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과 30년

조회 수 1058 추천 수 0 2017.06.23 21: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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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과 30

 

요즘 나는 설교 방식을 약간 바꿨다. 설교 원고에서 가능한 눈을 떼고 회중들과 눈을 맞추는 시간을 대폭 늘리는 방식이다. 장단점이 있다. 원고가 담고 있는 내용의 밀도를 그대로 전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에 회중들과의 교감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회중과의 교감이 높아지면 원고를 글로 쓸 때 느끼지 못한 어떤 영적 감수성이 살아날 수 있다.

지난 설교에서 그런 경험이 있다. 우리의 모든 삶이 다 하나님의 돌보심이라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경험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중이었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 말기 암에 걸린 사람도 그걸 경험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게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시한부의 삶이 확실해지면 모든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죽음만 기다리게 된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투명한 시간이다. 그렇게 3개월 사는 것과 지금처럼 온갖 근심 걱정을 지고 30년 사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하고 질문했다.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당연히 3개월을 선택한다고 답해야 한다. 3개월과 3년의 시간적인 차이라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작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기에 투명한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만 본다면 대개는 30년을 선택한다. 30년 동안 늘 걱정과 근심을 하는 게 아니라 나름으로 투명하게 살기도 하니까 이왕이면 오래 사는 게 좋다. 나도 30년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이런 질문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3개월의 시한부 삶에도 하나님의 은총이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추듯이 임한다는 사실을 붙들자는 것이었다. 그런 시각이 없으면 30년이라는 세월도 늘어진 엿가락과 같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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