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이 들지 않는 목회

조회 수 2263 추천 수 0 2014.07.08 19: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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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속해 있는 노회 내에는 어려운 교회들이 여럿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어렵지 않을 목회가 어떤 사람에게는 무척 어려운가 봅니다. 아마 물질적인 어려움이 견디기 힘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자녀들이 커 가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규모가 작다 보니 상대적인 위축감도 드는 것 같고요. 영적인(?) 능력도 그렇고요. 여기서 다 속내를 말하지 못하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여러분, 목회자에게 힘든 일도 많다는 것을 조금은 기억해 주세요. 아무튼, 이 글은 조금은 힘들어하는 목회자에게 쓴 글입니다.



1. 주눅이 들지 않는 목회


  혹시 지금 목회가 힘들고 때로는 주눅이 든다고 생각하는지.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눅이 들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상대적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함이 자본주의 특징의 하나라고 한다면, 재벌 회장, 대통령, 뭐 그렇게 가더라도 예외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내 옆에서 잔잔히 살아가는 사람 중에서 그나마 있을 수 있다.


  엊그제 인터넷에서 감명 깊게 읽은 글이다. 24살부터 31살까지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다가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냅 사진가가 된 36살 남자가 있다. 24살부터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결혼도 늦어져서 34살이 되어서야 착한 여친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래 연애한다고 사람을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좋은 사람 만나면 바로 결혼하고 싶어서 만난 지 한 달 만에 부산에 사시는 부모님께 인사드렸다. 부모님을 만나자마자 착한 여친은 “어머니! 저 가방도, 옷도 다 필요 없어요. 오빠와 결혼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결혼했다. 진짜 예단, 예물 하나 없이 결혼만 했다. 예식장은 어머니가 교회에서 꼭 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하고, 웨딩드레스는 렌탈로 29만 원 들었다. 신혼여행은 동해로 3박 4일 떠나서 숙박, 음식을 포함한 모든 경비를 합쳐 70만 원 정도 들었다. 그리고 신혼집은 25년 된 상가건물 철학관을 철거하고, 2,000만 원 들여 수리한 후 1,000만 원 보증금에 월세 40만 원으로 지내게 되었다. 아내에겐 “여기서 조금 살다가 나중에 베이비 스튜디오로 만들어요.”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아파트 전세 들어가지 못하니 처음에 조금 고생하더라도 이렇게 시작합시다.”는 말에 아내는 “그래요!” 방긋 웃었다.


  아무래도 상가건물이다 보니 일상생활에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1년이 지나고 또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아내에게 물어봐도 그때 그 시간이 가장 좋았고 또 예쁘게 기억된다고 했다.
  나눌 수 있는 손과 마음이 있다면 부자라고 생각했다. 집을 제외하고 결혼을 준비하며 가장 큰 금액이 든 것은 360만 원짜리 식탁이었다.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또 주변 지인들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비록 빛나는 그릇 세트는 아닐지라도 여러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릇을 남대문시장에 가서 사오고, 한 달에 한 번 다문화 가정을 초대해서 함께 식사와 담소를 나누며, 스냅 사진가의 재능을 살려서 초대한 가족의 가족사진을 찍어 주었다.

  이 일에 함께하는 사회복지사 한 분이 어느 날 전화를 했다. “시열이가 그때 가족사진 촬영하고 식사한 이후 달라졌어요.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는 자세가 뜨거워졌어요. 아마도 집과 유치원만 다니며 웅크려있던 일상에서 뭔가 깨달음이 왔나 봐요.”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바라며 하는 나눔은 아니지만 나누게 되면 항상 그 이상을 선물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2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딸을 낳게 되고, 또 이제는 100일이 되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돈이 없으면 예민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도 있고, 통장에 저축하는 것 없이 빠듯하게 살지만, 지금 이 순간들이 행복하다. 행복이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닌 지금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 한다. 행복은 가까이, 내가 하는 일에, 그리고 바로 가족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당신이 목회자로 사역했던 기간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많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군요. 가진 것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하나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찾아뵙고 차 한 잔 나누고 싶습니다. 행복을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넓은 공간에 방을 꾸린 탓에 겨울엔 너무 추워서 둘이 껴안고 아침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잤다는 젊은 부부. 하지만 결코 위축됨 없이 맑은 모습으로 여러 사람에게 사랑과 희망을 나누는 이 부부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유쾌하다. 그것은 전염성이 강하다. 유쾌한 생각, 유쾌한 삶. 유쾌한 목회. 유쾌한 농촌이 그 위에 겹쳐진다.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세상에서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어도 이 땅에서 하나님을 맘껏 누리는 일에 망설이지 않았다. 분명히 주눅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금방 나를 회복할 수 있었다.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을 돌아보자. 그 누가 진실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큰 교회 작은 교회가 자유의 갈림길인가? 최근에 계속 터져 나오는 소위 큰 교회 목회자라는 이들의 문제를 보면 오히려 안타깝기 그지없다. 주눅이 들지 않는 목회는 큰 교회 작은 교회가 상관없다. 교인이 한 명인들 어쩌랴. 오늘 참된 교회의 생명은 작은 곳에서 나오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대를 행복의 터전으로 삼고자 이 땅의 목회자로 세우셨음을 알아야 한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신학교를 가기 위해 난생처음 신학교 정문을 들어갈 때의 마음을. 나뭇잎이 다 떨어진 쓸쓸한 나무 아래 벤치에서 하얀 교정을 바라보며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을까를 되뇌던 그 시간을. 그리고 깨닫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이 이어져 왔음을. 도시니 농촌이니 그런 것 개의치 않고 충청도 아름다운 땅에서 깊은 주름살 패인 이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살아왔음을.


  2. 멍에를 벗는 목회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지금 나를 옭아매는 것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바울의 편지에서 핵심어 중 하나가 '자유'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 5:1) 
  율법주의에 다른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철저한 운명론이다. 유대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유대인그리스도인도 그렇게 믿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있다. 바울은 그것이 너무나도 싫었고 미웠다.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그것은 '자유'이다. 종의 멍에를 지지 않는 삶, 운명의 족쇄에 매이지 않는 삶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이다. 지금 우리의 목회 현장은 운명에 매여 있는 자리가 아니다. 목회 현장의 규모나 활동이 우리를 서열화시키거나 능동적, 혹은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 목회가 위축돼 있다면 그것은 내가 현실에 운명적으로 매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의 삶은 많은 변수가 있어서 그것들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끼칠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유의 삶이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가면서도, 미처 자기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삶이다. 비록 육체에 주어진 눈은 작아도 세상을 크게 볼 줄 아는 삶이다. 

  지금 내가 목회를 하는 중에 당하는 괴로움을, 그것이 도무지 부흥하지 않는 교회 문제든지, 가난의 문제든지,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든지, 아무튼 그 안에 갇혀서 허둥대고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넓은 세계로 나가는 발판으로 삼는 것이 자유의 삶이다.   나는 자유롭지 않아도 너는 자유로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에 생명이 없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오늘 우리가 얽매여 있는 것을 바로 볼 수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운명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우리가 왜 목회자가 되고자 했던가.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정해진 규격의 눈이 아니라 자유로운 성령의 눈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진실로 성령을 힘입어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유의 삶만이 우리의 목회에서 우리가 그렇게도 힘들어하는 온갖 멍에를 벗겨낼 수 있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때문에 맞서야 하는 고민과 갈등, 그리고 헌신은 운명의 굴레에 매이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믿음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목회자로 살아가는 것이 분명하다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사랑의 대상이다. 고통도 사랑스럽고, 작은 것도 사랑스럽고, 가난마저도 품어 안을 사랑이다.


  우리는 나에 대한 사랑, 내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하면 저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늘 묻는다면, 거기에서 우리는 종의 멍에, 운명의 족쇄를 던져버리고 내 목회 현장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내 목회 현장 교회가 자립대상 교회에 속해도 그것에 대해 누구를 의식할 필요도 없이 주님의 사역을 위해 자립지원금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그렇다. 당당히 요구하시라. 이제는 자유로운 목회자여!


  3. 하나님의 일을 받아들이는 목회


  목회는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지켜보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떤 목회의 모습이 우월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기준이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 진리를 향해서 가고 있다면 그 길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테니까 말이다. 결국은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것이 목회이다.


  목회에는 영적 공허감이 자주 엄습한다. 때때로 가슴이 무뎌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마음이 움직일 때를 기다리다가는 마음이 먼저 냉랭하게 마비되는 고통을 당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의지적인 사랑과 실천이 필요하다. 목회는 행동으로 하나님의 일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특히나 쓸쓸한 벌판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농어촌목회는 더더구나 그렇다. 하지만 가기 편하게 만들어진 길은 없는 것 같다. 용기를 내서 발걸음을 내딛어야 자유의 길이 보인다. 여기서 파울로 코엘료가 들려주는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마이애미 항구에서 함께 바다를 바라보던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가끔 사람들은 영화에서 본 것만을 기억하고 실제가 어땠는지는 잊어버리지. 영화 <십계> 기억하나?” “그럼. 모세 역을 맡은 찰턴 헤스턴이 지팡이를 들자 바닷물이 쩍 갈라졌고,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넜잖아.” “성서에서는 그와 달라.” 친구가 말했다. “성서에 따르면 신이 모세에게 이렇게 명령했어.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말하라,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서야 모세는 지팡이를 들었지. 홍해가 갈라진 건 그다음이야. 결국, 길을 갈 용기가 있는 자에게만 길이 열리는 법이지.” <파울로 코엘료, 박경희 역, 「흐르는 강물처럼」 (파주 : 문학동네출판사, 2008.), 183쪽.>


  결코 주눅이 들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자의 목회는 작은 용기 위에서도 빛난다. 그대가 현실에 운명적으로 매여 있지 않다면 그대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길을 자신 있게 가라. 그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당당한 목회자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자유로운 행동으로 하나님의 일을 받아들이기를 응원하자.♧





profile 건강한 농촌, 튼튼한 생명을 바라는 들꽃마당에서 ...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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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14.07.08 20:05:07

목사님 안녕하세요?

농촌목회 어렵다는 이야길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목사님 생각이 나곤 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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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김영진

2014.07.09 09:57:12

농촌목회가 어렵긴 어렵습니다.

우리 농촌을 초초초고령화 사회라고 합니다. 

역동성이란 말의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희망도 솟아나고 있는 곳이지요.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를 내는 목회자가 필요한 곳이 농촌입니다.


모래알님.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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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4.07.08 23:05:30

예, 목사님,

저 글이 저에게도 필요한 영혼의 양식으로 받겠습니다.

근데 사진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보이지는 않구요.

눈매가 더 온화해지셨네요.

턱수염도 보기 좋구요.

나도 수염을 기르고 싶은데

아내가 펄쩍 뛰니,

가정평화를 위해서 어쩔 수가 없네요.

더운 여름철,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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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김영진

2014.07.09 10:03:24

평화 중에 제일은 가정의 평화입니다.

사진은 2년 전쯤의 모습입니다.

장례 치르고 오는데, 교우 한 분이 애기똥풀꽃을 꽂아 주었고

아내가 아이패드로 담아주었습니다.

근데....

사실 목사님은 수염이 참 어울릴 것 같습니다.

평화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협상이니

잘 하셔서 멋진 모습으로 변화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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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4]또다른세계

2014.07.10 09:26:27

귀에 꽂은 것이 애기똥풀이었군요~~ㅎㅎ

농어촌 목회를 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또 이렇게 글을 읽고 나니 그 분들의 어려움이 다시 새롭게 다가옵니다. 

어려움 가운데 목회하시는 분들에게 주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이렇게 평신도(?)가 축복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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