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소우주라고 할 만큼 신비하고 복잡한 존재다. 온갖 과학을 동원해 샅샅이 연구한다 해도 인간의 실상을 온전히 알 수가 없고, 단일한 해석의 눈으로는 인간의 본성을 파악할 수가 없다. 하여, ‘단지 이것뿐이라는’ 서술은 거의 확실하게 진실에서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인간은 단지 이것뿐’이라며 너무 쉽게 단정하는 오류를 범해왔다. 싱가포르의 조직신학자인 사이몬 찬은 세 가지 형태의 환원주의적 인간 이해를 유물론적 환원주의, 심리적 환원주의, 그리고 영적 환원주의라고 지적했다(영성신학. 81쪽).

 

유물론적 환원주의는 인간의 본질을 물질세계의 몇 가지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실체를 부동의 원자들로 환원한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로부터 지성을 대뇌의 화학작용과 동일시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는 매우 길고, 형태 또한 다양하다.

심리적 환원주의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심리적 차원에서 설명한다. 대표적으로 프로이트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귀신에 사로잡히는 것을 정신분열증에 불과한 것으로, 회심은 유아적인 의존심에 불과한 것으로, 기도는 자기 암시에 불과한 것으로, 죄는 중독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적 환원주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범하는 잘못으로, 모든 것을 영적 전쟁으로 몰아간다. 우울증은 우울의 영 때문이고,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것은 거짓의 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고, 육체의 병은 신앙의 부족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본다.

 

참으로 명확하고 분명하다. 사실 모든 환원주의가 그렇다. 도대체 모호한 것이란 없다. 역설과 신비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분명하게 해명된다. 그런데 매우 명확하고 분명하게 해명된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사실 인간은 육체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마음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영혼이기만 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인간은 육체와 마음과 영혼이 신비한 연합을 이룬 개별자일 뿐만 아니라 위로는 창조주 하나님, 옆으로는 만물과도 관계를 이루고 있는 참으로 다중적이고도 다층적인 관계적 존재다. 사람뿐 아니라 온 생명과 만물 또한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한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삼위일체라고 하는 관계성 안에서 존재하신다. 때문에 어느 한 가지 시선으로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항상 위험천만한 일이며, 환원주의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심각한 오해와 왜곡을 초래하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영적 환원주의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이 잘 되건 잘못 되건 하나님께로 화살을 돌린다.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받아들인다. 만사가 잘 풀리면 믿음이 좋아서 축복받은 것이라고 해석하고, 잘 풀리지 않으면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신앙적으로 해석하는데 길들어 있다.

믿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믿음은 삶의 중심이요 밑동이다. 그러나 영적인 것이 나머지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일방통행식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다. 아니, 그건 진실이 아니다. 영혼이 마음과 몸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몸도 마음과 영혼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아주 사소한 행위를 보라. 얼굴에 피어나는 아주 작은 미소에도 육체적, 심리적, 영적인 요소가 투영되어 있다. 숲을 산책하는 것도 육체적인 행위이기만 한 건 아니다. 산책을 하는 발걸음 하나에도 마음과 영혼이 참여하고 있으며, 기도라고 하는 영적 행위에도 육체와 마음이 참여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순히 영(spirit)과 영(Spirit)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는 예배와 기도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함께 참여하는 전인적 행위이며, ‘나’와 ‘너’와 ‘세상’이 만나는 공동체적 행위이다. 진실로 그렇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항상 전인적이며 또한 상호적이다. 그런데 예배와 기도를 하나님과 나 사이의 문제라고 우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 문제를 영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교회 안에는 영적 환원주의가 일상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 편협한 영적 환원주의자들을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며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인간을 영적인 시각으로만 해석하는 영적 환원주의는 가장 영적이지 못한 반신앙적이고 반성서적인 일탈임을.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온 구원을 영적인 것, 죽음 이후의 것으로 변질시키는 기독교 형질변형임을. 진정한 영성은 전인으로 사는 것이며, 육체와 마음까지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두는 것이고, 다중적이면서도 다층적인 관계의 시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