹이나 칭기즈칸의 영웅적인 승리에 대해서는 입이 닿도록 칭송하면서도 그들이 남긴 커다란 상처를 품어내고 치유해낸 여성들의 위대한 산고(産苦)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인간 이성의 명백한 오류이자 파산이다. 그런 면에서 여성 3인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여성이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 말하고 싶다.

[여성이여! 그대는 온 세상에 하나뿐인 평화의 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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