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갈수록 전문화, 세분화되어 가고 있다. 예전에는 하나의 일이었던 것이 지금은 열 개 스무 개로 쪼개어져 직업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고, 일이 쪼개지고 전문화되는 만큼 소통의 장벽도 높아졌다. 세대 간에도 예전에는 3대가 함께 어울리며 살았지만 지금은 지식 ‧ 기술 ‧ 문화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늙은이는 사회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다. 또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계층 간의 소득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삶을 공유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져버렸다. 정보의 소통은 무한대로 확대되고 활발해졌지만 인격적인 삶의 나눔은 극소화되었고, 발전의 속도와 장소의 이동은 빨라지고 활발해졌지만 개인의 고독은 더욱 깊어졌다.  

 

교회 안에도 세대 간의 분리가 극심하다. 예전에는 중등부와 고등부가 함께 묶여 있는 경우가 많았고, 초등부도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함께였는데, 지금은 교회 규모가 작아도 또래 집단끼리 쪼갠다. 초등부도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으로 나누고, 아예 학년 별로 분리하기도 한다. 청년부도 1청년부와 2청년부로 나누고, 여전도회도 연령대별로 자꾸만 쪼갠다. 물론 교회 규모가 커지다보니 모임을 잘게 나눌 수밖에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또 또래 집단끼리 모였을 때 소통의 즐거움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세대를 세분화하면 할수록 앞서가는 교회, 교육 효과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신앙교육이 단지 성경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굳이 세대 분리를 문제 삼을 이유란 없다. 학교처럼 교회도 학년 별로 분리하고, 세대별로 분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신앙교육은 지식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앙교육이 취급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온 삶이며, 신앙교육은 뇌에 정보를 입력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눈으로 온 삶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신앙교육의 성격이 이러하기 때문에 신앙교육은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적 행위를 통해서보다는 일상에서 보고 듣는 비교육적 행위를 통해서 계승되고 전달되는 측면이 더 많고, 또 더 중요하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태도와 예배 분위기, 성도들의 작은 몸짓과 표정, 그리고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교육의 장이며, 또 그것이 분반공부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신앙은 형성되는 것이지 습득하는 게 아니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비교육적인 행위들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지 수학과 역사 지식을 습득하듯이 신앙을 습득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정반대로 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들만의 공간을 허락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신앙교육의 장에서 몰아낸 것이다. 그들이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차단시켜버린 것이다. 주일 예배와 성도들의 삶의 양태를 보면서 아이들 스스로 체득할 수 있는 위대한 교육적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해버린 것이다. 사실이다. 세대를 분리하는 것은 신앙교육에 역행하는 길이며 근본적으로는 악이다. 사탄은 분리의 영이고, 분리는 창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가장 사악한 해체의 방법론이기 때문에 나는 모든 형태의 분리를 악이라고 규정한다.

 

오늘날 우리는 효율성의 노예가 되었다. 사역의 효율성, 교육의 효율성을 위해 또래집단끼리 묶고 있지만 효율성은 성경적 가치가 아니다. 효율성은 이익과 동맹을 맺은 자본주의적 가치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효율성을 위해 부분으로 나누기보다는 온전함을 위해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같은 세대끼리만 뭉치고 생활하는 것으로는 삶의 온전함을 배울 수 없다. 삶 교육 ‧ 인격 교육 ‧ 신앙 교육은 전 세대가 함께 하는 환경이 가장 좋고, 교회의 공동체성을 지켜내는 데에도 전 세대가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다.

 

혹자는 세대 통합 문제에 큰 관심이 없을지 모르겠다. 아주 작은 문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이 문제는 이 시대의 문화를 넘어서기 위한 거대한 싸움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내일이 걸린 문제이고, 교회의 정체성과 직결된 매우 중요하고 긴요한 문제다. 뿐만 아니라 그 길을 선택하는 데에는 많은 희생이 요구되는 힘겨운 문제다. 세대 통합이라는 영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형교회의 경우 여러 개의 작은 교회로 분립하는 희생적 결단해야 하고, 작은 교회의 경우 세대 통합을 위협할 정도로 커지는 것을 스스로 경계해야만 가능한 문제다. 작음과 약함의 영성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선택할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다. 하여, 나는 교회가 끝도 없이 자기중심주의에 매몰되어 가는 이 시대, 규모의 교회정치공학에 매몰되어 가는 이 시대에 감히 세대 분리를 통한 대형화의 길이 아니라 세대 통합을 위한 소형화의 길을 제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