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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유용하게 쓰는 둥근 원목 테이블이 있습니다.
두툼한 통나무로 만들어져서 매우 튼튼하거니와

널찍해서 여러모로 쓰기에 편합니다.
크기도 조절할 수 있어서 손님이 많아도 둘러앉을 수 있어요
.
주로 식탁으로 사용하는데, 티 테이블로도 쓰고, 다림질도 하고
,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다목적용이죠
.
몇 년 전, 중고가구점에서 이 식탁을 본 순간, 대번에 맘에 들었는데

이런 기억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어릴 때 집에서 쓰던 앉은뱅이 나무 두레반이 있었어요
.
상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아침저녁으로

그 상을 펴고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밥을 먹었어요.
밥상머리에선 의례 이런저런 얘기들도 오갔지요
.
가정예배를 드릴 때는 성경 찬송을 올려놓는 상이었구요
,
언니는 그 상 위에서 눈동자가 수정 같은 공주를 자주 그렸지요
.
언니가 연필을 굴릴 때마다 나무상에서 나던 '사각사각' 소리가 재밌었습니다.

 그 두레반은 길이 잘 들어서 반잘 반질 윤이 났었는데
호마이카라던가 하는 철제다리 상이 나온 후
우리 집에서 그 나무 두레반을 볼 수 없게 되었어요.

그 두레반에 대한 정겨운 기억 때문이었을까요
손때 묻은 원목 테이블을 보자 한눈에 들었어요.
때도 끼고 흠집도 좀 있었지만 망설임 없이 선택했습니다
.
집에 가져와서 죽을 고생을 하며 사포로 싹싹 문지른 후
깨끗이 닦아내고 투명 칠을 했더니 나뭇결이 살아나고 운치가 나더군요.

예전에 이 원목 식탁에는 치이즈와 베이컨이             
 
아침 식사로 올려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이면 한 가족의 하루가 도란도란 모아졌겠지요
아이들이 다 떠난 어느 날, 노부부만 남아 이 원탁에서 차를 마시다가
식탁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작은 식탁으로 바꾸면서
중고가구점에 내놓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집에 온 후로도 계속 이 나무 식탁에는 음식이 올려졌구요.
우리 아이들이 끼니때마다 이 식탁에서 밥을 먹었고 무럭무럭 키가 자랐으며
때때로 가까이 사는 한국 이웃들이 둘러앉아 나그네로서의 외로움도 풀어냈습니다.

이 식탁에서.

 

그런데 이젠 이 테이블에서 아이들과 다 같이 밥을 먹는 날이 드무네요.
애들이 다 큰 요즘은, 많지도 않은 식구가 각자 먹고 나가기 바빠서요.

예전에는 옹색한 두레반에서도 식구들이 다 함께 먹었는데

지금은 훨씬 더 넓은 식탁에서 뎅그마니 혼자 밥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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