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데이인 오늘은 우리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은 53년 전 1955 11 11일 오전 11시에
결혼식을 올리셨답니다.
아버지는 월남해서 가진 것이라고 몇 권의 신학서적밖에 없는
가난한 신학생이신 데다가 여러모로 어머니 마음에 차지 않는 신랑감이셨나 봐요.
그렇지만 방년 25세의 노처녀였던 (당시에는 과년한 노처녀였다고 함)어머니로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되셨겠지요. 울며 겨자 먹기로 어른들이 주선한
혼인을 하셨대요. 어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 요강뚜껑으로 물 퍼먹은 기분" 이셨답니다.
한사코 목사의 아내가 되기 싫어하셨던 어머니는 결혼 후에 결국
농촌교회 사모가 되어 참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으셨어요.
게다가 셈세하게 아내의 사정을 배려하실 줄 모르던 아버지께 한도 많으셨구요.
종종 "느이 아부지랑은 이상이 안 맞는다.
그 사범핵교 나온 사람헌테 갔어야 허는 건데..."
이렇게 푸념을 하시곤 했죠.
전 어머니의 드높은 이상이 뭔지 아직도 잘 모릅니다만, ^^
암튼 티격태격하시면서도 반 백 년을 넘게 살아 오셨으니 천생연분 아니겠어요?

요즘 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피신답니다.
정정하셨을 때는 그렇게도 불만이 많으시더니만,
아버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처럼 무력해지신 지금
오히려 어머니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이 묘한 역설이라니.
"
그냥, 느이 아부지가 가엾고 측은하다, 이렇게라도 오래만 사셨으면......" 하신답니다.

얼마 전에 이를 다치신 아버지를 위해 요즘
어머니는 사골국물을 우려 내 야채와 고기를 갈아 죽을 쑤어 드린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혼자서 가만히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려봅니다.
사랑이란,
"
나의 이상을 넘어서는 것. 그리고 말없이 사골국을 끓여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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