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다. 한의사 강용원이 쓴 「안녕, 우울증」이다. 저자의 이력은 매우 독특하다. 그는 일찍이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는 학문이라 판단하고 삶의 행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다가 신학을 공부해 성직의 길로 접어들어 대학생, 청년 교육활동에 전념했다. 그 과정에서 이 땅의 사회, 역사 문제에 눈을 뜨고는 성직을 내려놓았고, 사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한의대에 입학하여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결국 이성적인 분석과 합리로 점철된 서양의학, 마음과 몸의 이분법에 잘려 몸의학으로 환원되어버린 서양의학과 중국의학을 넘어서지 못한 우리 의학의 한계를 발견하고 우리 생태에 맞는 의학을 탐색하며 살고 있다. 그는 모름지기 온 몸과 삶으로 우리 존재와 삶을 고민하며 출구를 탐구하는 사람이다. 지식을 팔아먹는 장사치가 아니라 앎과 삶의 하나됨을 추구하는 진정한 철학인이다. 물론 그는 한의사다. 그러나 그는 단지 몸을 돌보는 의사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온통 통짜 인간에 있다.

 

 

한의사와 우울증, 매우 낯선 만남이다. 그의 말대로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울증에 두 발을 걷고 나선 것은 통짜 인간에 대한 그의 의학적 시선의 자연스런 귀결처럼 보인다. 50여 년 동안 우울증과 함께 살아온 저자의 인생 역정도 한 몫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책 앞부분에서 우울증과 함께 살게 된 힘겨웠던 개인사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자신의 우울증을 되짚어보면서 우울증의 속살이 어떤 것임을 자세하게 밝혀준다. 우울증은 온정에 목마른 병, 똑똑하고 착해서 걸리는 병, 부정 감정의 독침을 맞은 병, 미안함(죄책감)이 사무치는 병, 요구도 거절도 못하는 병, 옳고 그름에 예민한 병, 결정적 대면에서 눈빛이 꺾이는 병, 격정의 늪에 빠진 병, 너무 진지한 자세에서 나온 병, 갈등을 피하는 병, 순수 경직성이 불러오는 병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우울증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진단한다. 우울증은 인간이 병들고, 인생이 병들고, 사회가 병들고, 문명이 병든 것이라고. 특히 이원론, 입자론, 기계론, 분석주의, 주지주의, 형식논리 등에 뿌리내리고 있는 남성 문명의 자기중심적 일방주의의 폐해가 바로 우울증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우울증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매우 따뜻하고 섬세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 깊이가 있으면서도 거시적이다.

 

 

우울증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의 중심은 이것이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요, 우리 삶의 전체 과정과 깊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우리 삶이 이야기이듯 우울증도 이야기라는 것이다. 때문에 치료 또한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의사인 저자가 상담치료를 고집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우울증과 맞닿아있는 삶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삶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삶을 이야기하는 것 없이 뇌과학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얼치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여, 그는 매우 독특하게 한국인의 삶이 녹아 있는 우리말을 치료의 도구로 챙긴다. 우리말 속에 담겨 있는 사유의 특성을 따라가면서 상담을 하는 것이 가장 우리다운 치료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말에 드러난 사유의 특성을 몇 가지로 정리하여 말한다. 동사 문장을 잘 쓰는데서 드러나는 역동성과 관계성의 사유, 형용사가 발달한 어휘적 특성에서 드러나는 직접성의 사유, 허사가 관건인 문장 구조에서 드러나는 탈중심성의 사유, 주어 뒤에 바로 목적어를 놓는 어순과 압존법에서 드러나는 서로주체성의 사유, 속내를 감추는 어법에서 드러나는 곡선성의 사유, 관사나 전치사가 발달하지 않고 말을 섞는데서 드러나는 연속성과 유기체성의 사유 등. 하여, 저자는 우리말의 생태를 복원하여 한국적 상담치료의 길을 여는 것을 꿈꾸며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참으로 놀랍고 독창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안녕, 우울증」은 우울증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시원하게 날려줄 뿐만 아니라 우울증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또 우울증을 통해 미시적인 눈과 거시적인 눈으로, 이분법이 아닌 대칭의 눈으로, 구조적인 분석이 아닌 변증법적인 역설로 인간과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열어준다. 특히 저자는 모든 생명을 신음하게 만드는 남성문화의 파괴성과 오만함을 질타하면서 여성의 생명성과 여성문화로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여성성으로의 회귀가 없이는 문명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문명의 화두를 던진다.

 

한의사 강용원은 우울증을 통해 시대를 말하고, 우울증을 통해 인간을 말한다. 특히 여성우울증이야말로 시대를 구원하는 하늘 뜻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그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몸의사가 아니다. 그는 인간과 문명을 치료하는 사회의사다. 우울증이라는 시대의 패악한 군홧발에 짓눌린 자들을 끌어안고 함께 아파하면서 생명의 웃음길을 여는 문명치료자다. 더욱이 그는 상처입은 치료자다. 그의 모든 이야기에는 존재와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하여, 울림이 크다.

 

이 시대는 가히 우울증의 시대다. 한의사 강용원은 통섭 학문을 섭렵한 자답게 시대의 질병이요 문명의 질병인 우울증을 정확하게 포착했고, 우울증-특히 여성우울증을 화두로 붙잡았다. 우리 모두가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책 한 권을 읽고 저자의 내일이 궁금해지는 것은 정말 드문 경험이었다. 그의 의학이 어떻게 꽃 피어날지에 대한 궁금함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마지막으로 좋은 이야기를 해 준 저자 강용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