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으로 전락하는 개인적 안주파

  한국교회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개인적 신앙에 안주하는 안주파다. 이들은 교회야 어떻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당연히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이들 중에는 신앙인으로서의 기본 의무를 다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나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서 말씀을 알고자 하는 갈망이라든지 의에 대한 굶주림 같은 걸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피차 사랑하고 돌보는 지체적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이들은 그저 신앙생활이 편안하면 된다. 신앙적인 쇼핑을 적당히 즐길 수 있고, 살아가는데 위로와 힘을 얻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이런 자들도 냉소적인 비판파처럼 그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주변부에 머무는 사람들이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건 자연스런 이치다. 모든 사람이 중심부에 설 수는 없는 법,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부에 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달라야 한다. 교회 안에 주변인이 많아지는 것은 교회의 교회됨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하찮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건 교회의 본질이 걸린 문제다. 그런데 교회 안에 점차 주변인이 많아지고 있다. 개인의 평안에 안주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삿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 안에 주변인들이 많아지는 것일까? 그 배경을 살펴보자.
  첫째, 예전에는 열심히 신앙생활 했던 사람이 교회와 목회자 때문에 시험이 들어 더 이상 교회 안으로 깊이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인격적인 교제가 소원해져 자연스럽게 주변부로 밀려나는 자들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두 가지 요인이 주변인 생산의 주된 요인이면서 가장 심각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먹고 사는데 쫓겨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 자들이 경제적인 열악함 때문에 교회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생존경쟁의 어려움과 경제적 상황 때문에 교회의 주변으로 밀려나간 자들이다. 넷째, 신앙이 나태해지거나 회의에 빠져서, 혹은 본인의 신앙은 확실하지 않은데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이끌려 나오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신앙의 부족으로 인해 주변인이 될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대80인 교회 풍경

  암튼, 교회 안에 냉소적인 비판파와 안주파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예삿일이 아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심각한 징후임에 틀림없다. 그 수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대충 어림잡아 본다면 아마 5% 정도는 비판자 그룹에 속하고, 60% 정도는 개인적인 신앙에 안주하는 주변인들일 것이다. 큰 교회는 주변인이 80% 정도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사실은 예수님의 경우도 그랬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적과 권능을 보고 놀라며 따랐지만 제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때의 호기심과 자기 필요를 얻기 위해 모여든 군중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은 이와는 또 다르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게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20대80 법칙을 들여다보면 한국교회의 문제가 보인다. 이 법칙은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가 말한 것인데, 전체 결과의 80%는 전체 원인 중 20%에서 비롯되더라는 관찰 결과를 토대로 형성된 이론이다. 다시 말하면 20%의 소비자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든지, 국민의 20%가 전체 부(富)의 80%를 차지하는 경향, 직장에서 20%의 근로자가 80%의 일을 하는 경향 등을 함의하는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물론 이것이 불변의 사회 법칙은 아니다. 과거의 촌락 공동체 시절에는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함께 생산하고 함께 나누는 공동 사회였다. 각각의 역할은 다르지만 전체가 참여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해 도시화되고, 지식 정보사회로 발전하면서 개인의 능력에 따른 생산력의 차이가 극대화되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개인의 경쟁력과 능력의 차이가 생산력의 차이로 연결되면서 능력 있는 20%가 전체 생산량의 80%를 생산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능력 있는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게 되는 부의 집중현상이 나타났다. 요즘에는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면서 20대80이라는 사회 현상은 세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20대80이라는 사회현상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 속에서 이기적인 탐욕으로 얼룩진 인간의 자화상을 읽어낼 수 있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가지려고 하는 끝없는 탐욕이 결국 20대80이라는 사회 불균형을 낳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걸 찾아낼 수 있다. 때문에 20대80 법칙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얼마나 비정한지를 말해주는 인간 고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참담한 사실은 20대80이라는 사회 현상이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를 보라. 전체 교인의 20%가 교회 일의 80%를 감당하고 있다. 20%의 대형교회가 전체 성도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20%의 교회가 전체 자산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정부와 국회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고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목소리라도 들리는데, 교회에서는 그런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교회가 하는 말은 이렇다. 대형교회는 하나님이 축복하신 결과라고. 작은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고. 대형교회를 문제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각이 아니라 인간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입도 벙끗 못하게 한다. 교회는 참 이상하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하셨다고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만 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교회의 편차를 줄일 수 있는지, 작은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갈 수 있는지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오직 더 크지 못해서 안달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교회 안에까지 20대80이라는 자본주의의 법칙이 들어왔을까? 왜 현대교회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구조를 그대로 빼닮았을까? 간단하다. 교회가 탐욕과 이기심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 고유의 탐욕과 이기심이 교회 안에서도 가감 없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주변인이 많아지고, 또 많아질 수밖에 없으며, 주변인이 많아지면 교회의 본질이 훼손된다는 것은 너무 자명한 사실. 그런데 교회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교회는 여전히 교회 성장에 몰두하고 있다. 교회의 교회됨이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큰 교회를 이루어야겠다는 욕망을 어찌하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다. 왜? 큰 것 속에 담겨있는 온갖 영광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바로 이 달콤함, 큰 것 속에 담겨있는 온갖 영광의 달콤함 때문에 교회 안에 아멘파, 냉소적인 비판파, 개인적인 안주파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길었다. 정리하자. 교회 안에 개인적인 축복과 가정의 평안만을 추구하는 안주파, 교회 중심에 들어오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주변파-관망파가 많아지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무너뜨리고, 교회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냉소적인 비판파는 교회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하고 차가운 냉기가 돌게 할 위험성이 있다. 어린 양 같은 아멘파-순종파는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데 참여하기보다는 교회 왕국을 건설하는 용병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하여, 이들로서는 한국교회를 회복시키고 건강하게 세워나가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교회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교회 안에 있어야 할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복음과 상황 2008.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