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9:2

조회 수 177 추천 수 0 2024.01.25 08:23:5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22

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자기 종들의 피를 갚으셨도다.”라는 표현이 어떻게 들으면 섬뜩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시편에도 원수 같아 달라는 표현이 어떤 때는 직설적으로, 어떤 때는 에둘러서 나옵니다. “내 생명을 찾는 자들이 부끄러워 수치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이 물러가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35:4) 선지자들의 발언에도 나옵니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1:2) 질투하고 보복하며 진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저렇게 외치지 않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상황 말입니다. 지금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아 자기 아이들이 죽어가는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저 말씀은 원수를 갚아 달라는 호소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들이 직접 원수를 갚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12:19)라는 바울의 발언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사람이 직접 원수 갚는 일은 악순환을 불러일으킵니다. 당한 일보다 더 과하게 갚으려고 하고, 그런 일들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한쪽이라도 먼저 직접 원수 갚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는, 즉 정의롭지 못한 행위는 언젠가는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실제로 삶의 중심으로 삼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에서는 불의가 늘 심판받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는 없으나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심판이 일어난다는 믿음입니다. 이런 점에서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은 옳습니다. 믿음직하지 못한 사람까지 믿어주는 차원을 가리키니까요. 이런 믿음 말고 우리가 세상살이를 버텨낼 방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이 믿음의 차원에 올라설 수 있도록 분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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