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심한 두통을 안고 아침을 맞았다.

자고 일어나도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하다. 구역질까지 난다.

먹은 게 없으니 맹물만 토해냈다아침부터 꽥꽥 헛구역질하는 폼이 딱 애 밴 임산부 증세다.

노오랗게 떠 있는 내 얼굴을 보고 가이드가 괜찮느냐고 물어온다. 두통이 심하고 토하기까지가 했다니까

 걱정스런 얼굴로 약을 먹으라고만 한다. 남편도 딸애도 잠시 애처롭게 보는 눈빛이더니

  예정대로 올라갈 준비를 한다

심사가 뒤틀리며 쪼잔해진다나는 한없이 오그라진 마음이 되어 어기적어기적 따라 걸었다.

 고소증세 중 하나가 판단력이 흐려지고 소심증이 생기는 거라는데, 아주 제대로 걸린 모양이다.

어제 본 별 밤의 감동도 오간 데 없고 랑탕의 풍경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랑탕인지 씨부랑탕인지, 어서 빨리 이 고통스러운 곳을 벗어나고만 싶을 뿐이다.

 

오늘은 랑탕(3,500m)을 떠나 신둠(신곰파)을 거쳐 캉진곰파(3,800m)까지의 거리다.

 죽을 맛이다. 300미터를 내려가도 시원찮을 판에, 300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게다가 6,7킬로의 짧은 거리지만 산세가 험해 각오해야 한다니 부담이 팍팍 밀려온다

남편은 이상한 승부 근성이 불 붙어서 밀어 부친다. 계획대로 그날의 일정을 정복해야 한다는 일념이다.

속으로 궁시렁거리면서 따르는 수 밖에.  내가 원한 길이니 할 말은 없다.

 가장 먼저 뻗을 줄 알았던 딸아이는 예상을 넘어 잘 견뎌낸다

익숙지 않은 음식도 잘 먹고 불편한 재래식 화장실도 잘 들어간다

한두 번 무섭다고 못 들어간 것을 제외하곤. 이틀 동안 오래 걸어서 발에 물집이 잡혔는데도 군말 없이 따라붙는다.

예상했던 것보다 강적이다. 하기야 한창 때의 체력이니까. 결국 우리 중 나만 골골대고 있는 셈이다.

 내가 너무 좌절을 하니 가이드 유겐드레이 씨가 자기도 처음에 3,500m에서 고소가 왔다고 넌지시 귀띔을 한다.

그 말에 조금 위안이 된다.

 

포터 산토스 씨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보다. 머리가 아프고 목이 아프단다.

그가 목이 아프다는 말에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무거운 짐을 끈으로 묶어서 그 끈을 이마에 두르고 머리 힘으로 받치고 다니기 때문에 

혹시 목 뼈가 잘못되었나 싶어서다.

그런데 감기기운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낮에는 진땀을 흘리고 저녁에는 찬 바람을 맞으니 감기 들기 십상이다.

가져온 감기약을 주니까 약을 못 먹는단다. 약을 먹어 버릇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을 먹으면 취한다고.

할 수 없이 비타민 정도만 건네줄 수 밖에 없었다. 산토스 씨는 매우 가냘픈 몸인데 가장 날쌔다.

 매번 그 무거운 짐을 거뜬히 져 나르고 다시 돌아와서 우리의 배낭들을 다 싸 안고 뛰어간다.

그 모양이 마치 산토끼 같다. 이름이 산토스라서 우리는 그를 "산토끼"라고 불렀다.

 실제로도 그 친구들은 산토께~! 하고 부른단다,

 항상 웃는 인상의 산토스 씨는 네팔 동부의 시골 고향에 아내와 아들을 두고 카트만두에 나와 방을 얻어 합숙하면서

포터 노릇으로 번 돈을 집에 부친단다. 일이 없는 비수기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가난한 네팔에서도 더 궁핍한 곳이 동부라는데…. 넉넉지 못할 그의 생활이 짐작이 된다.

 몸이라도 건강해야 할 텐데감기기운이 있는 몸으로 짐을 지고 일어서는 그의 모습이 오늘 따라 몹시 안쓰럽다

 연약한 어깨에 신산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얹힌 듯.

 

캉진곰파까지의 행보는 너무 힘든 여정이었다

 네팔사람들은 두 시간이면 족히 간다는 거리를 우리는 반나절 넘게 걸렸다.

출발부터 그렇게 힘들 수가…! 휘청휘청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걷는 모습을 보고 가이드가 내 등에서 배낭을 빼 간다.

 배낭 정도는 지고 갈 수 있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슬쩍 상한다.

갑자기 뒤에서 생기있는 음성이 들린다.

"한국 분이세요?" 돌아보니 30대 주부로 보이는 한국여인이 찰랑찰랑 가볍게 올라오며 말을 건다.

  한국사람을 만나니 반갑다. 남편과 ABC(안나프르나 베이스캠프)를 마치고 남편은 돌아가고 혼자 남아

 랑탕을 가는 중이란다. 목소리에 발랄함과 생기가 넘친다그 싱싱한 기력이 부럽다. 내가 감탄을 했더니

 자기도 에베레스트에서 죽다 살았단다. 이제야 체력이 회복되어서 오늘은 아주 최고의 컨디션이라며 

내가 벌벌 기어가는 산길을 가볍게 사라져 버린다.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한국여자들은 참 강인하고 똘똘하다.

 남자들이 들으면 분노할 소리인지 몰라도 나와보면 한국은 여자들이 훨씬 더 똑똑하고 강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돌아다니는 여자들이나 외국에 정착해 사는 여자들을 보면 그렇게 씩씩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 얼치기 하나가 나와서 뭉기적 거리고 있으니 대한민국여자의 위상을 한참 죽이고

있는 판이다.

에고고….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저절로 신음을 내지르게 된다. 산을 우습게 보고 덤빈 것 같다.

 저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산은 이제 마냥 포근한 위로가 아니다.

 옷깃을 여미는 숙연함으로 대할 경외요, 두려움이다산에 오르기 전에 우선 겸허를 배울 일이다.  

 

캉진곰파(3,800m)의 고산증 위험을 염두에 두고 더 이상 천천히 걸을 수 없을 만큼 느작느작 걸었는데도 

어제부터 고소가 온 상태라서 캉진곰파에 도달했을 때는 거의 초주검이었다.

내일 올라갈 저 까마득히 높은 4,400m의 캉진리 봉우리가 나를 조소듯 내려다 본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배낭을 내동댕이치고 쭉 뻗어버렸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꼬질스런 방에서 있는 궁상을 다 떨고 그것도 모자라 고산병까지..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제 발로 나와 아주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집에 있었으면 편할 것을 뭐하러 촐싹거리고

 나와서 이 고생인지, 역마살이 뻗쳐도 한참 뻗쳤지. 후회가 절로 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안 쑤신 곳이 없어 맛사지를 배웠다는 포터 노래 씨에게 SOS를 청했다.

졸지에 500루피를 벌게 된 그는 웬 횡재냐, 싶은 듯 달려 들더니 우악스런 손아귀로 근육을 비틀고, 등가죽을 쥐어뜯고,

뼈마디 마디를 잘근잘근 짓이긴다. 그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센지 손이 닿을 때마다 으아악~~! 비명 소리가 절로 난다.

그렇게 아프던 두통마저 천리 밖으로 달아날 정도다. 머리가 아프다니 머리를 주물러, 감지도 못한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풀어 헤쳐놓는다. 졸지에 나는 머리를 풀어 산발을 하고 뻗어 버린 중환자의 꼬락서니가 되고 말았다.(, 이 몰골은 그림으로 그려야 하는 건데.^^).

아무리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지만,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마자 땀을 빼가며

맛사지를 하는 노래 씨를 보니 좀 미안해진다. 짐을

지고 온 사람은 힘을 다해 맛사지를 하고 있고 맨 몸으로 온 나는

초주검이 되어 서비스를 받고 있으니.. 이 아이러니를 어찌할꼬.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는 이곳 사람들에 비해 잃어버린 게 너무 많다.

 그 잃어버린 것 중에 으뜸이 육체적 능력 아닐까.

 

캉진리에서의 악몽의 하룻밤이 지나다

밤중에 구토가 나와 패트병을 잘라 거기에 토를 했다그 소란에 일어난 남편은 

 어둠 속을 뒤져 약을 꺼내주더니 망설임 없이 선뜻 토사물을 가져다 버린다

자기도 좀 숨이 차다면서. 그 모습을 보자니 앞으로 삼십 년쯤 ,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아픈 중에도 쿡쿡 웃음이 난다. 저 남자, 저 착한 남자는

 내가 늙어 꼬부라져 거동을 못할 때도 이렇게 묵묵히 시중을 들어줄 것 같다.

 내 꾸진 모습을 다 보여도 맘 편한 존재. 더 이상 서로에게 잘 보일 것도

 실망할 것도 없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관계이 사람과 내가 대체 무슨 인연이기에

 반평생을 같이 살아오고도 모자라 이 고된 산길까지 함께 걷는 것일까.

 부부란 참 신비한 인연이다.

 (200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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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고산증세로 죽어가는데 이걸 찍으며 즐기는 사람의 심리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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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캉진곰파에서 바라 본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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