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끼오~~~

새벽닭 우는 소리에 잠이 깨다.

홰를 치며 수탉이 운다처연함과 신선함이 함께 뒤섞인 그 긴 여운은

수십 년의 세월 너머 어릴 적 신새벽의 아스라한 향수를 불러온다.

 

아침식사 후, 안내자와 짐꾼 두 명을 소개받았다.

오늘부터 우리가 트래킹을 마칠 때까지 길을 함께 할 이들인데

인상들이 사뭇 순해 보여 마음이 놓인다.

가이드 유겐드레이 씨는 어눌하지만 한국말이 통한다.

오늘 하루는 자동차로 샤브로벤시까지 자동차로 갈 예정이다.

그리고 내일부터 샤브로벤시에서부터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되는 거다,                  

카트만두에서 샤브로벤시까지는  130킬로인데 길이 험해서 8시간에서10시간이나 걸린단다.

 

털털거리며 나타난 고물자동차를 보니 앞으로의 장장 10시간 주행이 슬쩍 걱정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차에 오를 수밖에. 네팔에선 이 정도도 호화스럽단다

그것도 잠시, 도시를 벗어나자 우린 곧 창 밖에 시선을 빼앗겼다.

먼지 나는 길가의 가옥들과 주민들의 빈한한 살림살이가 우리의 5,60년대를 방불케 한다

 경사진 언덕을 논밭으로 만들어 놓은 풍경은 마치 갈색과 녹색띠를 둘둘 감은 듯 하다.

 척박한 산등성이를 개간해 살아가는 이들. 끈질긴 생존력이다.

밭을 일구는 여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칫하면 밭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다.

 

한두 시간쯤 달려 동네가 나오자 짐꾼들과 운전기사가 뭐라고 외친다. 차를 마시고 가자는 얘기.

그들은 찐 계란 삶은 콩을 찌아와 함께 먹었고 우리도 네팔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차, 찌아를 마셨다.

홍차에 생강을 넣고 끓인 후 우유와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시는 달콤한 밀크티인데 인도의 짜이와 흡사하다.

  여기선 "찌아" 란다한참을 달리다 동네가 나오니 포터들이 뒤에서 또 소리친다.

  이번에는 밥을 먹고 가자는 소리

 가이드 말에 의하면 네팔인은 하루 두끼만 먹는데 아점을 겸한 brunch 오전 11시쯤 먹는단다

그럼 아까 먹은 건? 그건 간식이란다. 무슨 간식을 남들 아침식사만큼 먹노??

생전 바쁠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 그래. 느긋하게 가자. 세월이 좀 먹냐.

우리는 그들이 식사하는 동안 하릴없이 또 한잔의 찌아를 축내며 기다렸다.

가이드와 짐꾼 둘 그리고 운전기사가 아침으로 나온 밥과 커리소스의 가장자리를

손으로 재빨리 버무려서 식욕 좋게 먹어 치울 때까지.

 

다시 출발한 자동차가 둔체라는 동네에 이르자 또 멈춘다. 이번엔 차가 고장이란다.

어쩐지.. 쉴 때마다 차를 들여다 보는 기사의 눈빛이 심상치 않더니만…!

오늘 안에 샤브로벤시에 도착 할 수 있으려나 불안해진다.

둔체에 내려 차를 손 볼 동안 동네를 구경했다.

우리 눈에는 초라한 마을이지만 이 산간지역에서는 제법 큰 행정도시란다.

은행도 있고 상점도, 학교도 있단다. 트래킹 코스의 중요 지점답게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 하우스들도 눈에 뜨인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대로에 쏟아져 나와 놀고 있다가 딸아이에게 벌떼처럼 달라붙는다.

딸의 디카에 찍힌 자기들의 모습을 보느라 신이 나서 왁자하다.

 학원도 없고,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부모도 없는 별천지의 아이들방치된 것처럼 보이지만

표정에 그늘이 없다.

잘 씻지 않아 피부가 터지고 거친 바람과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옷차림새는 남루하지만

천진하고 귀여운 아이들이다. 그러고 보니 영락없는 4,50년 전의 우리들이다.

반면에 헬로우 펜, 헬로우 초코렛! 하는 아이들도 눈에 띈다

딸아이에게" 헬로우 마이 시스터 룩 엣 미! "를 외치며 지나는 짖궂은 소년 때문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거리에는 놓아먹이는 토종 암탉들이 병아리를 몰고 다닌다.

이 평화로운 산간마을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언제부터일까.

우리 같은 외국 관광객들에 의해 어른들은 돈 맛을, 아이들은 초콜릿의 달콤함을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씁쓸해 진다.

 

두 시간 만에 자동차가 다 고쳐졌단다. 차는 다시 가파른 고갯길을 꼬불꼬불 휘돌아 달린다.

차바퀴가 한 뼘만 벗어나도 천길 낭떨어지다차선도 없는 좁은 길과 그 밑의 천길 낭떨어지를 보면

간이 오그라 붙는데 운전기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돌짝길을 잘도 운전을 한다

 마주 오는 차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갈 때마다 손에 땀이 쥐어진다. 거의 곡예수준이다.

더욱 진풍경인 것은 그 고갯길을 달리는 버스 위에 사람들이 빼곡히 올라타 있다는 사실이다.

자칫 졸기라도 해서 굴러떨어 진다면 뼈도 못 추릴 판인데 그 위에 올라탄 이들은 낙천적이기만 하다.

 

 드디어 샤브로벤시에 도착. 저녁 6시가 넘었다.

아침 8시에 출발했으니 꼬박 10시간이 걸린 셈이다.

비포장길에 온 몸을 휘저으며 달려왔더니 뼈마디가 녹작지근하다.

피스플 호텔이라는 산장에 짐을 풀다,

깨끗하고 널찍한 숙소가 방 하나에 100루피. 우리 돈으로 2천원을 좀 웃도는 가격이다.

 방 두 개를 잡았다혼자 독방을 쓰게 된데다가 예상했던 것 보다 쾌적한 환경에 딸애는 흡족한 모양이다.

", 조오타, 역시 떠나 오길 잘했어~! 그치? 아빠?"

남편도 아직까진 별 불만이 없다

태양열로 데워진 더운물로 공중화장실에서 손발과 얼굴을 씻고 저녁 식사를 했다.

야채스프와 야채 감자 치이즈를 넣은 "모모"라고 부르는 네팔 만두를 시켜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

뜨거운 물을 얻어 가져 온 봉지커피로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그런데 포터가 후식까지 내오는 게 아닌가, " Thank you~!"

서툰 솜씨로 투박하게 사과와 귤을 깍아 온 모양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고맙다.

짐만 들어주는 줄 알았는데 이런 서비스까지 받다니.

 

저녁을 먹고 나니 쒜에~ 하고 한바탕 소나기가 퍼붓고 지나간다.

침대에 누우니 어디선가 계곡물 쏟아지는 소리가 폭포수처럼 들려온다. 비가 멈추었나 보다.

갑자기 하루 사이에 깊은 오지에 들어와 박힌 듯, 떠나 온 세계가 까마득히 머얼게만 느껴진다.

어둠이 깊어 갈수록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만 들릴 뿐.

천지간에 잡다한 것은 다 사라지고 계곡물 소리만 명료하게 살아 흐르는 밤.

그야말로 peaceful한 밤이다.

샤브로벤시의 피스플 산장에서 첫 밤이 이렇게 깊어간다.

 (2009.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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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논밭에서 일하는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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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버스 위에 올라  탄 승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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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체의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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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2-아이3.jpg 네팔2-아이4s.jpg 네팔2-아이5s.jpg 네팔2-아이들2s.jpg 

         

둔체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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