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5월 12일 수술하는 날이 밝았다. 눈을 떠보니 새벽 6시다.

아들은 잠에서 채 깨어나지 않았는지 게슴츠레한 표정이다.

7시면 아들이 수술실에 들어가야 한다. 멀쩡한 몸을 찢고 자르기 위해.

심란했다. 뭘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하고 있는데,

멀리서 친구 목사님 부부와 향상교회 목사님, 사모님, 전도사님, 가정교회 목자와 목녀,

그리고 큰형님 부부가 달려와 병실이 북적였다.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온 분들이 고마웠다.

잠에서 덜 깨어난 아들은 얼굴을 씻고 수술복으로 갈아입더니 웃음기를 보였다.

하지만 아들의 얼굴에선 긴장이 묻어났다. 얼굴 근육이 약간 굳어있었다.

사실 아들은 키 171센티에 몸무게 57키로가 고작인 녀석이다.

어려서부터 통통해 본 적이 없는 왜소한 체구에다가

오목 가슴이 깊어 갈비뼈 7개를 뒤집어엎는 큰 수술을 해야 했다.

그것 때문에 군대도 현역으로 가지 못하고 공익근무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죽어가는 애비를 살려보겠다고 또다시 수술대에 서려하고 있다.

애잔했다. 슬펐다.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기도했었다.

아브라함의 순종을 받으시고 이삭의 몸에 칼을 대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서

아들 다운이가 이미 자기 몸을 내놓기로 작정했으니,

아들의 진정한 헌신과 사랑을 받으시고,

아들의 몸에 칼을 대지 않게 해달라고.

아들의 몸에 칼을 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간을 회복시킬 수 있지 않으시냐고.

전날까지도 나는 그렇게 기도했었다.

그런데 아들은 지금 수술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안타까웠다. 우울했다. 울고 싶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다들 병실에 선 채로 간단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달려와서는 수술실에 들어가야 한다며 서두른다.

나는 침대에 누운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아들도 내 손을 꼭 잡았다.

복도까지 따라 나가 다시 한 번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없이 돌아섰다.

다른 이들은 수술실 입구까지 따라갔지만 나는 도저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들은 발길을 멈춘 내게 손짓하며 “아빠! 잘해!” 하고 씩 웃었다.

아들은 그렇게 갔다.

6시간 동안 죽음 같은 수술을 하기 위해,

자기 몸을 찢고 몸의 중요한 장기를 애비에게 주기 위해 수술실로 갔다.

 

홀로 병실에 돌아오니 한없이 공허하고 허전했다.

나는 기도했다. 제발 수술이 잘 되기를. 아들의 안전을 지켜주시기를.

그리고 성경을 펼쳤다.

로마서를 읽고 있었기에 연이어 로마서를 읽으려는데 수술을 받고 있을 아들의 모습만 아른거릴 뿐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산소마스크를 하고 복부를 드러낸 채 죽은 듯 수술대에 널브러져 있을 아들의 모습만 왔다 갔다 했다. 자책이 됐다. 나 때문이라고. 나 때문에 저 아들이 저리도 큰 대가를 치루고 있다고.

하지만 두렵거나 불안한 마음은 없었다.

비록 아들의 몸에 칼을 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아들의 헌신과 사랑을 열납하실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으나 마음이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아들이 수술실에 들어간 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나도 수술실로 향했다. 여전히 마음은 평안했다.

아무런 두려움이나 불안이 없었다. 그리 긴장되지도 않았다.

친구 목사님이 수술실 입구에서 외쳤다. "GOD Bless You"

나는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친구의 축복을 가슴으로 받았다.

아니다. 가슴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가슴에 꽂혔다고 해야 옳다.

그 말과 함께 하나님이 나를 축복한다는 사실이 의심할 수 없는 절대 진실로 다가왔으니까.

든든했다. 대기실에서 30여분 정도 기다리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긴장되지 않았다.

아내가 옆에 서서 내내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따뜻하고 좋았다.

아내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니 평안해보였다.

 

수술실에 들어가 조금 있으니 마취하는 의사가 왔다.

마스크를 입에 대더니 숨을 크게 들이 쉬라 한다.

몇 번이나 쉬었을까.

나는 이내 곧 세상에서 가장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게 없다. 어떤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완벽하게 정지해버린 완전한 잠이었다.

아니, 죽음 같은 잠이었다.

 

그리고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주변이 분주하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눈을 떠보라고 하는데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또 내 이름을 부르면서 “정병선님, 수술이 잘 끝났어요. 대답해 보세요.” 하는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렸지만 목이 묵직한 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10시간의 깊은 잠에서 어렴풋하게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희미했다.

하지만 내가 수술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리고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감지됐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수술이 잘 됐다고. 다운이도 수술이 잘 되어 병실로 들어왔다고. 감사했다. 감사했다.

눈에는 절로 눈물이 맺혔다.

마음이 소리 없이 외쳤다. ‘아! 살았구나! 살았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와 감동에 사로잡혔다. 환희로 출렁였다.

비록 인식은 희미했고, ‘살아있음’에 대한 의식도 실낱같았지만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반가웠다. 몸에는 수십 개의 주사액이 흘러들어가고 있고,

목에는 인공호흡을 위해 굵은 관이 들어 있고,

코에도 호스가 연결되어 있고,

몸은 철근 콘크리트처럼 무겁고 좌우로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살아있다’는 사실 앞에선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명의 환희를 억누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살아있다는 사실과 ‘살아있음’에 대한 환희만이 내 의식과 감각을 지배하고 있는 전부였다.

 

중환자실에서 꼬박 팔일을 지냈다.

그 고통과 그 불편함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불평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퇴원할 때까지 간호사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다. 정말 짜증과 불평이 없는 모범 환자였다.

죽음에 들었다가 다시 살아난 생명의 환희가 너무 컸기에.

 

나는 지금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좋고 기쁘다.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황홀하다.

때로 내가 나를 바라보며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한다. 마치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그게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려 제 살을 꼬집어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