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비가 오면 농촌은 한가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가을걷이로  바쁜 일손을 잠시나마 쉬는 것이다.

농사일이 없는 우리부부는 늘 한가하다.

시골생활은 이 한가함에 적응되는 일이 관건인 것 같다.

자극적인 오락도 없고 만날 친구도 없고..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도 딱히 없다.

한마디로 번잡스럽지않고 느슨한 삶이다.

하지만 찾아서 일을 하다보면 매일 할 일들이 있다.

오늘은 비가 와서 호박전을 부쳐 먹고 공장 부엌 청소와 대형냉장고 정리를 했다.

냉동실에 낀 성애를 말끔히 떼어내고 냉장실도 닦았다.

버릴 것은 버리고..냉장고 안이 말끔해지니 기분이 맑아진다.

 

하루종일 내리던 비가 저녁무렵에 그친 듯 해서

남편과 산책을 나갔다.

 이곳에 내려와서부터 해질무렵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해질녘에는 산책을 한다.

고즈넉하면서도 명상적인 정경 속에서 남편과 함께 걷는 맛이 좋기 때문이다.

도로 옆에는 코스모스가 피고  벼가 누렇게 익어간다.

요즘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들녘을 걷다보면 잔잔한 행복감에 젖어들곤 한다.

 도시가 그리운 남편은 이런저런 정경들이 그냥 덤덤한가본데

 나는 별 것 아닌 걸로도 행복해진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 여보 나는 당신하고 살아오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해.

내가 죽을 때 회상해도 지금 이 시기가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남을 것 같아."

"어.. 그래?"

님편은 내가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거 아닌가 싶은 표정이지만 진심이다.


공장 뒤로 나있는 산 길을 따라 걷는데 이게 웬 일?

젖은 산길에 알밤이 벌어져 우수수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탐스럽고 굵은 알밤을 주섬 주섬 줍느라 우리는 신이났다.

아무 준비도 없이 나간 터라, 밤송이 가시에 찔리고,

 반바지 입은 다리를 모기에게 물려가면서

 슬리퍼 신은 발로 밤 송이를 까느라 고생을 했다. 

남편의 점퍼 양쪽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내일 완전무장을 하고 다시 오자며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호두가 또 우수수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엔 누가 흘리고 간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호두나무 아래에 자잘한 호두알들이 사방으로 떨어져 있는 거였다.

호두를 좋아하는 남편이 이번에는 제대로 흥분을 한다.

어둑해지는데도  집에 와서 무장을 하고 집게를 가지고 다시 나간다.


주워온 밤과 호두알을 씻어 바구니에 담는데 사뭇 신기하기만 하다.

어디서 이런 토실토실한 열매가 주어지는 것일까.

정말 자연은 거저 주는 게 너무 많다. 그것도 아낌없이.

이번 추석에 만난 딸애의 말이 떠오른다.

"엄마 시골생활 어때?"

"응, 다 좋은데 문화, 예술이 좀 아쉬워."

그러자 딸애의 일갈!

"자연이 가장 위대한 예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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