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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그리고 이응로

조회 수 4020 추천 수 0 2013.07.12 17:09:07


벌써 어제가 돼 버렸다.

요즘 몸 균형이 무너져서 운전하기가 힘드니 밖으로 나갈라치면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

제일 만만하고(?), 편한 것은 아무래도 아내다.

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렸는데, 치과엘 다녀오느라고

집에 온 시간이 오후 5시가 넘었다. 시간이 많이 늦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가고 싶었다.

몸을 움직여야 할 것 같았고, 그것보다는 며칠 전 본 궁남지 연꽃 생각에 아무래도 연지 공원엘 가고 싶었다.

연지 공원은 고암 이응로 생가 기념관에 조성된 작은 연못의 이름이다.

그래도 올망졸망 피기 시작한 연이 이제는 제법 수려한 연못을 만들어서 지나가는 사람 발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고암 이응로 생가 기념관은 충남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에 있다.

2011년 11월 8일에 개관했으니 아직 2년은 채 되지 않았다.

전시된 고암의 작품을 보러 가끔 가는 곳이고, 주변 풍경과 함께 기념관 건물과 환경이 

생태적으로 잘 조성되어서 차분한 느낌이 좋은 곳이다. 

 

그래도 중계리에 있는 고암의 생가 기념관은 아직 낯설다.

오히려 수덕여관으로 마음에 남아 있는, 예산 수덕사 바로 아래 그의 흔적이 아직은 더 친근하다.

수덕여관은 이응로 화백이 1944년에 사들여 작품 활동도 하고, 6·25전쟁 때는 피난처로 사용한 곳이다.

수덕여관은 엄밀하게 말하면 이응로 화백 본부인인 박귀옥 여사의 집이다. 여자로서 애한이 담긴 집이다.

2001년 박귀옥 여사가 세상을 떠나고 이후 수덕사에서 사들여 복원하면서 템플스테이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예전의 돌계단 입구는 봉쇄되고 수덕사의 개찰구를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다. 표를 끊고서.

 

내 기억에는 참으로 아늑한 식당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름 즐거운 추억이 수덕여관 식당에 있다.

그때는 손님이 오면 거의 수덕여관 식당으로 갔다. 수덕여관 자체가 식당으로 영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뜻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갈한 방의 분위기가 좋았다. 창호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도 좋았다.

그리고 거기서 이응로 화백의 마음을 봤고, 그의 아픔을 조금씩 알게 됐다. 

더불어 나혜석, 박귀옥, 박인경 등 그녀들의 이야기도 듣게 됐다.

수덕여관 앞에 놓인 커다란 바위에는 추상화와 같은 오묘한 작품이 음각되어 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조작된 간첩사건인 동백림사건으로 강제 귀국했을 때, 고통스런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문자적 추상화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응로(1904년 1월 12일~1989년 1월 10일)는 대한민국 태생의 프랑스의 동양화가이다.

일단 여기서부터 말이 이상하다. 대한민국 사람인데 프랑스의 동양화가라니....


한지와 수묵 등 동양화 매체를 사용, 스스로 ‘서예적 추상’이라고 이름 붙인 

독창적 예술 세계를 창조한 고암(顧菴) 이응로는 1904년 1월 12일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4년 조선 미술전람회에서 이름을 드러낸 후, 1948년에는 홍익대학교 주임교수로 있었다.

54세 때 프랑스로 건너갔다. 2년 만에 대화랑 폴 파케티와 전속계약을 맺고, 첫 개인전을 열었다. 

파리에 동양미술학교를 세우고 1965년엔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명예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비극이 발생했다. 1967년, 한국 전쟁 때 헤어진 아들을 만나기 위해 동독의 동베를린에 갔다가 

중앙정보부의 동베를린간첩단 조작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귀천'으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도 혐의자 중 한 사람과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3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받았다. 천상병 시인은 이후 행려병자 신세로 전락할 만큼 폐인이 돼 버렸다. 

(*2006년 1월 과거사 진실규명위에서는 당시 정부가 단순 대북 접촉을 국가보안법과 형법상의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했다며 정부에 사과를 권고했다.)


이응로는 프랑스 정부의 주선으로 석방되어 다시 프랑스로 건너갔지만, 이 사건은 그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1983년 프랑스 국적을 얻어 고국과의 공식 인연을 끊었다. 

그러나 인연이 그리 쉽게 끊어질 수는 없는 일. 그의 마음속에는 늘 고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찼다. 

파리에서 동포들을 만나면 작은 그림이라도 한 점씩 나눠주곤 했다.

 

그리움이 병이 되었는지 1989년 고국에서 기획한 초대전 전시회 첫날 파리 작업실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예술의 대가들이 묻힌 파리시립 펠 라세즈 묘지에 안장됐다.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정작 기념되어야 할 것은 고통이지만, 고통을 기념하기엔 아직 그 길에 서지 않은 사람들은 힘겹다. 

 

연지 공원에 도착하니 비가 조금씩 흩뿌렸다.

날씨도 흐릿해져서 사진찍기는 좋은 시간이 아니었다.

가끔 오가던 사람들의 모습도 조금 있으니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몇 장을 담았다. 여기도 부여 궁남지처럼 연꽃이 활짝 피지 못했다.


바람이 불고 연잎이 흔들린다.

이제 천천히 예술과 고통의 진흙 속에서 하나씩 꽃이 올라올 것이다.

바람에 떨어진 연잎이 하나 둘 날리기도 한다.

기념관은 늦은 시간이라서 문이 닫혀 있지만,

풀 한 포기라도 모두 자기 자리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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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샨티

2013.07.12 18:07:56

비 오시는 날 꽃처럼 처량해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시절 상관하지 없고 연꽃이 피어나는데,
하필 비가 내립니다.
꽃답게 꽃 피워보지 못하고,
비에 젖어 고개를 숙이는 꽃들의 여름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연이야 사람에게도 많지요.
태어나서 한번도 화사한 날 경험하지 못하고 고생고생 하다 세상 떠나는 사람들.
평생 비 맞고 산 셈입니다.

 

- 이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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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김영진

2013.07.12 22:37:33

시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 구절 구절이 가슴에 아립니다.
장마철입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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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13.07.12 18:15:07

 5년 전인가? 수덕사에 가본 적 있어요.
저를 안내하신 분이 목사님처럼 잘 알지 못하는 분이라서
수덕여관 설명을 못 들었네요.

연꽃의 계절이군요.
건강이 안 좋으신거에요?

profile

[레벨:23]김영진

2013.07.12 22:40:43

수덕사가 들꽃마당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지금은 많이 변해서 예전처럼 잘 가지 않고, 더구나 수덕여관이 수덕사 터로 들어가면서
정취도 없어졌네요...
몸이 조금 균형을 잃었어요. 요즘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많이 좋아졌습니다.
모래알 님도 부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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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13.07.12 21:38:58

글과 사진의 분위가
질문과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고통을 느끼고 당한 사람만의 자유와 삶의 깊이를 안다고 하던 어느 철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삶은 연어처럼 항상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의 과정이라고
떠내려 가는 삶은 바로 죽음이라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 절절하고 처절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마와 무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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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김영진

2013.07.12 22:44:14

 네, 연어처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의 과정이라는 말이 수긍이 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전혀 뜻밖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조작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는 일은 참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희망은 아무리 조작하고, 핍박해도 그것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달팽이님도 물길을 거슬러 가는 동안 늘 건강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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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7.12 23:55:01

운전하기 힘들 정도로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요?
가슴이 덜컹하네요.
곧 균형을 잡고 운전대를 잡으실 겁니다.
언제 한번 사진작품 전시회를 열 계획이 없으신지요.
저 사진들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힘이 나는군요.
주님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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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김영진

2013.07.13 18:19:22

 별것은 아니고요... 피로(?)로 인해 약간의 어지럼증이 왔습니다.
조금 불편하긴 한데, 이제 좋아졌습니다..
저도 곧 운전 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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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굶주린　늑대　

2013.07.13 10:11:22

제가 입학한 국민학교에 연꽃을 키우던 연못이 있었는데,
졸업할 쯤에는 연못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연잎의 구조를 연구해서 젖지않는 옷감이 개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위에 떠있고 또 물에 젖지않는 연꽃.

세상과 함께 살면서 세상에 물들지 않는 연꽃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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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김영진

2013.07.13 18:21:47

 연꽃을 보면 차분해 집니다... 꽃이 크고 부드러운 색감이어서 사진 찍기도 좋고요.
또 연이 자라는 환경이 여러 생각을 하게 해서 좋습니다. 연꽃 같은 그리스도인은 좋은 표현으로 다가옵니다. 
profile

[레벨:29]유니스

2013.07.13 12:59:34

목사님께서 글과 사진 풍경이 무척 담담합니다.
여기 대구는 36또...씩의 폭염이 계속되는데 말이지요.
저도 이응로 화백을 좋아하고 그 인생을 가늠해보면 나그네 삶의 아픔이 느껴집니다.
기회가 되면 그 곳에 가보고 싶네요.
목사님, 더운 날에 건강 잘 추스리셔요...^^

lovesmiths_201761_1[264995].jpg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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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김영진

2013.07.13 18: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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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니 군상을 그리고 있는 모습인 것 같네요...
군상 시리즈는 여기 전시관에도 몇 점 있습니다.  이응로 화백의 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니 참 좋습니다.
여유로울 때 한 번 오시는 것도 좋은 시간을 만드는 것일거예요...^^
profile

[레벨:38]클라라

2013.07.13 17:37:36

김목사님,
많이 편찮으신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저도 요새 좀 사정이 생겨서
다비아에 뜨문뜨문 들어왔었는데,
목사님의 사진과 글에 큰 힘을 얻습니다.

수덕사는 여기서 코 닿을 거리여서
저도 종종 가보긴 하지만,
수덕여관은 한 번도 못 들러 봤네요.
그런 애수어린 추억이 있는 곳이군요..

목사님,
"풀 한포기도 모두 자기자리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씀과 연꽃, 들풀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네요. 
모든 자연만물은 이렇듯 자기 자리에서
한결같이, 제 할일들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구나, 싶어요.
숙연한 마음까지 듭니다.

.....
얼마전에 여기 성당에서 안면도로 백합축제를 다녀오는 길에 
신부님이 소유의 삶, 존재의 삶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참 인상깊었어요.  
그날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어서 꽃들의 하늘거림이 
큰 어운으로 남아 있는데, 
그날처럼 저 들풀도 바람에 흔들리는군요.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이 너무 좋네요. 목사님, 
당분간 제 다비아 프로필 사진으로 써야겠어요. 
(픽셀을 조정했는데, 안 되네요.^^)

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세요. 목사님!

profile

[레벨:23]김영진

2013.07.13 18:33:02

 수덕여관은 여러 특히 여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고자 했던 여인들, 그러면서 겪어야 했던 아픔들....
다음에 혹시 수덕사 가실 계획이 있거들랑 연락을 한 번 주세요.. ^^ 

[레벨:11]질그릇

2013.07.15 09:27:16

늘 목사님의 글과 사진을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몸의 균형을 잃었다는 말씀에 쬐끔 놀랐고, 약간의 어지럼증이라시니 안심입니다.
너무 과로하지 마십시오.^^ 무더위에 단단히 유의하셔얄 것 같습니다.

수덕사는 벼르기만 하다가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지만, 글을 대하고 나니 꼭 한번 가야겠네요.
고암 이응로 화백의 생가기념관과 연지공원이 보고 싶어집니다.

라라 집사님^^
다비아에서 소식이 뜸 하면 많이 바쁘신가? 하고 생각합니다.
만나지는 못해도 댓글들을 통해서 만나는 듯 반갑기도 하고요.^^ㅎㅎ
수덕사와 가깝다니 그곳에 가게되면 한번 만나야겠습니다.
장마철에 더욱 건강 챙기시고요^*^

profile

[레벨:38]클라라

2013.07.15 17:33:57

박목사님, 그동안 평안히 지내셨는지요.
강릉에서 군목회를 하신다고
지난번에 말씀하신 것 기억하고 있는데,
어떠신지요. 힘드시기도 하시지만,
반면에 큰 보람도 있으실 것도 같습니다.

저는 여기서 그런대로 지내고 있습니다.
다비아에 글을 안 남기니 소식이 궁금하셨군요.
얼마전에 집안에 큰 일이 있어서 마음이 좀 심란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대로 평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수덕사나, 혹시 이쪽에 오실 일이 있으면 꼭 연락 주세요.
저도 목사님을 꼭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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