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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찬란한 가을 햇살이 마당에 쏟아졌다.

가을 햇살에 소국과 보라색 자잘한 꽃봉오리들이 소리 없이 벌어졌다. 

노랑 보라 색 꽃잎 위로 가을 햇살과 바람이 놀러와 살랑거린다.

그 광경을 보는 것 만으로도 세상 부러운 게 없다. 이 순간 만은 내가 가장 부자다.


가을 햇살은 두고 보기 아깝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뭐라도 말려야 할 것 같다.

들깨를 베어 말렸다.

초여름 쯤이였나..들깨 모종철이 끝나 갈 무렵

옥분 언니가 들깨 모종이 남았다며 심어 보란다. 

깻잎 먹을 요량으로 들깨를 조금 심었다. 무심히 남는 땅에.

그렇게 기대 없이 심은 들깨는 무성하게 자라났다.

키기 한자나 웃자란 들깨 잎을 여름 내 따 먹고 깻잎절임을 하고, 

서울 사는 이들에게 따 보내도 여전히 남아돌았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들깨 밭을 스치면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가. 깨알이 맺힌 거다.

기대하지도 않던 들깨가 열매까지 맺으니 이걸 어쩐담.. 하릴없이 두고 보는데 

어서 베어 널어야 한다고 옆집 아저씨가 귀띔을 해 주신다. 

서툰 낫질에 손가락을 다치면서 들깨를 베어 널었다,

다행히 연일 가을 볕이 좋았다.

엊그제 남편과 들깨를 거두기로 의기 투합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이 들깨를 털겠다고 각목을 가져온다.ㅋㅋ

 -도둑 때려 잡으려우? 무거워서 안되요. 이런 부지깽이로 털어야지.

날렵한 부지깽이로 시범을 보였다. 마른 깨가 우수수 떨어진다

털면서 한 줌이나 나올까 궁금했다. 내가 털고 난 들깨를 남편이 갈무리 했다.

꼼꼼한 남편은 전기줄을 가져와 선풍기를 연결해 티끌을 날린다.

깨끗하게 들깨만 남았다 . 제법 묵직하다,  달아보니 2.75킬로그램! 오오.. 기대 이상이다. 


-하나님은 매번 우리의 수고보다 훨얼씬 더 많이 되돌려 주신다. 그지?

내가 흥분해서 말했다. 추수의 기쁨을 알 것 같다.

이 정도면 첫 농사 치고 성공이다~!

들깨를 조금 더 사서 들기름을 짜야겠다.

고추에 비하면 들깨는 거저 얻은 기분이다.


  올해는 앞집 텃밭을 얻을 수 있어서 처음으로 고추를 많이 심어 보았다 

고추는 힘들었다.

정성을 많이 들였는데도 탄저병이 들고 말았다.

그런대로 초반에 거두어  말린 고추로 방아간에 가서 고추장용과 김치용, 두개로 나누어 빻아왔다.

태양에 말리느라 애썼는데도  빛깔은 그닥 곱지 않다. 선홍빛 태양초를 상상했던 거에 비하면.

총 4킬로그램. 내게는 너무 특별한 고추가루다. 

그도 그럴 것이

봄에 고랑을 만들고 북을 돋우워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비바람에 고추대가 부러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세우고 두 번이나 줄을 매주었다.

빨알간 고추가 달릴 즈음이면 아침마다 고추를 따서 볕에 말렸다. 

잘 마른 바삭한 고추를  수건으로 일일히 닦아 빻은 고추가루다.

이런 땀과 수고가 들어갔으니 어찌 아니 귀하겠는가. 


 고추가루를 금가루 인양, 소중히 받아 들며

처음 수확한 고추가루라고 하니 방아간 주인이 웃는다.

고추가루는 서울 사는 밭 주인과,

뉴질랜드의 동서와 캄보디아의 동생과 나누었다. 

시골 살면서 무언가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내 정성이 고스란히 들어간 것들로 말이다.

닭을 키워 청계란을 나누고, 오이를 따서 아삭한  오이지를 나눌 수 있고...

끝물 고추로는 새콤달콤짭잘한 고추절임을 나누어 먹을 수 있다.

아, 또 있다.

옆집 순희언니네 무농약 사과로 사과잼도 만들어 나누어 먹는다.

내년에는 마늘과 양파도 조금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마늘과 양파를 공짜로 얻은 앞집 텃밭에 심었으니까.

농사짓는 이들이 들으면 기가 차겠지만 나는 농사가 재밌다. 많이 하지 않아서 일거다.

항상 심은 것 보다, 애쓴 것 보다 과분하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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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또 하나 .

우리 동네에서만 하던 중고 바쟈회를

지난 목요일에는 진안군 한마당 축제로 진출했다.

읍내에 나오니 고객도 다양하고 더 활기차다. 

젊은 아가씨들도 보이고(행사 관계자들이겠지만) 생기있다.

기증 받은 물건들을 아주 저렴하게 판매한다. 

그래선지 언제나 우리 부스가 가장 인기다. 

사는 이들이 너무 싸다며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는 취지를 알아서지만.

우리 동네에선 절대 팔리지 않는 뽀죽 구두도 이곳에 오니 주인을 만난다.

생기발랄한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 유쾌하다.


농사를 지으면 자연에 고마운데

바쟈회를 하면 사람이 고맙다.

기꺼이 물건을 챙겨주는 이들.

 택배로도 기꺼이 보내주는 사람들의 정성이 고맙고

산더미 같은 물건들을 일일히 정리해서 바쟈회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손길들,

또 사주는 사람들 마음이 고맙다.

3,4십 만원에 불과한 수익이지만 액수에 관계없이 우리는 할 때마다 뿌듯하다.

이래서 중고 바쟈회는 두루 행복한 일이다.

이곳에 와서 나는 삶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건 단순할수록 평화롭고, 자연에 가까울수록 충만하다는 사실이다.

가을은 이런 비밀의 진수를 알려주는 계절이다.

나눌 것이 많은 올 가을도 이렇게 마음만은 부자로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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