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8월16일

조회 수 683 추천 수 0 2020.08.17 20:37:17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816, 성령강림 후 11

 

1) 가나안 여자- 오늘 설교 중에 가나안 여자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오늘 교회력에 따라 주어진 성서일과(lectionary)셋째말씀인 마 15:21-28절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이 둘째말씀”(11:1-2a, 29-32)을 본문으로 한 설교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딱 들어맞는 복음서 이야기입니다. 같은 주제를 놓고 로마서는 신학적으로 해석했다면 마태복음은 스토리텔링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가나안 여자 이야기가 이번에 저에게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읽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늘 새롭게 말을 하는 게 맞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는다는 이방인 가나안 여자의 표현은 비굴한 게 아니라 가장 깊은 영성에 들어간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고백이자 외침입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새롭게 보일 겁니다. 저도 이런 고백으로 살고 싶습니다.

 

2) 확진자- 주말에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자칫 세계에서 모범으로 불리던 K방역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수도권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교회가 가장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대구 경북은 비교적 조용한 편입니다. 대구에서는 오늘(816)까지 지난 한 달 반 동안 지역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16일 중앙 질본에 잡힌 대구 1명은 실제로는 서울 거주자입니다. 우리 지역에 확진자가 나오지 않기는 하지만 전국적으로 상황이 나쁘게 흘러가서 걱정됩니다. 우리 교회가 현재는 현장예배와 온라인 예배를 병행하고 있지만, 다시 현장예배를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구샘터교회는 방역수칙을 잘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원래 소규모 모임은 없었고, 예배 중에도 찬송가를 크게 부른다거나 통성기도가 없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담임 목사인 저는 평소 원당 골짜기에 격리되어 살기에 확진자를 대면할 기회가 전혀 없다고 해야겠지요. 수도권에 확진자가 늘었다고 해서 정부가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정책을 펼치기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코로나19는 너무 강하게 치료하면 몸의 면역체계가 망가지고, 너무 약하게 치료하면 암세포를 제거할 수 없는 항암 치료와 비슷합니다. 적당한 수위로 대처하면서 조용해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허둥대지 말고 갈 데까지 잘 가봅시다.

 

3) 성경 읽기- 지난 토요일 아침에 성경봉독자인 방*수 집사에게서 문자를 받았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서 교회 주보를 보고 질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성시교독에서 ‘11-12이 아니라 ‘11-12인 것 같다고 말입니다.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보통은 정*진 장로가 교정을 볼 때 이런 거는 다 잡아내는데, 이번에는 놓친 걸 방 집사가 짚어냈습니다. 조금 후에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둘째말씀에서 ‘11:1-2()’‘11:1-2()’이 아닌가 하고요. 맞습니다. 이렇게 해서 주보는 깨끗하게 나왔습니다. ()이나 ()라는 표기가 간혹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한 절에서 어디를 끊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11:2()이면 “ ... 버리지 아니하였나니...”까지입니다. 방 집사는 그 뒤에 나오는 “ ...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까지 한 문장을 더 읽더군요. 우리말 성경의 번역이 애매해서 이렇게 착각할 수 있습니다. 예배 전 예배 담당자들과 인사하고 기도할 때 제가 확인했어야 했는데, 깜빡했습니다. 성경봉독하는 방 집사의 목소리가 좋더군요. 굳이 설교하지 않아도 봉독만으로 우리에게 은혜가 밀려들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4) 국악 찬송- 오늘 함께 부른 국악 찬송 <너는 기도했나>는 처음 대하는 찬송가입니다. 예배 전에 한 번 연습했어야 했는데, 제가 깜빡했다가 그 순서가 되어서 연습하지 못한 걸 알았습니다. 헤매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자연스럽게 불렀습니다. 잘 불러서 좋기는 한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멜로디가 어렵지 않았든지, 개인적으로 집에서 열심히 연습했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집에 오면서 제 아내가 그러더군요. , 설 집사 부부가 직접 불러서 그 파일을 교회 밴드에 올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지, 처음 대하는 찬송을 저렇게 익숙하게 부를 수 없었거든요. 이 국악 찬송가는 830일 주일에도 한번 더 부를 겁니다. , 설 집사, 수고 많았습니다.

 

5) 청양고추- 팔공산 뒷자락에서 텃밭을 가꾸는 이, 신 집사 내외가 청양고추를 한 광주리 가져왔습니다. 아마 일반 풋고추도 있었을 겁니다. 여러 색깔의 방울토마토도 보였습니다. 겉으로 봐도 윤기가 반짝거리는 게 완전히 보석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집사람이 청양고추가 필요하던 차에 잘됐습니다. 집에 와서 청양고추에 코를 대보니 매콤한 맛이 짜릿할 정도로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청양고추를 음식에 조금씩 넣으면 입맛을 돋우리라 기대됩니다. 교우들이 방울토마토와 고추를 조금씩 나눠서 돌아갔습니다. 두 주일 전에 찐 옥수수를 가져왔다가, 목사는 맛도 못 봤다는 말을 듣고 찰옥수수 세 개를 다시 쪄서 저의 집으로 보내준 집사가 계시네요. 저는 올해 처음으로 옥수수를 먹었습니다. 올해만이 아니라 수년 만에 처음인지 모르겠습니다. 고소하고 구수하고 짭짤하고 달콤했습니다. 내년에는 저도 옥수수를 마당에 심어볼까 합니다. 흙이 문제입니다. 돌이 많고, 진흙이라서 배수도 잘 안 됩니다. 처음 이사 와서 마사토를 넣기는 했지만 잘 안 바뀝니다. 사람이 잘 안 바뀌듯이!

 

6) 예배 후 풍경- 예배 후 교회 풍경이 어떤지 다 짐작하시겠지요? 저는 마스크를 다시 쓰고 현관에서 눈빛과 머리 숙이는 방식으로만 인사를 나눕니다. 악수는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주먹 악수를 나누기도 합니다. 교우들끼리도 서로 눈인사를 하고 교회를 빠져나갈 분들은 빠져나갑니다. 재정부장은 앞자리에서 헌금을 계수합니다. 요즘은 대다수 교인이 온라인으로 헌금하기에 계수하기가 아주 간단할 겁니다. 반주자는 사회자의 마지막 멘트가 끝난 뒤에 후주를 일정한 시간에 하고 내려옵니다. 동영상 담당자도 컴퓨터를 끄고 앰프를 끕니다. 마 집사가 동영상 담당자 이 집사와 의논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더군요. 저도 앞으로 가서 끼어들었습니다. 지금 여러 가지 선이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그걸 올려놓을 책상이 하나 필요하고, 칸막이도 필요합니다. 그걸 의논하고 있더군요. 사회자석을 다른 쪽으로 옮기는 게 좋은지도 잠깐 의논했습니다. 저는 온라인 예배 화면 구성에 관해서 의견을 냈습니다. 예배 준비위원들은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정 장로는 분무기로 소독제를 탁자에 뿌렸습니다. 제습기를 다시 돌리고, 타이머 선풍기도 돌립니다. 이런 장면들이 조금 진행되면 남은 교인들의 숫자가 확 줍니다. 마지막으로 운영위원장 정 장로가 교회 문을 잠그는 것으로 주일 공동예배의 모임이 다 끝납니다. 그 풍경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군요. 꿈이었는지, 실제였는지.

 

7) 광복절 집회- 보통 때는 예배 후에 몇몇 교우들이 남습니다. 그분들과 단골집인 칼국수 집에 가서 각자 취향대로 점심을 먹습니다. 비용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각자 냅니다. 식후에 헤어지기 섭섭하여 교회 1층의 카페로 가서 담소를 나누다가 집에서 저녁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에 흩어집니다. 보통 8-10명 사이의 교우들이 남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미리 흩어졌습니다. 저희 부부와 김, 성이라는 두 권사만 남았습니다. 오늘은 네 사람이 이전의 방식대로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두 60대입니다. 카페에 손님들이 없네요. 시원하고 조용합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어느 여자 성악가가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고 있습니다. , 성 권사들과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좋은 기회였습니다. 네 사람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설교 이야기, 교회를 그만 둔 신자들, 자식과 가족, 코로나19 문제, 대통령 지지율 하락, 대구 사람들의 정치 성향, 급기야 광복절 집회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훈 목사가 결국 일을 저질렀군요. 그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애국심입니다. 지금 대통령과 정권이 나라를 말아먹을 지경이 되었으니 자신들이 나서서 나라를 구하겠다는 주장입니다. 제가 보기에 애국심이라기보다는 애국심을 가장한 종교 장사, 또는 정치 장사라고 해야겠지요. 그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일정한 힘을 얻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극우 정치집단과 극보수 기독교 집단(광신자)의 결탁입니다. 대구 지역의 기독교인 중에 적지 않는 숫자가 이런 전 목사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사실이 유별납니다. 그 교회 집회에는 전국에서 신자들이 모여든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수준입니다. 전 목사가 목회하는 사랑제일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했습니다. 교인 4천명 중에 반이 검사받았는데, 감염률이 16%라고 하네요. 오늘 함께하지 않은 모 권사는 어느 모임에서 전 목사 행태를 비판했다가 오히려 핀잔을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후 4시까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차를 마시는 순간 말고는 계속해서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둡니다.

 

8) 불볕더위- 이번 주간은 불볕더위가 계속됩니다. 보통 겨울철에만 활동하는 독감 바이러스가 이런 불볕더위에도 기승을 부린다는 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전 바이러스와 완전히 다르다는 말이 됩니다. 딱 맞는 백신을 만들기도 힘듭니다. 오늘은 말이 나왔다면 제가 자꾸 코로나19로 돌아가는군요. 어쨌든지 교우 여러분, 올해 들어 가장 더운 한 주간이 될 테니까 각오하고 견뎌보십시오. 아프신 분들도 힘내시고요. , 딸 결혼을 앞둔 가정도 있군요. 이 소란한 시기에 준비가 잘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6개월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못 보거나 소식이 없는 교우들도 있으신 데, 무소식을 희소식으로 알겠습니다. 이 더위에 생업으로 쫓기는 분들을 생각하면 제가 너무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합니다. 다음 주일은 더위가 꺾이기 시작한다는 처서(處暑)라고 합니다.

 

9) 헌금: 83주차(816) 1,110,000(오프라인 10,000원 온라인 1,100,000: 등록교인 회- *)/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예수 어록(409) 요 21:5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1]

  • 2020-09-02
  • 조회 수 1222

예수 어록(409) 요 21:5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누가 읽어도 요한복음은 20장으로 끝난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요 20:30,31절에 분명하게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21장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의 제자가 훗날 보충했다고 보는 게 옳다. 그 내용은 예수의 부활 현현에 대한 제자들의 특별한 경험이다. 이 경험은 요한복음 공동체가 처한 삶의 자리를 반영한다. 예수가 디베랴 호수에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다는 말로 21장이 시작한다. 그 호수의 다른 이름은 갈릴리 호수다. 마가복...

예수 어록(408) 요 20:29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2020-09-01
  • 조회 수 1642

예수 어록(408) 요 20:29 너는 나를 보고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예수는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도마의 대답을 듣고 예수는 그 유명한 어록을 남긴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도마는 보지 못하고는 믿지 못하는 자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요한복음 기자가 도마의 믿음을 깎아내리는 건 아니다. 예수를 직접 보지 못한 요한복음 공동체에 속한 이들을 격려하는 발언이다. 오늘 우리도 예수를 직접 보지 못하지만 그를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로...

주간일지 8월30일

  • 2020-08-31
  • 조회 수 858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8월30일, 성령강림 후 13주 1) 호피소 무- 이번 설교에 가장 많이 나온 전문 용어는 “호피소 무”입니다. 호피소는 뒤(after)라는 전치사이고 무는 나(me)라는 인칭대명사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라.”라고 하신 말씀이나 이번 경우에처럼 “사탄이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말씀할 때나 똑같이 호피소 무를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를 책망하신 이 말씀을 본래의 의미에 따라서 정확하게 번역하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합니다. “사탄아, 나를 따라오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처음 제자로...

예수 어록(407) 요 20:27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 2020-08-29
  • 조회 수 1253

예수 어록(407) 요 20:27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는 도마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에 난 상처를 확인해보라고 말한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의 손에 못이 박혔다는 사실은 네 복음서가 다 말한다. 그러나 옆구리 사건은 요한복음만 전한다. 그 내용은 요 19:31-37절에 나온다. 유대인들은 로마 당국에 십자가 사형수들의 시체를 치워달라고 요청한다. 안식일이 다음날이니 시체를 십자가 형틀에 그대로 두는 건 안식...

예수 어록(406) 요 20:26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2020-08-27
  • 조회 수 1010

예수 어록(406) 요 20:26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도마는 의심 많은 제자로 알려져 있다. 그 근거가 요 20:24-29절이다. 도마는 예수를 보았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손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여드레가 지나서 예수는 제자들의 모임에 다시 나타났다. 첫 번 경우와 같은 점은 문이 닫혀 있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점은 도마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이번에도 평화의 인사를 먼저 전한다. 19절과 21절에 이어진 세 번째 인사다. “에...

예수 어록(405) 요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 2020-08-26
  • 조회 수 1778

예수 어록(405) 요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죄 용서라는 예민한 주제가 23절에 나온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말씀이 마태복음에도 두 곳이 나온다. 하나는 마 16:19절이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다른 하나는 마 18:18절이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죄를 사한다거나 그대로 둔다는 말...

예수 어록(404) 요 20:22 성령을 받으라.

  • 2020-08-25
  • 조회 수 1102

예수 어록(404) 요 20:22 성령을 받으라.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이어간다. “성령을 받으라.” 예수는 십자가 처형으로 세상을 떠나면 더는 제자들과 함께할 수 없다. 제자들은 이제 성령에 이끌림을 받을 것이다. 이에 관해서 요한복음 기자는 이미 고별설교인 16:1-24절에서 길게 설명했다. 체포, 고문, 재판, 십자가 처형이 다 지나고 세상을 완전히 떠나서 하나님에게로 갈 그 순간에 예수는 다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한다. 그 성령은 제자들을 진리로 이끌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기억나게 할 것이다. 이 성령...

주간일지 8월23일 file [2]

  • 2020-08-24
  • 조회 수 1221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8월23일, 성령강림 후 12주 1) 갈대 상자- 이번 설교의 배경을 이루는 모세 출생 이야기에서 출발은 태어난 지 석 달 된 모세가 갈대 상자 안(출 2:3)에 들어있는 장면입니다. 다른 때는 그 장면이 그냥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저의 마음에 강력한 인상으로 들어왔습니다. 아주 소소한 사물에 불과한 갈대 상자가 저에게 빛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만물을 하나님의 빛으로 만나는 경험입니다. 그게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

예수 어록(403) 요 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2020-08-22
  • 조회 수 2099

예수 어록(403) 요 20:2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는 손과 옆구리를 내보였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바로 그 사람이 자신이라는 뜻이다. 다시 평화의 인사를 건넨 다음에 파송 선언을 전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의 말과 행동은 그가 아버지라고 표현한 하나님을 원천으로 한다. 그는 세상의 권위에 위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권위나 산헤드린의 권위, 그리고 율법주의자들의 권위에서 벗어났다. 예수가 ...

예수 어록(402) 요 20:19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

  • 2020-08-21
  • 조회 수 1462

예수 어록(402) 요 20:19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두 번째 예수 현현은 요 20:19-23절에 나온다. 첫 번째 현현은 마리아라는 개인에게 일어났지만 여기서는 제자 집단에서 일어났다. 안식 후 첫날 저녁은 오늘 계산으로 주일 저녁 시간이다. 한 군데에 모인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잠갔다. 예수가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마리아가 예수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한 것처럼 이번에도 예수는 문이 잠겼는데도 그곳에 나타나셨다. 죽기 이전의 실질적인 몸으로 나타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예수는 평...

예수 어록(401) 요 20:17 나를 붙들지 말라

  • 2020-08-20
  • 조회 수 1214

예수 어록(401) 요 20:17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마리아!”라는 예수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마리아는 상대방이 누군지를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마리아는 그를 향해서 “랍오니!”라고 부른다.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우리에게 익숙한 랍비라는 단어의 친근한 호칭이 아닐까 추정한다. 마리아는 예수의 부활이라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게 아니다. 반가...

예수 어록(400) 요 20:16 마리아야!

  • 2020-08-19
  • 조회 수 983

예수 어록(400) 요 20:16 마리아야! 부활의 예수에게서 왜 울며, 누구를 찾느냐는 질문을 받고 마리아는 그를 동산지기로 착각했다고 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가족 묘지가 있는 공동묘지를 지키는 관리인이라고 말이다. 그럴 만도 하다. 그 이른 시간에 음산한 기분이 드는 그런 곳에서 낯선 여자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관리인 외에 누가 있겠는가. 마리아는 “당신이 무덤 안의 시신을 옮겼다면 그 장소를 알려달라.”라고 말했다. 경황이 없어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 이 말이 앞뒤 맥락이 맞는 건 아니다. 그 순간에 부활의 ...

예수 어록(399) 요 20:15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 2020-08-18
  • 조회 수 1004

20장 예수 어록(399) 요 20:15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19장으로 예수의 공생애는 끝난다. 예수는 여섯 시간 만에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다. 시간 계산은 마가복음의 보도에 의한 것이다. 예수는 “제삼시”(막 15:25)에, 오늘의 시간 계산으로 오전 아홉 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구시”(막 15:34)에, 그러니까 오후 세 시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고 숨을 거둔다(37절). 삼십 대 초반의 남자 유대인이 여섯 시간 만에 숨지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 예수가 왜 그렇게 빨리 숨을 거뒀는지 그 이유는 모...

주간일지 8월16일

  • 2020-08-17
  • 조회 수 683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8월16일, 성령강림 후 11주 1) 가나안 여자- 오늘 설교 중에 가나안 여자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오늘 교회력에 따라 주어진 성서일과(lectionary)의 “셋째말씀”인 마 15:21-28절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이 “둘째말씀”(롬 11:1-2a, 29-32)을 본문으로 한 설교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딱 들어맞는 복음서 이야기입니다. 같은 주제를 놓고 로마서는 신학적으로 해석했다면 마태복음은 스토리텔링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가나안 여자 이야기가 이번에 저에게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

예수 어록(398) 요 19:30 다 이루었다.

  • 2020-08-15
  • 조회 수 1046

예수 어록(398) 요 19:30 다 이루었다. 이제 한 인간으로서 예수는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그의 마지막 발언은 “다 이루었다.”이다. 이 발언의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는 간단하지 않다. 자기 인생이 여기서 다 끝났다는 것인지, 인류 구원을 위한 사역을 마쳤다는 것인지 말이다. KJV은 이렇게 번역했다. “It is finished.” 우리말 번역으로 28절에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을 아셨다고 말이다. 이를 KJV은 “all things were now accomplished.”라고 번역했다. 피니쉬는 일이 끝났다는 의미가 ...

예수 어록(397) 요 19:28 내가 목마르다.

  • 2020-08-14
  • 조회 수 1351

예수 어록(397) 요 19:28 내가 목마르다. 여전히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급기야 “내가 목마르다.”라고 토로한다. 신음인지 모르겠다. 옆에 있는 제자에게 물을 달라는 부탁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이 당하는 육체적 고통을 총체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십자가형(刑)은 로마 제국의 형벌 중에서 가장 극형에 속한다. 사형수를 T자로 된 나무틀에 묶어놓고 손바닥에 대못을 박아 세워둔다. 몸무게가 손바닥에 쏠리면 손바닥이 조금씩 찢어진다. 손바닥만으로는 몸무게를 버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손목에 못을 박으면...

예수 어록(396) 요 19:27 보라 네 어머니라.

  • 2020-08-13
  • 조회 수 1133

예수 어록(396) 요 19:27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는 곁에 있는 제자에게 말한다. “보라. 네 어머니라.” 이 제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요 13:23절에 따르면 예수는 이 제자를 특별하게 사랑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속마음을 이 제자에게 털어놓으신 것으로 보인다. 그 대목에서 예수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자기를 팔리라고 말한다. 제자들은 긴장했다. 베드로는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있는 제자에게 누가 예수를 팔 자인지를 묻게 한다. 그 제자는 그대로 따른다. 여기서도 이 제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요한복음을 ...

예수 어록(395) 요 19:26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2020-08-12
  • 조회 수 2818

예수 어록(395) 요 19:26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무죄 선고를 내리려고 했으나 유대인들의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속사정을 요 19:12절이 이렇게 전한다.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다. 공관복음서 기자들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책임을 빌라도보다는 유대교 당국자에게 돌린다. 그런데 사도...

예수 어록(394) 요 19:11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 2020-08-11
  • 조회 수 1222

19장 예수 어록(394) 요 19:11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이 진리에 관계된 것이라는 예수의 발언(37절)을 듣고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38절)라고 묻는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헬라어 성경의 표현은 “티 에스틴 알레테이아?”이고, 루터 성경의 표현은 “Was ist Wahrheit?”이고, KJV의 표현은 “What is truth?”이다. 라틴어 성경은 “Quid est veritas?”이다. 알레테이아, 바하이트, 트루쓰, 베리타...

주간일지 8월9일 file

  • 2020-08-10
  • 조회 수 894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8월9일, 성령강림 후 10주 1) 물 위 걷기- 오늘 설교 본문에는 물 위를 걷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는 예수님이 걸었고, 나중에는 베드로가 걸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공중부양하듯이 물 위에 떠서 베드로에게 “오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읽힙니다. 예배 후 일부 교우들과 담소하는 중에 베드로가 물 위를 얼마나 걷다가 물속에 빠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물에 뛰어들었을 뿐이지 실제로 걸은 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교우들은 베드로가 어느 정도는 걸은 게 분명...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