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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셋째 주일은 마더스 데이Mother's day)입니다.

우리집 애들은 이날이 되면 거창하게 민족정체성까지 들먹이다가
정작 5월 8일엔 잊고 지나기 일쑤입니다.
 더구나 딸아이는 이틀 전부터  비실비실 앓고 있고,
생일파티가 있다며 분주하게 들락거리는 아들녀석 꼴상을 보아하니
 이번에도 애저녁에 다 글렀다 싶었어요.

그래서 스스로 한 아름의 꽃을 샀습니다.
내 이렇게라도 사가지없는 짜슥들에게 복수하리라.....
번번히 놈들에게 분노하느니 차라리 자축하리라.
뭐 이런 오기도 슬그머니 발동해  내가 나에게 선물하는 꽃이었습니다.
자식이 뭐라고  외국까지 기어나와
남편과도 떨어져 가슴시린 몇 년을 살아 낸 어이없는(남들이 그랬다면 혀를 찼을 )
내 인생을 이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가 한밤중에 심한 복통을 일으켜
허겁지겁 응급실로 달려야 했습니다.
병원에서 하얗게 밤을 새우고야 겨우 통증이 가신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골아떨어졌죠. 
오후에 일어나 보니 내 책상 위에 분홍빛 장미꽃 카드가 얌전히 놓여있더군요.
선물도 놓여졌고.(샤프펜슬이라니... 엄마가 지들 수준인 줄 아나..
밑그림그릴 때 쓰라고 놓았나보군. 흠... 성의를 봐서 접수하겠슴.)

더 웃긴 것은 카드 내용이었어요.

"진심으로 사랑하는 엄마,
엄마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60억명 중의 특별한 사람이예요~~
요즘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픈 경험을 하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욱하는 아빠 엄마를 닮아 발광을 할 때도 있지만,
(제 진짜 지랄발광은 아직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머리를 식히고 보면 저는 사실 엄마와 아빠를 진짜 사랑한다는 걸 확인해요.

엄마의 모든 점을 다 좋아하진 않아요.
진짜 별로고, 짜증나고 걱정되는 점도 많아요.
하지만 엄마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예쁜 (꾸미기만 하면 stunning한)
40대 아줌마고, 가장 맑고, 가장 용기있고, 생명력 강한 사람이예요.
방 잘 치우는 것 까진 약속 못해 드려도 이젠 엄마한테 더 잘할께요.
저한테도 좀 잘해주세요. (아프지 않을 때도)

Happy Mother's Day with an evil daughter & a perfect son "


--지난 17년 동안 어머니의 아들이 되는 것을 무척 즐겨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이지혁.--

ㅋㅋㅋ 이건 또 무슨 맹랑한 소리???

맹랑하기 그지없는 카드를 받고서 속절없이 기분이 실실 좋아지네요.
 밤을 새운 피로도 스르르 풀리구요..
꽃병에 꽂힌 한 아름의 꽃이 무색해지면서,
카드속의 꽃이 생화보다 더 고와 보이니... 무슨 조화일까요?
 자식이란 참으로 아프락사스 같은 존재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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