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월19일

조회 수 833 추천 수 0 2020.01.20 11:18:46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119, 주현 후 2

 

1) 아포칼립시스- 오늘 설교 본문에 속한 고전 1:7절에는 특별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라는 단어입니다. 나타나심은 헬라어 아포칼립시스라고 설교 시간에 설명했습니다. 아포칼립시스는 계시, 또는 묵시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나타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KJV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coming)이라고 번역했고, NIV계시된’(to be revealed)라고 번역했습니다. 루터 성경은 계시’(Offenbarung)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의 일상 용어라 할 수 있는 나타나심은 예수가 2천 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온다는 뜻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아포칼립시스라는 단어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움(novum)입니다. 완전한 새로움이라서 이전 것은 모두 지나갔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멋지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도 다 지나갑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그런 순간이 언제 어떻게 시작할지, 정말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2) 일정 변경- 주보에 실린 내용 중에서 2020년부터 달라진 일정을 여기서 다시 알려드립니다.

교인 간담회- 석 달에 한 번씩 열리던 교인 간담회가 1월에는 교인총회로, 7월에는 교인 간담회로 두 번 열립니다. 중간에 급히 의논할 일이 생기면 임시 교인 간담회가 열릴 수 있습니다.

운영위원 회의- 매월 마지막 주일에 열리던 운영위원 회의가 첫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마지막 주일 이전 주일까지 재정 지출을 끝냈는데, 이제는 마지막 주일에도 지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학공부- 매월 첫 주일 오후 2:00-4:00에 열리던 신학공부 시간이 줄어들어 2:00-3:00에 열립니다. 22일에는 에티엔트 트로크메의 초기 기독교의 형성11바울 후예들의 소생을 공부할 차례입니다. 이런 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뿌리를 깊이 있게 알 수 있습니다.

성가대 연습- 매월 첫 주일과 둘째 주일에 모였던 성가대 연습이 매월 둘째 주일과 넷째 주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성가대에 참가하기 원하는 분은 총무 박정연 집사에게 문의하십시오.

 

3) 교회 간판- 일주일 만에 좋다가 말았습니다.” 교회 간판을 떼라는 요구를 건물주에게서 받았다고 운영위원장이 저에게 말씀하시더군요. 교회 간판이 건물주의 안목에 미달했나 봅니다. 오늘 임시 운영위원 회의를 열어서 일단 간판을 떼기로 했다고 합니다. 운영위원들이 다시 준비해서 건물주 마음에 드는 간판을 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간판이 없어도 기존 신자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처음 우리 교회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교회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근처까지 왔다가 교회를 찾을 수 없어서 그냥 돌아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대구 샘터교회는 노숙자 영성으로 살아갑니다. 월세를 내는 지하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단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주일학교와 중고 담당 전담 교역자도 없고, 당회도 없고, 십일조와 각종 감사헌금과 절기 헌금도 없고, ‘경배와 찬양도 없고(아니 아주 드물고), 새벽기도회도 없고, 심방도 없고. 이렇게 없는 거만 많습니다. 그런 데다가 간판도 없네요. 개인이나 교회나 마찬가지인데, 최소한 일용할 양식만 있다면 없는 게 많을수록 더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을 알만한 분들은 다 알 겁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은 좀 이상한데, 혹시 이단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우리가 정통인데.’합니다. 곧 떼어낼 간판을 한번 보십시오.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놓았습니다.

     IMG_2718.JPG

 

4) 루디아- 오늘 여 교우 모임인 루디아회가 월례회로 모였습니다. 2020년 들어서 첫 번 모임인 탓인지 늦은 오후 5시까지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저는 1층 카페에서 몇몇 교우들과 대화를 하면서 기다리다가 5시 가까이 돼서야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그때까지 왁자지껄하면서 대화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루디아에 관한 주제만이 아니라 교회 전반에 관해서도 열린 토론이 전개되었나 봅니다. 집으로 오면서 집사람에게 들으니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2020년 기도 제목을 나눴다고 합니다. 어떤 회원은 신경질을 줄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두 가지 좋은 소식도 들었습니다. 회원 2명이 늘었습니다. *, *옥 회원입니다. 올해 부활절에는 루디아회에서 특별 이벤트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대되는 그 내용은 당분간 비밀입니다.

 

5) 예배 라이브 방송- 오늘 아프리카 TV로 보내는 예배 라이브 방송 담당 이*희 집사 가족이 예배에 오지 못하는 바람에 이*영 교우가 대신 방송을 맡았습니다. 이 집사가 미리 부탁하면서 방법까지 상세하게 알려줘서 방송에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형 동생 하면서 지내는 절친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예배 방송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소수지만 있습니다. 특히 병원에 입원해 있는 교우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대장암 수술을 마치고 오늘 예배에 참석한 김*연 집사도 병원에서 예배 방송을 들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작은 일들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데에 좋은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6) 앰프- 요즘 스피커 소리가 좋습니다. 앰프 기계는 옛날 거 그대로인데 이렇게 소리가 안정적으로 좋아진 이유가 뭘까요? 일전에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 다비안 중의 한 분이 자기가 나가는 교회의 방송 담당 전문가를 데리고 와서 우리 교회 오디오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점검해주었습니다. 이제는 파울링도 없고, 소리가 갑자기 작아지거나 찍찍대는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저도 편안하게 설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사회자 목소리도 전달이 잘 됩니다. 도와주신 박*수 집사에게 다시 감사드립니다.

 

7) 손님- 오늘도 손님으로 방문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손님들은 늘 눈에 뜨이는데, 교회에 정착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인가, 하고 보러 왔다가 별로 마음이 들지 않아서 발길을 끊는가 봅니다. (농담입니다.) 손님으로만 오셔도 좋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대구에 왔다가 예배나 참석해보자 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한 가족은 예배 후에 그냥 돌아가셨고, 다른 한 가족은 저와 같이 식사를 하고 1층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 부부는 대구 어느 교회에 다니는 분들로 우리 교회 예배에 가끔 오십니다. 대구 성서아카데미에 종종 꼭지글이나 대글도 답니다. 그분의 닉네임을 말씀드리면 알만한 분들은 알 겁니다. 저보고 시간 될 때 토요일 오후에 테니스 한 게임 하자고 하시던데, 그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반가웠습니다.

 

8) 설날- 24()부터 27()까지 설날 연휴입니다. *수 집사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목사님, 오는 주일에는 제가 교회에 나오지 못합니다. 아들 며느리 가족과 함께 괌으로 여행을 갑니다.”라고 하시더군요. 멋진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번 설날 연휴에 이런 비슷한 계획을 짠 교우들이 있겠지요. *영 교우는 디지털 아트작품 사진을 찍으러 제주도에 간다고 합니다. 한라산에는 눈이 쌓여 있을까요? 우리 가족은 방콕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방콕에 친숙해져야 합니다. 영원히 방콕 해야 할 순간이 가까이 오기 때문입니다. 예배 후 늘 환한 모습의 김 아무개 청년이 목사님, 설날 연휴에도 예배가 있나요?”라고 저에게 묻더군요. 저는 웃으면서 물론이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식사 친교 시간에 어떤 집사가 다음 주일 예배 후 식사가 있나요?”라고 묻자 봉사부장이 , 그대로 진행됩니다.”라고 대답하시더군요. 설날 연휴, 모두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예배는 있습니다.

 

9) 예배 참석인원: 76/ 헌금: 1,090,000(통장 15만 원 포함)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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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2 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6절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모든 사람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영광(δόξα, glory)은 요한계시록에 흔하게 나오는 단어입니다. 요한계시록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리켜서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붙일 수 없는 개념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완전히 변화된 세상이라서 사람도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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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1 21: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5절 문장이 약간 이상합니다. 거룩한 성에는 밤이 없어서 낮에 성문을 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문은 보통 밤에 닫지 않습니까. 낮에는 원래 열어두는 거고요. 밤에도 성문을 잠그지 않는다고 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인데, 위 구절은 자연스러운 문장이 아닙니다. 아예 문이 필요 없겠지요.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려는 ...

계 21:24 [2]

  • 2024-04-18
  • 조회 수 25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0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4절의 표현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왕이 각각의 영광 가운데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거룩한 성에 들어간다는 말이냐, 하는 질문은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심판받을 자는 심판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 21:8)에 던져질 자들은 모두 던져진 이후의 일이니까요. 거룩한 성에 들어갈 자들에게 ‘자기...

계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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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9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요한은 해가 필요 없고 달도 필요 없는 세상을 내다봅니다. 빛이 필요 없는 세상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되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사 60:19-20절에서 이에 관해서 통찰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

계 21:22

  • 2024-04-16
  • 조회 수 25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8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2절에는 아주 특별한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겁니다. 성전 하나쯤 있어야 거룩한 성이 빛나 보일 텐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라 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성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종교 건물이 없는 곳을 거룩하다고 이름 붙일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러나 요한이 본 거룩한 성은 그것 자체로 완벽하기에 성전은 없어도 ...

계 21:21 [2]

  • 2024-04-15
  • 조회 수 28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7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12절에서 언급된 열두 문이 21절에서 다시 소개됩니다. 각각의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있습니다. 진주 한 알이 박혀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문 전체가 진주로 되어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문을 만들만한 크기의 진주는 세상에 없습니다. 문이 진주 모양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냥 편하게 진주로 된 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문에 이어지는 길이 나옵니다. 길은 ‘맑...

계 21:20

  •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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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6 21:20 다섯째는 홍바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다섯째부터 열두째까지 당시의 모든 보석이 열거됩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석들이군요. ...

계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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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5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각각 기록된 열두 기초석도 보석으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19절에는 네 가지가 나옵니다. 벽옥, 남보석(사파이어), 옥수, 녹보석(비취옥)입니다. 옥수(玉髓)는 낯선 단어인데, 보석의 일종으로 보면 됩니다. 정말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요한은 자기가 살아가면서 본 것 중에서, 그리고 상상할 수 ...

계 21:18

  • 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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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4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8절에 다시 벽옥과 정금(순금)이 나옵니다. 요한이 어디서 이런 건축물을 실제로 본 적이 있을까요? 사람은 건축물에 대한 욕망이 에로스처럼 강합니다.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빛나는 건축물을 향한 욕망 말입니다. 그런 건축물을 통해서 자기의 이름을 빛내고, 더 근본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가끔은 사랑하는 아내나 연인을 위해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건축물을 짓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

계 21:17

  •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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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3 21: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성곽은 144 규빗이라고 합니다. 1 규빗이 대략 50cm 정도니까 72m가 되는 셈입니다. 성곽, 즉 성벽의 전체 둘레는 물론 아니고, 높이이거나 두께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앞 구절에서 성체의 높이가 2,304km라고 했으니까 72m 높이의 성벽은 너무 낮아 보입니다. 144규빗은 성벽의 두께라고 보아야겠습니다. 그런 정도라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두께입니다. 옛날에는 철근 콘크리트 없이 순전히 기하학적인 기술로...

계 21:16 [9]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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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2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거룩한 성에 대한 묘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위 16절을 문자 그대로 생각해봅시다. 거룩한 성은 정육면체이거나 피라미드 모양의 탑입니다.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12,000 스다디온이라고 합니다. 1스다디온은 192m라고 하니(계 14:20) 자그마치 각각의 길이가 2,304km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저런 크기의 성 앞에서는 높이가 대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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