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원고_20220530_0001.jpg

2022년 4월 14일 목요일 흐리고 서늘


지난 겨울부턴가 마당에 깔린 잔디 한 켠이 젖기 시작했다.

처음엔 예사로 지나쳤는데

갈수록 젖는 부위가 넓어지더니 최근에는 아예 질퍽한 늪지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젠 젖다 못해 잔디가 썩을 지경이다.

하수관이 터졌나? 그럼 큰 공사일터인데 어쩌나... 계속 마음이 쓰였다.

시공할 사람을 구하는 일이 이곳에선 쉽지 않다. 

게다가 요즘은 모두 농번기로 바쁜 철이라서 의뢰할 이가 없다.

그냥 두었다가는 안되겠다 싶어 오늘 아침엔 무작정 삽을 들었다.

비 온 뒤라 날도 선선하고 햇볕도 없기에 공사하기 좋을 것 같아서다.

물이 젖기 시작한 부분을 팠다.

젖은 잔디를 떼어 내고 젖은 흙을 파내기가 쉽지 않았다.


낑낑거리며 파고 있자니 앞집 봉순언니가 부엌 쪽창으로 내다보며 뭐하냐고 묻는다.

하수구 공사 중이라니

따뜻한 대추차를 들고 나와 옆에서 훈수를 둔다.

어느 정도 파니 굵고 하얀 관이 하나 나오고 그 밑에서 물이 솓는다. 

마치 샘물같이 퐁퐁 솟는 것이다. 위치를 제대로 판 것이다.

"여기다~!"

우리는 유전이라도 발견한 양,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의 소란에

남편이 어설픈 복장으로 나와 보고는 배수구 설계도를 찾아 봐야 한다며 다시 들어가더니 감감소식이다.

봉순언니가 호미로 물 솟는 곳을 파고 나는 바가지로 고이는 물을 퍼내다 보니

하얀관 밑에 좀 더 가는 검은 관이 또 하나 보이는 게 아닌가.

바로 그 검은 관이 끝난 지점에서 가는 물줄기가 솟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굵은 흰 관은 하수도관이고 얆은 검은관은 집 뒤에서 솟는 샘물을 뺴내는 관이다.

배수공사를 할 때 샘물 배관의 중간을 막고

샘물을 쓰시는 순희언니네로 보냈는데 관을 막은 마개에 나 있는 젓가락 크기의 구멍에서

새어 나온 물이 땅을 적신 것이다.

아하~!! 드디어 원인을 찾았다. 그치만 어떻게 한담?


그 때 마침 옆집 순희언니 부부께서 건너편 산에 있는 밭 일을 끝내고

점심밥을 먹으러 오시다가 우리를 보곤 집 마당으로 오셨다.

아저씨는 즉시 삽자루를 거머쥐고 땅을 더 넓게 파고 

언니는 검은 배관을 가져와 샘물이 나오는 검은 관에 연결을 한다. 

마침 지름이 딱 맞는 크기의 배관과 연결관이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새로 길게 관을 이어 땅에 묻고 하수도 쪽으로 빼냈다. 

그리고 그 밑에 대야를 두었더니

어느새 맑은 샘물이 고인다. 

순희언니 부부는 파헤쳐진 마당까지 복구해 주신다. 

나 혼자면 하루 종일 해도 해결을 못했을 일이

일사천리로 끝났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다.

이웃 세 분의 도움으로 계속 신경 쓰이던 일이 말끔히 처리되다니!


이런 일은 함께하고 볼 일이다. 

몇 사람의 생각이 모이니 한결 쉽게 해결되니 말이다.

걷어 부치고 도와 준 마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특히 옆집 아저씨는 하루 쉬는 금쪽 같은  휴일인데 말이다.

고마워서 늦은 점심을 샀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식당 앞에 떨어진 벚꽃 잎이 하얗게 쌓여있다. 마치 눈이 쌓인 듯하다.

남편이 아이처럼 그걸 모아 공중에 흩뿌린다. 꽃잎이 하얗게 흩날린다. 

그 광경에 우리는 환호했다.

신경 쓰이던 일이 해결 되어선지 내 마음도 꽃잎처럼 가볍다.


봉순언니가 남편에게 말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셔요~ 이렇게 어울려 밥도 먹고, 그래야지요."

 아름다운 봄날이다. 

그리고 좋은 이웃들.



KakaoTalk_20220414_195810255.jpg


KakaoTalk_20220414_195948700.jpg


KakaoTalk_20220414_195932800.jpg



KakaoTalk_20220414_200033435.jpg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