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나의 거울

  삶이란 한없이 아름답고 위대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갈등과 아픔을 피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람이 다양하기 때문에 갈등과 논쟁을 피할 수 없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상처를 피할 수 없다. 이런 인간적 현실에서 하나의 예외가 있을 수 있다면 아마도 예수님을 꼽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죄도 없고 욕심도 없는 분이니까. 오른쪽 뺨을 치는 자에게 왼쪽 뺨을 내미는 분이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분이니까. ‘진리’ 그 자체이니까. 그러니 그런 분이라면 누구와 다투거나 싸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아니, 그래야 할 것 같다. 예수님의 삶은 ‘평화’ 그 자체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니다. 예수님의 짧은 삶은 누구보다도 치열한 논쟁과 갈등에 휩싸인 삶이었다. 죽이려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위험천만한 삶이었다. 그분은 ‘진리’ 그 자체였지만 그분의 삶은 평화롭지 못했다. 그분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지만 그분의 삶은 평화롭지 못했다. 내면의 평화야 잃은 적이 없었겠지만 관계의 평화는 없었다.
  왜일까? 진리이신 그분, 평화의 왕이신 그분이 평화를 해치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다. 진리는 결코 평화를 깨는 법이 없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오직 진리를 따라 살았을 뿐 단 한 번도 진리를 이탈한 적이 없고, 평화를 해친 적이 없다. 진리엔 불의가 없기 때문에 평화를 난도질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그분의 삶은 평화롭지 못했다. 진리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임할 거라고 생각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왜일까? 왜 진리의 화신이요 평화의 왕이신 그분의 삶이 평화롭지 못했을까?

  그건 사람이 진리를 싫어하고 거부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임하지 못하는 것은 진리가 인간의 삶을 공격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진리를 거부하고 공격하기 때문이다. 불의가 진리를 견디지 못하고, 어둠이 빛을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의 왕’이시요, ‘진리’이시며, ‘빛’이신 예수님의 삶이 어느 누구의 삶보다 더 많은 핍박을 받아야 했고, 공격과 죽임의 위협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분의 평화롭지 못한 삶은 인생의 평화롭지 못함을, 그분이 당한 조롱과 버림받음과 십자가 죽음은 인간의 완악함과 잔인함과 무지를 보여주는 거울인 셈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진실로 인간과 세상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맑은 거울이다. 이 거울엔 어디 하나 티가 없고, 왜곡이나 뒤틀림이 없다. 그래서 인간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준다. 내 작은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그건 사실이다. 예수 앞에 설 때 나와 세상의 실상이 가장 잘 보이니까.
  그러므로 나와 너를 보려면, 나와 네가 살아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예수라는 맑고 깨끗한 거울 앞에 서야 한다. 이 거울 앞에 서 보면 나와 네가 얼마나 ‘진리’와 ‘빛’을 싫어하는지가 보인다. 절로 보인다. 그런데 추한 내 모습을 정직하게 대면할 용기가 없어서 그 거울 앞에 서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회피하기 때문에 거울에 비친 자기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조차도 예수를 통해 영생은 얻으려 하지만 예수라는 거울 앞에 자기를 비추어보려 하지는 않는다.

  예수는 거울이다. 나와 세상을 비추어주는 맑고 깨끗한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