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변함없이

조회 수 3985 추천 수 0 2013.06.14 13:16:34
on01.jpg


올해도 농촌 한마당 잔치인 온새미로 축제가 열렸습니다.
보통 5월 초에 하는데, 이번에는 이상기후 등 여러 문제로 6월 8일(토)에 축제를 했습니다. 폭염으로 
6
월 초 날씨가 30도를 오르락거렸지만, 그래도 이날은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서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늑한 신죽리 수목원에서 농촌의 풍성함을 즐겼습니다.




on08.jpg

올해는 무엇보다 천북면 3개 학교(천북중학교, 천북초등학교, 낙동초등학교)에서 출전(?)한 아이들과 함께 백일장 대회를 연 것이 즐거웠습니다. 함께 모인 아이들 얼굴 속에서 건강한 농촌의 미래를 보는 일도 행복했습니다.



on03.jpg


온새미로 축제는 2005년 들꽃마당의 작은 터에서 시작했습니다. 작은 잔치 자리에 해마다 점점 많은 분들이 오시고 해서 근처에 있는 신죽리 수목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어느덧 9회까지 왔습니다.

처음 시작은 마을의 각 가정에서 키운 예쁜 꽃들을 한군데 모아 함께 보자고 하면서 부터였습니다. 각 가정에서는 자기 것밖에 볼 수 없으므로 들꽃마당에 야생화가 피는 시기를 골라 각 가정의 화분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한두 해가 지나면서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다 보니 꽃 감상과 더불어 우리 지역을 소개하는 매개체로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까운 지역에 있는 도시민들을 초청해서 우리 지역의 꽃을 감상하고 농촌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놀이도 하면서 우리 농민들이 생산한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고 나누고 판매를 하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습니다.




on04.jpg


처음부터 천대받는 풀, 보통 잡초라고 불리는 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에 마음이 갔고, 또 가만히 보니 잡초의 꽃들이 상당히 예쁘기 때문이었습니다. 잡초의 꽃은 대체로 작습니다.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고, 환경에 적응하면 번지는 속도가 빨라서 애물단지로 생각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그렇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잡초를 사진으로 확대해서 담아보면 그 모습이 뚜렷합니다. 어느 것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생명의 충만함을 담고 있고,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깨우침을 줍니다. 확대한 달개비(닭의장풀)의 멋진 사진을 본 농민이 오히려 묻습니다. ‘이게 무슨 꽃이냐?’. 달개비라고 말해주면 잘 아는 이름에 멋쩍어하면서도 감탄을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달개비를 함부로 없애서는 안 되겠다는 말도 합니다.

이런 가치의 발견은 농민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합니다. 농촌과 농민이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한다면 지금 농촌이 겪는 위기를 이기는 새로운 길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과 들꽃 축제를 통해서 얻은 깨달음입니다.



on05.jpg

맨 처음에는 들꽃 축제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제5회부터 온새미로 축제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우선은 들꽃 축제라는 이름을 사용하다 보니 우리 생각과는 달리 보기 좋고 근사한 꽃을 생각하고 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자연에서 피는 모든 것을 들꽃이라고 여기며 그 속에 있는 농촌의 건강한 생명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요즘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멋진 야생화 전시회의 영향으로 이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온새미로는 지역에서 추천한 이름인데,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등의 뜻을 가진 순우리말입니다. 우리 농촌의 가치를 표현하는데 이 말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on07.jpg

축제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온새미로 축제는 소박한 농촌 한마당 잔치입니다. 복잡하지 않으면서 농촌의 재미를 전하는 놀이마당입니다. 농민 스스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농촌의 가치를 발견하고, 함께 참여한 이들은 늘 마음속을 맴돌던 돌아가고 싶은 고향의 정취를 누리는 자리입니다. 농촌이 주는 생명의 자리를 느끼는 것이지요.

사실 농사짓고 살아가는 것이 중노동이고 고통뿐이었다면 벌써 농촌은 끝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일은 힘들고 맨날 손해만 보는 것 같은데도 귀농을 하고 농촌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이들의 삶이 흙과 더불어 자연과 상생하고 유기적인 접촉으로 근원적인 생명감각을 포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온새미로 축제는 그런 판을 조금 보여준다고 할까요?




on13.jpg


지금 곳곳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정책적으로 주도하는 농촌마을 만들기와 농촌 축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책적인 이런 사업은 많은 돈을 투자해서 투자가치를 최대한 이끌어내려는 경제 사업입니다. 성공의 기준은 마을이 얼마나 최신식 모습을 갖췄고 사람이 얼마나 오고 농업 경제 규모가 어떻게 커졌는지 등 종합개발사업의 완성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전래의 공동체성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을은 계속 뒤로 밀리기만 합니다. 하지만 평생 땅에만 매달려 농사짓고 살아온 대다수 농민들이 규모와 결과에 집착하는 경쟁력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지금 농촌은 본래 가지고 있던 건강함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노년의 허탈과 경제적 빈곤의 탄식만 모습을 키우고 있습니다. 진정한 농촌의 가치는 자연과 전통과 공동체의 터전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on15.jpg


온새미로 축제는 자발적인 즐거움으로 시작했습니다. 눈여겨보지 않던 작은 꽃에게서 마음 모으는 법을 배웠습니다. 공동체의 터전에서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배우고 있습니다. 큰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잘 것 없는 축제라고 말을 하겠지만, 자연 속에서 작은 생명의 힘을 느끼는 사람들은 기쁘게 와서 함께 웃고, 함께 먹고, 함께 만드는 축제입니다.



DSC_1498.jpg


농촌의 작은 축제를 위해 많은 이들이 큰 수고를 합니다. 물질적으로, 자원봉사로, 구성원으로 참가합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마음을 나누면서 소박하고 즐거운 축제를 만듭니다.

상업적이었거나, 정책적인 축제였다면 농촌에서 이렇게 십년 가까이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우리 마음을 모으고 농촌의 건강함을 나누기 위해서 이마의 땀을 닦고 팔을 걷었습니다.



on12.jpg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국수를 일일이 다 말아내고, 쑥떡 개떡을 비롯해서 맛있는 떡을 만들기 위해 일찍부터 준비를 하고 주막의 문도 엽니다. 국수 값을 천 원이라도 받을까 했는데, 오신 손님들에게 국수 한 그릇 대접하면서 돈을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합니다.

축산농민들이 힘을 모은 축산사업단은 맛있는 돼지고기를 내놓고, 직접 만든 소세지와 햄도 맛보라며 아낌없이 내놓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저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합니다. 나이 든 농민들의 투박한 손을 보면 마음이 아립니다.



DSC_1527.jpg

 

문화 공연을 위해 오신 분들도 이런 농민들의 마음을 알아서 교통비 정도만 받습니다. 더운 날씨인데도 온 힘을 다해서 공연을 하고, 함께 웃는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on16.jpg

모두가 돌아간 뒤 축제장 잔디를 보니 사랑과 나눔과 감사가 크게 꽃피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렇게 피어있을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잘 모아야겠습니다.




on17.jpg


.
.
.


DSC_1585.jpg








[레벨:12]샨티

2013.06.14 18:21:25

작은 생명의 힘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이는 농촌 축제 ^^+ 글과 사진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넘칩니다 ♬
7월에 열리는 우리동네 축제도 같은 마음으로 준비하고 싶은데...
무더운 계절, 강건하게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profile

[레벨:23]김영진

2013.06.15 13:52:03

오, 7월에 축제가 펼쳐지나요?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걸음이 닿는 곳이면 가보고 싶기도 합니다.

[레벨:14]Lucia

2013.06.15 10:25:59

목사님,온새미축제의 즐겁던 시간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연의색깔이 이뻐요~
아이들의 백일장.. 어릴적생각이 납니다
진정한 농촌의가치가 아이들에게 바로 계승되면 좋겠어요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걸 느껴봅니다.
수고많으셨어요~

profile

[레벨:23]김영진

2013.06.15 13:55:05

사실, 아이들에게 농촌은 요즘 말로 하면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한한 세계를 열어갈 수 있는 곳이 농촌이거든요. 앞으로 경제적인 가치도 더욱 커지고요.
백일장 대회는 '들꽃마당김도희작은도서관'에서 지역과 함께 연 프로그램입니다.
 

[레벨:12]백두산

2013.06.15 10:53:07

고향의 푸근함을 느낄수있는 아름다운 축제의장이
펼쳐진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겠습니다.
혹시 그곳에는 아름다운길,걸어볼만한길은 없는지요?
profile

[레벨:23]김영진

2013.06.15 13:57:06

오신다면 언제나 환영합니다...^^
천수만 둘레길은 참 좋은 길입니다.
순교의 현장으로 이어지는 순례의 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길입니다.
걸어 볼 길이 여러 곳 있습니다. 

profile

[레벨:20]굶주린 늑대 

2013.06.15 11:02:31

찔레꽃 노래를 들은 후 이 글을 다시보니 
처음 읽을때 느끼지 못한 여유 혹은 평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 몇가지 일이 있어 여유를 잊고 있었나 봅니다.
일상의 바쁨속에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내려놓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저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합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보는 시야가 부족해서 아쉬운 것도 욕심일까요? ^^;;; 


profile

[레벨:23]김영진

2013.06.15 13:58:38

공동체를 보는 시야 때문에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풍성할수록 좋은 것이 공동체를 보는 시야이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사진전] 7년을 담은 희망의 노래 file [14]

2006년 12월 어느 날. 지역민들과 낙동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지금, 학교가 통폐합대상이 되어서 앞으로 3년 후에는 폐교된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목사님의 지혜를 달라고... 무슨 뾰쪽한 지혜...

아이들의 밥 file [6]

아이들 밥 먹는 모습을 재미있게, 즐겁게 지켜봤습니다. 질서 있게 줄을 서고, 예의를 갖추고 밥을 타서 자기 자리로 가는 모습부터 보기가 좋았습니다. 아이들 밥 먹는 모습에서 왜 이리도 행복함을 느끼는지요. 문득 평화의 진정한 모습은 아이들이 편안하...

꿈꾸는 갤러리 file [4]

얼마 전에 뉴스를 보면서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를 간 우리 청년들 이야기였습니다. 워킹 홀리데이는 나라 간에 협정을 맺어 젊은이들로 하여금 여행 중인 나라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

연꽃, 그리고 이응로 file [16]

벌써 어제가 돼 버렸다. 요즘 몸 균형이 무너져서 운전하기가 힘드니 밖으로 나갈라치면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 제일 만만하고(?), 편한 것은 아무래도 아내다. 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렸는데, 치과엘 다녀오느라고 집에 온 시간이 ...

언제나 변함없이 file [8]

올해도 농촌 한마당 잔치인 온새미로 축제가 열렸습니다. 보통 5월 초에 하는데, 이번에는 이상기후 등 여러 문제로 6월 8일(토)에 축제를 했습니다. 폭염으로 6월 초 날씨가 30도를 오르락거렸지만, 그래도 이날은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서 천여 명이 넘는 사...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