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는 길을 간다.

어떤 이는 목적지를 향해 가고, 어떤 이는 다른 이를 따라 가고,

어떤 이는 이것이 길이려니 하며 가고, 어떤 이는 가지 않을 수 없어서 간다.

가다보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재미도 있고, 뜻하지 않은 동행자를 만나 마음을 주고받기도 하고,

강도에게 온갖 것을 빼앗기기도 하고, 길 아닌 길로 접어들어 죽을 고생을 하기도 한다.

또 길을 가다가 문득 이 길이 과연 길인지, 길 없는 길을 가겠다고 나선 것은 아닌지를 고민하며 멈칫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이는 각자 자기의 길을 간다.

 

나의 길을 돌아보니 어느덧 생의 반환점을 훌쩍 넘어섰다.

언제부터인지 생의 종착점에 눈길이 자주 간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습관처럼 길을 묻는다.

길을 물으며 길 아닌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할 때가 있고, 가야 할 길이 보이는데도 그 길을 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휑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할 때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 ‘길찾기’보다는 ‘동행’에 내 삶의 무게 중심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일이 어쩌면 ‘동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

무소의 뿔처럼 자기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동행’은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아내 때문이다.

아내의 삶이 ‘동행’이었고, 그 ‘동행’이 심히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내 길을 걷기에 바빴다.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걸어왔다고는 하지만 어둠의 종노릇을 한 부분이 많았고, 이것이 길이라며 걸어왔지만 우직하기보다는 휘청거릴 때가 많았다.

내가 가는 길에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기대했지 내가 사람들의 길에 동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내는 달랐다. 아내는 교사로서 자기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 길은 언제나 ‘동행길’이었다.

남편과의 동행. 아들과의 동행. 교회 성도들과의 동행. 학교 아이들과의 동행.

사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매우 쑥스럽긴 하다. 그러나 몇 가지만 밝혀야겠다.

아내는 누구에게 요구하는 법이 거의 없다.

항상 타인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 자신의 필요를 타인에게 요구하는 법이란 거의 없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외면하거나 짜증내는 법도 없다.

오랜 기간 병마에 시달리는 나를 돌볼 때에도 장탄식 한 번 내뱉은 적이 없고,

응급실에서 여러 날 밤을 지새우면서도 자기를 고생시킨다는 차가운 시선 한 번 보낸 적이 없다.

나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다. 아내는 언제나 옆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하다.

이것은 아내의 천성이기도 하고 애씀이기도 한데, 암튼 아내의 삶은 한 마디로 말해 ‘동행’이다.

자기의 길을 가면서도 자기만의 길을 가지는 않는, 누군가와의 동행이다.

 

이런 아내의 삶을 지켜보면서 나는 발견했다.

자기의 길을 가면서도 그 길이 ‘동행길’이 되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빛나는 일은 없는 것 같다는 진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삶의 길은 동행길이라는 진실을 말이다.

하여, 생의 반환점을 돌아 종착점을 향해 가는 나의 삶도 ‘동행길’이면 좋겠다는 낯선 꿈을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