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남편과 딸은 4,400미터의 캉진리 봉우리로 올라갔고.

나는 깨끗이 백기를 들었다이 상태로 갔다가는 저 산 위에 뼈를 묻게 될 것 같다.

밤새 사경을 오간 터에 아침부터 쓰디쓴 위액까지 넘어오는 토악질을 하고 나니

 하늘이 노랗고 머리가 빙빙 돈다.

 울렁거리는 머리와 속을 다스리며 롯지의 발코니에서 햇살을 쬐고 앉아 있으니 병든 닭이 따로 없다

이윽고 쿵쿵거리며 나무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

" 싸므님!!!"

움찔, 놀래서 돌아보니 노래 씨다나 때문에 남아 있었나 보다.

 그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큰 목청에 나는 번번히 기겁을 한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큰 목소리는 마치 호통을 치는 것 같다.

"굿 모닝" 인사를 하자, 그는 다시 쩌렁쩌렁하게 야단치듯 묻는다

"??" 차를 마시겠냐는 소리다. “노 땡큐….” 내가 괜찮다고 하니

그는 멋쩍은 듯이 다시 쿵쿵거리며 계단을 내려간다.

 

설산에 아침 햇살이 찬란히 반사되고 있다.

태곳적부터 저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있을 버티고 있을 산.

저 산은 저렇게 묵묵히 버티면서 인간의 역사를 지켜 보았을 터이다.

징키스칸이 천하를 호령하는 것도, 마오이스트(중국의 모택동에게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자)들이

 산을 점령할 때도, 또 티벳의 어린 소년이 꽁꽁 언 발로 이 산맥을 넘어 올 때도...!

 

 저기 롯지의 아낙은 아까부터 부지런히 아침을 열고 있다.

잰 몸짓으로 마당을 쓸더니 양탄자를 탕탕 털고는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빨래를 널고 있다.

그 동작이 마치 비디오 빨리감기를 한 듯 재빠르고 탄력이 있다.

저 여인은 평생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갈 것 같다. 아침이면 일어나 물을 긷고, 불을 때고,

차를 끓이고, 짜파티를 굽고, 손님을 맞고, 해가 저물면 잠들고…,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이 산속 밖에 다른 세상은 꿈도 꾸지 않으면서.

누가 저 여인의 일생이 다우닝 10번가 고든 브라운의 아내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 아낙이야말로 오히려 생명과 가깝게 밀착되어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세상에이럴 수가~!!

얼굴이 별당아씨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고도가 높아지면 붓는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찐빵처럼 부풀 줄은 몰랐다. 눈탱이가 밤탱이처럼 튀어나왔다.

눈두덩이나 손이 다 탱탱 부어오른 게 갓 몸을 푼 산모같다

며칠 동안 감지도 빗질도 못한 머리가 심란하게 뻗쳐있고

거기에 두통으로 잔뜩 찡그린 꼴상이라니.

내가 보기에도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 싸므님~~!!"

 노래씨의 호령에 또 다시 움찔...!

"핫 워터??"

 이번에는 뜨거운 물이 필요하냐는 거다.

괜찮다는데도 그는 내가 걱정이 되어서인지 아님 미안해선지

 앞산이 울리도록 "싸므님!" 외치며 오르락 내리락 한다.

얼어죽을…, 싸므님은 무신...! 이렇게 꾸질스런 싸므님 봤수?? 

평소 때 들어도 알러지가 돋는 그 호칭을, 가뜩이나 볼쌍 사나운 몰골을 하고 있는 판에

 자꾸 불러대는지... 쪽시러워 죽겠다.

 (그가 할 수 있는 한국말이란 '싸장님' '싸므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나마스떼만 알듯이.)

 

 이런저런 상념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죽이고 있자니 몇 시간 만에 올라갔던 이들이 내려온다.

 바짓가랑이는 진흙이 묻어있고,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에 텁수룩한 수염하며

자기들은 고지를 정복했다며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인데 내 눈엔 꼭 북한 벌목공이다.

이른 아침 산에서 내려온 자들을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오전 등반이 늦어지는 바람에 오늘 일정이 빡빡해졌다. 이제 부지런히 내려가야 한다.

어제 온 랑탕(3,500m)을 지나 고라타벨라(3,020m).

하행길이라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늦은 아침을 먹고 드디어 캉진곰파를 떠났다

생각만해도 이가 갈리는 캉진곰파와 내 자존심을 여지없이 뭉그러뜨린 캉진리의 고봉이다.

두통으로 있는대로 인상을 찡그리며 오르지 못한 가파른 산을 마지막으로 째려봤다

 안녕, 악몽의 캉진곰파, 오만한 봉우리여.

 

내려오는 길에 화장실이 급하다.

할 수 없이 길에서 벗어나 가시덤불에 몸을 가리고 볼 일을 보는 수밖에.

산길에서 볼 일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향긋한 흙 냄새, 낙엽냄새를 맡으며 일을 보는 것도 그렇고

 똥이 더러운 오물로 느껴지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양변기 속의 똥은 더러운데 산 흙 위에 똥은 그렇지 않다. 흙과 똥이 너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생뚱 맞은 것은 그 위에 얹힌 물휴지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 내가 똥이고, 내가 흙인 것을.... !

 , 나는 노상 화장실을 매우 즐기게 되었는데

 딸에게도 적극 권장했다가 오히려 야만인 취급만 받고 말았다.

오호 통재라...! 언제쯤 저 어리석은 중생이 이 심오한 진리를 터득할는지.

 

랑탕에 오자 머릿속을 둥둥 울리던 북소리가 한결 잦아들고 살만하다. 이것도 신기한 일이다.

그저께는 이곳에서부터 죽도록 아팠는데 그사이 적응이 된 걸까.

 울리던 머리가 덜 아파지자 가이드와 얘기를 나눌 여유도 생긴다,

 랑탕이란 "배부른 소"란 의미를 가진 이름이란다.

전설에 의하면 티베트로부터 넘어온 소 한 마리가 여기에 이르러 풀을 뜯어먹고 포식을 했단다.

그러고 보니 소를 숭상하는 네팔의 힌두교들에게 랑탕은 거룩한 땅인 셈이다.

것두 모르고 씨부랑탕 어쩌구 갖은 욕설을 퍼부었으니.

 돌아온 이 거룩한 이 땅에서 신의 자비를 빌 뿐이다.  지독한 두통 탓이었다고.  

 

고라타벨라에 이르자 그렇게도 아프던 머리가 거짓말같이 씻은 듯 사라진다.

그런데 이번엔 딸아이가 한 발짝만 더 가도 발톱이 빠질 것 같다며 주저앉는다.

새벽부터 사천사백 미터의 등반을 하고 또 종일 걸어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두워져서 계속 걷는 것도 무리일 듯해, 우리는 맘에 들지는 않지만 한 숙소에 여정을 풀었다.

 좁은 방이 먼지투성이라고 남편은 툴툴거리는데 나는 머리가 맑아져서 날아갈 것만 같다

 샤워실로 만들어 놓은 어둔 창고 같은 곳에서 손발을 씻고 부지런이 식구들의 양말을 빨았다.

남편이 랜턴을 비춰주며 계속 투덜거린다.

가는 곳곳 전등 불도 후지고, 샤워시설도 엉망인 네팔의 산장들을 전부 싸잡아 욕을 한다.

여태껏 잘 참아오더니만

이제 슬슬 문명세계가 그리워지는가 부다이럴 때는 건드리지 말고 살살 구슬리는 게 상책이다.

"이런 맛도 재밌지 않아?

우리가 언제 이렇게 칠흙 같은 산속에서 랜턴을 비춰가며 빨래를 하겠수. "

사실 나는 늘 떨어져 있던 남편과 외진 산 길을 온종일 같이 걷는 것도,

또 바깥일에만 관심 있던 남자가 손빨래를 하는 나에게 손전등을 비춰 주고 있는

이 소꿉장난 같은 상황, 모두가 오붓하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현대의 바쁨과 편리함이 얼마나 우리에게서 이런 단순한 행복들을 빼앗았던가.

 

고산증이 사라지니 식욕도 무섭게 되살아난다.

라면도 끓이고 햇반도 데우고, 짜파티에 으깬 감자, 참치피자 두 판, 라쟈냐, 샐러드 등 마구 주문해

그간 주렸던 위장을 채우고 가이드와 포터에게도 한 턱을 쏘았다.

허리띠를 풀고 포식을 하고 난 후, 난롯가에 빨아 넣은 양말이 기분 좋게 말라가는 걸 바라보다

만족스럽게 먼지가 풀풀 나는 침대로 들어갔다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배부르고 등 따수면 

만사가 오케이인 나는 정말로 단무지가 틀림없는 것 같다.

 (2009.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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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에 숙소에서 우리가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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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캉진곰파 숙소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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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스씨와 가이드가 같이 오르고 있다.

 

네팔6-캉진리에 올라 내려다 본 숙소촌.jpg 

  캉진리에 올라 내려다 본 숙소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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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식 스파게티. 비빔국수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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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파티. 네팔인들의 주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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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인들이 먹는 빵, 티베탄 브레드.짜파티보다 두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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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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