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전이 검사를 한 결과 다행히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식 수술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아들의 검진이었다.

아들은 근무하는 공익기관에 휴가를 내고 4월 6일 하루 동안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자기 간을 떼어내는 모험을 하기 위해 실시하는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그 날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두려워하거나 망설이는 기색 없이 즐겁게 검사를 받았다.

검사 후에는 ‘결과가 잘 나와야 할 텐데’ 라고 진심으로 염려하며 결과가 나오는 4월 10일을 기다렸다.

나는 그런 아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을 지켜주어야 할 애비가 무거운 짐만 지워주는 것 같아 안타깝고 미안했다.

그러면서도 두 가지 묘한 감정이 마음의 저류에 흐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어떻게 하나, 상황이 아주 복잡해지는데’ 하는 막막함이었고,

또 하나는 ‘결과가 좋게 나오면 이미 큰 수술을 경험한 아들이 또다시 큰 수술을 해야 하는데’ 하는 애잔함이었다.

그랬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마음이 아프기는 매 한 가지인 상황이었다.

결과가 나쁘다고 해서 슬퍼할 수도 없고, 결과가 좋다고 해서 기뻐할 수도 없는 그런 묘한 처지에 내가 서 있었다.

 

시간이 가는 걸 지켜보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는 병상에서도 시간은 잘 간다.

아침을 먹고 나면 어느새 점심 식사가 나오니까.

물론 지루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시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김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병상에서는 시간이 가는 게 감사하다.

 

4월 10일 오후 2시쯤이나 되었을까.

별 생각 없이 병상에 누워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매우 밝았다.

아들은 대뜸 말했다.

“아빠, 수술 할 수 있대.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오케이 사인이 났어. 혹시 안 좋으면 어떡하나 조마조마 했는데…… 잘 됐다.”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아들의 목소리는 정말 밝았다.

밤에는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운이가 수술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한다며.

그리고 그 날 아내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아들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엄마, 나 기쁜 소식 있어.”

“기쁜 소식 있어.”

순간 뭔 일일까? 등기소 관련 일? 교회 청년부 일? 인터넷 경품 당첨? 스치는 생각들.

“어떤 소식?”

일하다 아들 방으로 들어가니

“나 기증해도 된대. 수술해도 된대…”

감격하는 아들의 목소리.

사랑이 폭발하는 소리.

순간! 세상에 이런 ‘소리’가 있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감동이 밀려온다.

‘아들의 생명으로 아빠가 사는 구나.

다운이 사랑으로 아빠가 살겠구나.’

“아이구, 어떻게 수술하지 우리 아들?”

“뭐, 어때 괜찮지.”

둘이 밥 먹으며 무섭거나 두렵지 않느냐고 물으니

“아무렇지도 않은데…”

순간 남편이 좋은 아들을 뒀다는 생각,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자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아빠에게 자신의 일부를 주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라면 모를까.

6시간이라는 대수술을 앞두고 흔쾌히 ‘기쁜 소식’이라고 외치는 아들.

나 기도하며 주께 부탁하리라.

수술하는 이 일 가운데서 하나님을 친히 경험하고 우리 가족 다시 한 번 새로워지기를!

생명싸개로 보호해 주시기를!

축복하리라.

하나님 은총으로 우리 걸어가고 있는 이 충만한 행복의 길!

 

 

그 후 아들은 수술대에 서기까지 한 달여 동안 자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속으로 망설여지지 않느냐?"고 물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우리 아들, 대단하다"고 하면 "아들이 아빠에게 간을 주는 게 뭐가 대단한 일이냐?"며 손사래를 친다.

"앞으로는 절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심심부탁을 한다.

아들의 일념은 오직 아빠에게 좋은 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과 반드시 수술대에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자기 몸 관리에 매우 신경을 썼다. 잠을 일찍 자고 잘 먹으려 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질병 때문에 수술대에 서는 것마저도 두려워하고 망설이며 도망치기 일쑤다.

그런데 아들은 자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 때문에,

질병 때문이 아니라 건강하기 때문에 수술대에 오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뻐했다.

 

아들은 8시간의 대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나 엄마를 만났을 때도

제일 먼저 “아빠, 수술 들어갔어?” 라고 물었다고 한다.

아내가 막 깨어난 아들을 애처로이 매만지며 “응, 지금 수술 중이셔.”라고 말하자

아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아, 이젠 됐다”며 안심했다고 한다.

그건 아마도 수술 전 날 밤,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에 따르는 위험성과 후유증의 유발 가능성을 설명하면서

수술 절차에 대해서도 말한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먼저 수술실에 들어가 복부를 열고 간을 직접 확인한 다음

간 상태가 좋으면 아버지도 수술에 들어가지만

좋지 않으면 수술을 진행하지 않고 중단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게 아들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빠가 수술에 들어갔는지 여부를 제일 먼저 물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참 대단한 놈이다.

그 녀석이 그렇게 대단한 놈인 줄 몰랐는데,

자유분방해서 무던히도 속을 썩이던 녀석이었는데

애비를 생각하는 녀석의 마음이 아들을 생각하는 애비의 마음보다 더 큰 것에 그만 가슴이 먹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