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2월15일 대림절 3주

조회 수 1620 추천 수 0 2019.12.17 21:20:09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1215, 대림절 3

 

1) 찾으라- 지난 주일(125) 설교 마지막 문장은 찾는 자는 찾게 될 것입니다.”입니다. 이게 진리의 속성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에 꽂혀있습니다. 예수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분명히 지금 여기서 그 하나님 나라를 찾을 수 있겠지요. 그게 무언지 조금씩 눈에 안개가 걷히듯이 저의 눈에 들어오고 있긴 합니다. 훗날 좀더 확연해지면 설명해보겠습니다.

 

2) 성경봉독- 이번 주일의 제1독서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사야 35:1-10절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봉독자가 읽을 때 제가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어떤 영감이 떠오르더군요. 7,8절에 대로가 나옵니다. 9절은 거기에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런 대로를 다닐 수 있습니다. 인생살이에서 아무런 어려움을 만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 어떤 재난도 사납지 않다는 뜻입니다. 인생살이에서 사자 같은 포식자를 만날까 전전긍긍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서 구속받은 자로 살아가는 게 최선입니다. 설교가 없어도 귀만 기울이면 성경봉독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경험될 겁니다. 성경봉독자의 역할이 아주 큽니다.

 

3) 강행군- 지난 주일은 대구 샘터교회의 자매 교회인 서울 샘터교회의 창립 11주년 기념 주일이자 교인총회가 열린 날입니다. 세월이 무상하게 흐르는군요. 저는 그곳에서 모든 모임이 끝나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 앞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 잔 후, 마포 중앙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싶었는데, 월요일이 휴관일이라 허탕을 치고 근처 카페에서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구내식당에서 45백원 짜리 정식을 먹고, 새물결 플러스 출판사에 가서 대표 김 목사를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출판사 주소가 바뀌었더군요. 그날 나온 귀한 책도 한 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예수의 부활입니다. 무려 1,032쪽이나 되고 책값도 55천원이라고 하는군요. 출판사의 저력이 느껴지는군요. 이번 겨울에 꼼꼼히 읽어볼 생각입니다. 졸고 목사 구원』은 출판사 일정이 꽉 차서 아무래도 내년 중반에나 나올 겁니다. 저녁 5시에 홍성사 저자 모임에 참석했다가 밤늦게 돌아왔습니다. 오늘도 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외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목요일부터 오늘까지 강행군이었네요. 몸살기가 없을 수 없겠지요.

부활.PNG

 

4) 설교단편- 지난 일 년 동안 저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주신 분들을 위한 작은 선물로 만든 책이 설교단편입니다. 대구 샘터교회에서는 예배와 식사 후에 곧바로 동대구로 가는 바람에 교우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 샘터교회 교우들은 이구동성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다고 말씀들을 하시네요. 처음에는 설교집으로 생각했다가 내용을 보니 신앙 에세이에 가깝고, 길이도 짧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고 하는군요. 제가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게 잘한 일 같습니다. 교우 중에서 아직 받지 못한 분들은 오는 주일에라도 받아가십시오.

 

5) 비빔밥- 오늘 식단은 오랜만에 비빔밥이었습니다. 각종 나물과 야채의 색깔, 모양, 향기, 식감, 그리고 씹히는 느낌이 황홀했습니다. 그런 황홀감을 느끼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약간의 흔적만으로라도 절감할 겁니다. 종류는 열 가지 이상으로 보입니다. 그 재료가 온 과정과 그걸 손으로 만드는 과정도 예술이겠지요.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추장과 간장 소스 중에서 저는 간장을 선택했습니다.

 

6) 이은혜 재즈 트리오- 오는 금요일 저녁 730분에 우리 교회 반주자 세 명 중의 한 분인 이은혜 집사의 연주회가 아트팩토리 청춘에서 열립니다. 대구를 대표하는 재즈 트리오입니다. 이번에는 일전에 음원으로 발간한 찬송가 시리즈를 연주합니다. 재즈 트리오를 거쳐서 찬송가가 어떻게 울려 퍼질지 기대됩니다. 저도 몸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으면 송년 기념으로 집사람과 함께 다녀올 예정입니다.

 

7) 새 교우- 새로 등록한 교우가 오늘 친교 시간에 인사했습니다. 경남 함양에 사는 최*영 님입니다. 몇 달 전부터 이따금 참석했는데, 이번에 아예 등록하셨습니다. 원래는 1987년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분이십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교회에 천주교 신자들이 여러분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지금 거주지가 멀어서 자주 오기는 힘들겠지요.

 

8) 예배 참석인원: 89, 헌금: 3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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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하늘연어

2019.12.17 23:33:46

비빔밥에서 느끼는 하나님 나라!

글을 읽으면서도 생명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예배 참석인원 89명에 헌금 33만원에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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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9.12.18 19:21:25

ㅎㅎ 33만원은 만나라서 우리교회가 생존하는데 충분합니다.

많이 거둔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자도 부족하지 않았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은혜롭게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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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3]웃겨

2019.12.18 21:33:25

설교가 늦게 올라와서 살짝 걱정했어요. 무슨 일이 생기셨나.. 

바쁘셨군요. 주간일지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비빔밥은 마을식당 단골메뉴여서 익히 압니다.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

그에 반해 얼마나 먹기는 간단한지..ㅎㅎ

'고추장과 간장 중에서 간장을 택했습니다.. '

그 귀절이 왠지 참 재밌어요.

여러일로 고단하셨을 텐데 푹 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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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9.12.19 19:46:59

언젠가 기회가 되면, 뭐 뻔한 그림이긴 하겠으나

비빔밥 사진을 올려보겠습니다.

제 삶의 에너지가 고갈나려고 하는지

금년에는 왜 이리 몸이 아픈 경우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나이 생각하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그걸로 족하다, "많이 묵었다 아이가." 하고 그분이 저에게

신호를 주시는가 봅니다. 엄살이에요. ㅎㅎ

새로 지은 집에 벽난로가 있으니 겨울이 기다려지겠군요.

주님의 평화가...

[레벨:29]모모

2020.01.18 00:29:47

목사님, 소개해주신 '예수의 부활'을 요즘 읽고 계신지요? 저도 읽고싶은데 너무 어렵지 않을까 살짝 걱정됩니다.부활에 대해서 조금 깊이 알고싶어서 그런데, 이제 막 부활의 빛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고 있는,그래서 부활의 실체를 너무 알고싶은, 저같은 사람이 읽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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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0.01.18 20:00:25

아니요. <예수의 부활>이 큰 도움은 안 될 거 같습니다.

이유는 전개 방식과 내용이 너무 촘촘하고 방대해서 

웬만한 사람은 그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저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싶은 분에게는 필요한 책입니다.

저는 며칠 전에 쭉 훑어 봤습니다.

제 나이가 되면 차례만 봐도 대략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게 됩니다. ㅎㅎ

무슨 일을 하는 분인지 모르겠으나 모모 님에게는 

제가 번역한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해설>이나 

그 책을 강독한 졸저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해설> 강독에 나오는 

부활 대목을 읽는 게 차라리 나을 겁니다.

아, 부활의 빛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레벨:29]모모

2020.01.20 01:02:50

네, 지금 사도신경해설 강독 다시 읽고 있는데부활 대목을 더 깊이 묵상하면서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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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19) 요 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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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19) 요 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7절과 8절은 예수를 양의 문이라고 표현했다. 11절과 14절은 “선한 목자”라고 표현했다. 양의 문이나 선한 목자는 같은 의미다. 선한 목자는 목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표현이기는 하나 실제로 목자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떨어질 수 있다. 이리가 양을 강탈하려고 나타나는 상황이다. 삯꾼 목자는 양을 사랑하지도 않고 소명의식도 없기에 위험한 상황에서 쉽게 도망...

예수 어록(218) 요 10:11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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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18)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가 자기 목숨을 버리고 싶어서 버린 건 아닐 것이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을 뿐이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가능하면 십자가 죽음을 피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고 고백했다. 예수의 관심은 거대한 인류 구원이 아니다. 그에게 인류 구원에 관한 소명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소박하게 자신에게...

예수 어록(217) 요 10:10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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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17)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을 “더 풍성히” 얻는다는 말이 그럴듯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생명을 풍성히 얻는다는 말이 성립되려면 풍성히 얻지 못한다는 말이 전제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생명 경험은 속된 표현으로 ‘잘 먹고 잘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하고, 사회적인 지위도 높아야 한다. 남보다 아주 특별하게 부자로 살거나 사회 명망가로 살지는 못해...

예수 어록(216) 요 10:9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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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962

예수 어록(216)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기독교 교리의 초보에 속하지만,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사는 한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한다. 아는 것 같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게 확인될 것이다. 오래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도 구원을 완전히 실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긴말이 필요 없다. 바울은 이 대목에서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

주간일지 12월15일 대림절 3주 fil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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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15) 요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 2019-12-14
  • 조회 수 1569

예수 어록(215) 요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며 강도라는 요한복음 기자의 진술은 오해받을 수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선지자들을 다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가까이 간 사람들이다. 그들을 통해서 유대 민중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해 들을 수 있었으며, 그들의 신앙 전통이 살아있었기에 예수도 역사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을 절도라고 말한 이유는 그들이 실제로 절도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통한 생명 경험이 절대적이...

예수 어록(214) 요 10:7 나는 양의 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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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14) 요 10: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는 ‘양의 문’이다. 양은 저 문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 양치기도 문으로 들어와야 한다. 울타리를 넘는 자는 양치기가 아니라 도적이다. 양의 문이라는 표현은 요 14:6절의 표현과 같은 의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가 곧 구원의 문이라는 뜻이다. 이런 요한복음의 고백이 나의 신앙고백으로 좀 더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예수 어록(213)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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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13)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여기서 타인은 바리새파 지도자들이다. 1세기 마지막 30년 어간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붕괴로 지리멸렬에 떨어졌을지 모를 유대교가 바리새인들의 개혁 운동으로 상당한 성과를 내던 시기였다. 그 운동의 본거지는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얌니야다. 그곳에 랍비 학교가 세워졌다. 역설적으로 그들의 성공적인 바리새파 운동으로 인해서 기독교 세력은 위축되었다. 요한복음 기자는 그런 상황...

예수 어록(212) 요 10:4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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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12) 요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 본문의 묘사가 한편의 동화처럼 전개된다. 양치기는 양의 문을 열고 앞서 풀밭과 시냇가로 걸어간다. 그 양치기는 노래를 부르거나 피리, 또는 휘파람을 불었을 것이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멋진 모양을 그리는 중이다. 새도 날고 나비와 벌이 양치기 주변을 오갔을지 모른다. 어디선가 꽃향기가 날아온다. 양은 양치기의 음성을 알기에 뒤를 따른다. 양치기와 양은 말 그대로 혼연일체가 되어 삶을 풍성하게 누린다. 예수를...

주간일지 12월8일 대림절 2주 fil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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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2월8일, 대림절 2주 1) 불 심판- 목사가 자신의 설교에 은혜를 받는다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저는 가끔 그런 일을 경험합니다. 오늘(12월8일)이 그런 날입니다.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심판은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더 할 나위 없는 복된 소식입니다. 심판을 복음으로 들을 수 있다니, 얼마나 은혜로운 설교입니까. 더군다나 우리를 심판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

예수 어록(211)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 2019-12-07
  • 조회 수 1342

예수 어록(211)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은 우리에서 보호받는다. 그 양의 우리는 하나님이다. 양치기는 양을 위해서 문을 여닫는다. 아침에 문을 열고 초장과 물가로 인도하고 저녁에 다시 문을 열어 양을 우리에 넣고 문을 닫는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에 목자가 하라는 대로 하고, 목자도 자기 양을 알기에 최선의 방식으로 양을 지킨다. 예수만이 양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양치기처럼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자라는 뜻...

예수 어록(210)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 2019-12-06
  • 조회 수 1017

예수 어록(210)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목자는 문으로 들어간다. 예수만이 양과 목자를 연결하는 통로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를 근거로 삼아야 한다. 어떤 이가 참된 목자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예수와의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예수와 관계없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양의 목자가 아니라 도적이다. 원래 목자는 하나님이지만 이 구절에서는 목자를 예수라고 볼 수도 있긴 하다. 11절에서는 예수가 선한 목자로 나온다. 어쨌든지 예수만이 양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존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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