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16

조회 수 249 추천 수 0 2024.04.08 21:41:1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2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거룩한 성에 대한 묘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위 16절을 문자 그대로 생각해봅시다. 거룩한 성은 정육면체이거나 피라미드 모양의 탑입니다.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12,000 스다디온이라고 합니다. 1스다디온은 192m라고 하니(14:20) 자그마치 각각의 길이가 2,304km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저런 크기의 성 앞에서는 높이가 대략 8.8km인 에베레스트산이 앞동산보다 낮게 느껴지니까 거룩한 성의 규모는 어마어마한 겁니다. 실제로 저런 크기의 성이 지구에 만들어진다면 지구의 기울기나 자전 및 공전의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겠지요. 참고로 지구의 지름은 12,742km입니다. 요한은 지금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우면서 가장 압도적인 형태의 성을 묘사하려고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하는군요. 혹시 모르지요. 실제로 이런 성이 혜성 등등의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있겠지요.


[레벨:9]소유와존재

2024.04.09 14:08:47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하는군요.."


빌라도가 예수를 향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했을 때

예수의 (생명의)왕되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듯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종말의 생명을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해서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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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4.04.09 20:53:03

상상력과 망상이 종이 한장 차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성경이 말하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거룩한 상상력을 이해하고 경험해야만

상상력과 망상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레벨:23]브니엘남

2024.04.16 06:40:55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라고 말하는 것은 새예루살렘이 <지성소>라는 것을 의미한다(출 26:2-8, 왕상 6:20)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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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4.04.16 21:47:11

브니엘남 님의 독특한 해석인지, 어디서 인용한 건지 모르겠으나

새예루살렘과 지성소를 연관짓는 건 비약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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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좋은나무

2024.04.17 13:37:04

브니엘남께서 말씀하신 해석이.... 요즘 복음주의 성경신학자들이 얘기하는 해석인 것 같습니다. 성경전체를 창세기~계시록까지 "성전"모티프로 보고자 하는 것인데, 새물결플러스에서 출간된 그레고리빌의 "성전신학"에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실제 지성소의 정육면체와 연결지어, 에덴이 원래 성전의 지성소였는데, 타락으로 인해 지성소로 출입할 수 없게 되었다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미 - 아직 아니" 차원에서 지성소로의 접근이 예수를 통해 회복되었고 종말에야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성전신학을 한 학기 배웠던 적이 있어서 이렇게 댓글로 말씀을 드립니다. 영미권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대표적으로 톰라이트, 그레고리빌) 요즘 성경신학자들 사이에서는 꽤 설득력있는 해석으로 많이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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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4.04.17 20:42:58

그렇군요. 좋은나무 님이 링크해 놓은 책 소개도 읽어보았습니다.

재미있군요. 나는 성전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고 생각하는데

버젓이 '성전신학'이라는 표제로 책이 나왔고,

유수의 한국 성서신학자들에게 격찬을 받았네요.

책을 직접 잃어보지 않아서 뭐라 말할 거는 없고,

다만 구약의 지성소를 계시록이 말하는 새 예루살렘과 연결하여

예표론적으로 해석하는 거는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적절한 책 소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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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좋은나무

2024.04.17 22:08:32

감사합니다 목사님. 말씀처럼 성전신학이..... 예표론이 좀 강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요즘 성서신학자들이 성경을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메타내러티브) 서사로 보는, 즉 창세기~계시록까지를 하나의 책으로, 거시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세상의 서사를 전복시킬 수 있는 대안서사가 성서 내러티브 안에 있다는 강한 확신이 성전신학과 같은 관점을 붙들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성서를 너무 거시적으로 보게 하는 관점과 예표론때문에 개별 텍스트와 씨름하면서 설교를 준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입니다!

[레벨:7]제통

2024.04.18 08:45:00

저도 일전에 읽었던 책입니다. 솔직히 마치 무슨 암호해독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성서해석이 예표론이나 어떤 비밀을 푸는 방식으로 가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레벨:23]브니엘남

2024.04.18 18:23:29

역사적으로 전해 내려온 성경 해석방법은 4중적 의미의 해석이다. 기독교 초기 교부 시대 3대 학파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오리겐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근거하여, 인간이 육과 영과 혼으로 되어 있듯이, 성경에도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며, 성경 본문에 대해 ‘몸’은 문자적 의미, ‘혼’은 도덕적 의미, ‘영’은 풍유적(영적) 의미를 찾는다고 하며, ① 문자적, ② 도덕적, ③ 우의적 해석을 강조한 것인데, 토마스 아퀴나스가 여기에 ’영적(신비적)‘의미를 더하여, 4중적 의미의 해석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4중적 의미의 성경 해석은 중세기를 거쳐 현재까지 성경 해석의 중요한 해석 체계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4중적 의미의 해석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배척을 당했던 성경 해석이다. 종교개혁가들은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전통적 해석방법으로 전해져 내려온 4중적 의미의 해석을 배척하고, 안디옥 학파의 역사적 해석 방법론을 토대로, 성경 해석의 원리와 방법을 획기적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5가지 성경 해석의 원리와 방법이 모두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에도 차원이 있듯이 진리에도 차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진리, 즉 실재는 문자적, 도덕적, 우의적, 영적(신비적), 역사적 해석의 모든 것에도 일점일획이라도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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