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가다

조회 수 3677 추천 수 1 2013.01.02 23: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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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농촌 한 귀퉁이에서
겨울을 맞았습니다. 아니, 새로운 날의 시작을 맞았습니다.
생각하니 새로움이란 덜덜 떨리도록 무척 추운 시간이군요.
겨울 초입부터 모든 것이 꽁꽁 얼었습니다.







겨울은 이상한 계절입니다.
아니, 신기합니다.
살랑살랑 따뜻한 아랫녘 바람 부는 계절 놔두고
이렇게 춥고 두려울 만큼 움츠러드는 계절에
새해가 시작하다니요.







눈이 내리는 이유가 그래서인가요?
혹여 모든 것을 하얗게 만들어 다시 시작하자는 것인가요?
그렇게 다시 출발의 순간을 열자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이 고통의 계절을 마다할 수 없습니다.
돌아보면 후회투성인데, 이렇게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앞으로 여전히 가야 할 스스로 이유가 될 수 있으니까요.







눈길을 갑니다.
마음이 살포시 긴장합니다.
늘 가는 길인데도 눈이 덮인 길은 새로운 길입니다.
하얀 길 위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그랬듯이 무사히 갈 수도 있고, 옆으로 미끄러져 바동거릴 수도 있을 테지요.
그래도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넉넉하진 않아도 못 갈 길은 아니지요.







눈길을 갑니다.
어른은 닳아진 세월이 미끈거려 주춤거려도, 아이들은 거리낌 없는 길입니다.
아이들을 실은 차는 오르막 내리막길에서 밭 귀퉁이에라도 미끄러질라치면
아이들 함성에 제풀에 통통 튀어 올라 제 길을 갑니다.







눈길을 갑니다.
이렇게 이어진 길이 봄에는 꽃길로, 여름에는 바람길로, 가을에는 색색 길로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마음에는 노래길, 웃음길, 밝은 길로 피어나기를
소망을 안고 앞으로 갑니다.
지금은 눈이 내리고, 바닷길 산길 논길 온통 적막함 묻혀 있지만.







눈길을 갑니다.
아이들이 사뿐사뿐 눈 위로 달려옵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고, 또다시 아이의 아이가 그때도 달려오기를.
그렇게 바라는 마음이 모여서 농촌의 작은 학교가 여전히 이 길을 가고
겨울에도 얼어붙은 땅속, 꿈틀거리는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랍니다.







스스로 신기한 계절 겨울에
덜덜 떨면서 길에 나섭니다. 매섭고 미끄럽고 걱정되고 움츠려지지만
그래도 가는 만큼 새로운 시작의 문을 흔들어 볼 수 있을 것 같기에
눈 덮인 마른 풀잎 털어주며 길에 나섭니다.







크게 보였던 나무도 눈 내리는 벌판에서는 다소곳한 모습입니다.
나무보다 훨씬 작은 나는 눈길 위에서 점 하나의 흔적입니다.
눈에 덮여 금방 사라지는 흔적입니다.
오직 후회하고 싶지 않아 담대하지 못한 마음 추스르는 조그만 점입니다.







눈길을 갑니다.
이토록 추운 겨울에 새해가 시작한다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눈길 위에서 버둥거리느라 애쓰기 위해 갑니다.
가다가 눈에 덮여 사라지고 그 위로 다른 발자국이 새겨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리고 그 간절함마저 흔적조차 없어지기를 바라면서
눈길을 갑니다.







겨울 한 가운데, 오늘은 눈길이 내가 가는 길입니다.







 

 

 

 

.

.

.

 

 

 

 

 

profile 건강한 농촌, 튼튼한 생명을 바라는 들꽃마당에서 ...  김영진
첨부

profile

[레벨:38]클라라

2013.01.03 20:09:03

김목사님,

엊저녁부터 제 눈자위가 짓물렀습니다.^^

눈이 시리다 못해

가슴까지 아립니다.

 

첼로는 왜 저리 가슴을 후벼파는지요?

대림절 시기에 목이 메도록

<오소서, 임마누엘>을 불렀드랬습니다.

 

이제 주현절 주간이군요.

목사님의 글에서

주님의 '현현'을 읽게 됩니다.

오셨음과 오심과 오실을..

 

그래서 우리는 겁없이

저 눈길을

걷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목사님,

새해에도 주님 안에서

늘 평안 하십시요.

 

임하소서 임마누엘이여

천하만민을 구원하시고

온세상 구세주 기다리니

우리 가운데 어서 오소서

기뻐하라 이스라엘이여

임마누엘이 오시리로다

 

임하소서 인류의 구세주

우주만물을 지배하시고

우리에게 지혜주시오며

진리의 빛을 밝혀주소서

기뻐하라 이스라엘이여

임마누엘이 오시리로다

 

임하소서 다윗후손이여

어둠권세를 물리치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시오며

천국의 문을 열어주소서

기뻐하라 이스라엘이여

임마누엘이 오시리로다

profile

[레벨:24]프시케

2013.01.04 12:42:59

목사님 감사합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부를때마다 눈물나는 찬양이네요

목사님 사진과 글과 어우러져서 말로 못할 감동이 있습니다.

사진 또 몇장 살포시 퍼갑니다. 아이들이 있으니 눈길이 돋보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profile

[레벨:43]웃겨

2013.01.04 13:18:00

완벽해요... 목사님!

백설 위에 쏟아지는 첼로와 피아노 선율...

목사님의 감성지수 높은 글에,

저 배꼽나온 개구장이 표정까지..완벽한 예술입니다..

새헤에도 건강하세요~~!

 

[레벨:11]초신자의 특권

2013.01.08 19:45:14

"오늘은 눈길이 내가 가는 길입니다."

현재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공통하게 하는듯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 글에서 늘 그 근원이 궁금하면서도 빛나는 점은 다음의 태도입니다.


"그래도 가는 만큼 새로운 시작의 문을 흔들어 볼 수 있을 것 같기에
눈 덮인 마른 풀잎 털어주며 길에 나섭니다."

 

임마누엘 진리의 빛의 도래에 대해 믿어의심치않음으로 인해 갖게되는 저력인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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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10 16:16:56

김영진 목사님,

여기 하양에도 지난번에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금년은 별난 해입니다.

제가 대구 근교로 내려온 1986년 이후로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거든요.

이런저런 이유로 금년 겨울은 더 춥네요.

그래도 봄이 오겠지요.

주님의 은총이 더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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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김영진

2013.01.10 22:39:43

오늘 서울을 다녀왔는데, 무척 춥더군요...

제가 속해 있는 교단에서 전체 목회 메뉴얼을 만들고 있는데 그중 한 분과에 속해서 집필을 하고 있습니다.

올라가고 내려오고.... 기차를 탔는데 눈이 하얗게 덮여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 보기는 좋았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여러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렘브란트 그림의 해설서(?)를 구입했습니다.

 

........

희망이 있다면, 임마누엘은 간절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춥고, 눈은 녹지 않고... 아이들은 없고...

아니면 다른 절망 속에서 헤멜 때 우리의 간절함이 모습을 드러낼지 모릅니다...

 

임마누엘 진리의 빛이 힘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댓글을 읽으면서 다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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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13.01.12 23:02:21

아....좋습니다.

첼로에 젖어들어가다가

하늘로 뛰어오른 꼬맹ㅇㅣ의 동그란 배꼽 보고 웃다가....^^

profile

[레벨:12]잠자는회색늑대

2013.06.14 16:46:42

지금 밖은 가뭄을 달래는 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 머무는 순간 만큼은 저 길위를 제가 거닐고 있는 듯합니다.

어디서 이런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하얀 눈길을 거닐며

티없이 맑은 미소를 대할 수 있을런지요.

.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23]김영진

2013.06.15 14:00:32

덕분에 저도 시원한 길 위를 거닐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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