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이틀 앞두고 아들과 나는 나란히 입원을 했다.

언제나처럼 값이 비싼 2인실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2인실에 입원했다.

병실에 들어가 보니 아내와 함께 우리 가족 3명이 전부였다.

느낌이 좀 묘했다.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병원에 온 게 아니라 꼭 콘도로 가족 여행을 온 것 같다.”

세 사람은 서로 웃으며 묘한 느낌을 공유했다.

주일 오후여서인지 병원은 한가했다.

우리 가족도 큰 수술을 앞둔 가족답지 않게 편안하게 담소하며 여유롭게 지냈다.

오랜 만에 가족 전체가 집을 떠나 여유를 만끽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또 친구 목사와 예전에 목회했던 교회 성도들이 담임 목사님과 함께 방문해 반가운 얼굴들을 보는 기쁨도 함께 누리면서.

 

입원 둘째 날, 그러니까 수술 하루 전이다.

수술을 앞두고 아들과 나는 수술 준비를 해야 했다.

수술할 부위와 온 몸을 소독하고 깨끗하게 씻는 것은 물론이고, 장(腸)을 청소하기 위해 관장과 금식을 했다.

몇 가지 검사도 하고 혈액도 채취했다.

마치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전날의 여유로움과는 사뭇 달랐다. 몸의 세포들도 약간의 긴장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매우 당연한 사실을 발견했다.

내일이면 내 몸의 일부가 몸에서 떠난다는 걸.

그것도 간(肝)의 일부가 아니라 간 전체가 조금도 남김없이 몸에서 사라진다는 걸.

그렇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걸 인식하기 전과 인식하고 난 후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매우 생경한 느낌이 나를 휘감았다.

내 몸의 일부가 몸에서 떠난다는 사실이 매우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묘한 느낌이 정서를 자극했다.

나는 아내에게 조용히 말했다.

“내일이면 내 간(肝)은 몸을 떠나네? 그러고 보니 내 간은 오늘로서 임무 끝이구나!”

아내도 내 말을 듣고는 새로운 발견인 듯 “정말 그러네!” 라고 응대했다.

 

그렇다. 내일이면 내 몸의 일부였던 간이 몸을 떠난다.

한 평생 내 몸과 함께, 몸의 일부로서, 몸을 통해 살고, 몸을 위해 살았던 간,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고통을 참아내며 마지막까지 몸을 위해 분투했던 간,

또 오랜 세월 많은 고생을 시켰고, 많은 돈을 지출하게 했고, 많은 것을 포기하게 했던 간이 내일이면 몸을 떠난다.

나는 혼자 말했다.

‘간아, 고맙다. 고맙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그리고 너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보내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랬다.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사의 정이 솟구쳤다.

 

동시에 그동안 수고한 간의 마지막 모습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께 간을 버리지 말고 수술 후에 꼭 보게 해달라는 부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마 ‘유별나다’는 눈총을 받을까봐 겁이 났던 것일 게다.

나는 수술 후에야 겨우 용기를 내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내 간의 모습이 어떠했나요?”

의사 선생님 왈, “예? 간이요?”하며 웃는다. “자갈길처럼 울퉁불퉁 했어요.”

순간 마음이 짠했다.

오랜 세월 간이 당했을 고통과 힘겨움이 생각나면서, 수많은 혹으로 엉망이 되어버릴 때까지 참고 견뎌내느라 무진 애를 썼을 간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퇴원 후 집에서 뒤늦게 영화 “워낭소리”를 봤다.

아들이 컴퓨터로 다운로드해줘서 혼자 작은 모니터로 감상했는데,

특별한 꾸밈이나 과장 없이 소와 촌로(村老)의 일상을 소박하게 스케치한 다큐멘터리였다.

영화 독자(讀者)를 자극하기 위해 긴장을 조작하거나 몰아치는 법이 없었다.

영화는 마치 호수의 잔물결 같이 잔잔하게, 그리고 심히 느리게 흘러갔다.

하지만 소와 촌로의 동행이 마음 깊이 와 닿았다.

그리고 소가 죽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충격과 감동을 가눌 수가 없었다.

다 늙어 피골이 상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힘을 다해 일하던 소가

한 순간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정말 충격이었다.

그 육중한 몸이 대지에 너부러지는데 ‘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그건 단지 탄식이 아니었다. 단지 충격이 아니었다.

소의 죽음에서 내가 본 것은 ‘거룩함’이었다.

지금껏 어디에서도 목격하지 못했던 ‘거룩함’의 실체를 나는 영화 속 소의 죽음에서 보았다.

그리고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몸에서 떨어져 나간 간의 죽음이 오버랩 되었다.

내 간도 저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그랬다. 영화 속 소의 삶과 죽음은 ‘충성’과 ‘거룩’이 뭔지를 보여준 기막힌 계시였다.

그 후 나는 소를 소라 부르지 않는다. 겸손히 예의를 갖추어 우옹(牛翁)이라 부른다.

 

이제 수술이 끝난 지도 5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상처투성이였을 간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이별한 게 미안하고 아쉽다.

자기를 죽이면서까지 몸을 위해 불사른 그 장렬한 모습,

그 영광스러운 상처투성이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지금쯤 그 간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어디 쓰레기장에 버려졌을 것이다.

내 생명을 살리며 나의 일부였던 간이 이제는 나와 상관없이 어느 쓰레기더미에 흔적조차 없이 묻혀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함께 있음’과 ‘함께 없음’의 간격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함께 있을 때는 간 때문에 온 몸이 고통을 당하고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함께 보호를 받았고, 함께 생명의 기운을 나누었다.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는 절대적 관계였다.

그런데 함께 없는 지금은 다르다.

나는 살아있는데 그 간은 죽어 있다.

나는 여기 따뜻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생명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데 그 간은 어느 쓰레기더미에 묻혀 있다.

그렇다. ‘함께 있음’과 ‘함께 없음’의 간극은 그처럼 크다.

그 무엇으로도 매울 수 없을 만큼 크고 깊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예수님 안에 있음)과 예수님과 함께 없는 것(예수님 밖에 있음)의 차이도 아마 그럴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와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을 때, 내 삶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 ‘함께 할 수 없음’의 비정함이여! ‘함께 할 수 있음’의 영광과 복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