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3:15

조회 수 745 추천 수 0 2023.02.17 07:24:3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64

3:15

내가 네 행위를 나오니 네가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3:15절은 정말 유명한 구절입니다.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말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덩하다는 뜻이겠지요.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신앙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라는 거고요. 사데교회를 향한 충고와 비슷합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3:1) 4:2절에 나오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과 통하고,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21:34, 16)라는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요한이 그들에게 열광적인 신앙생활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신자들이 여전히 기본적인 신앙생활은 하고 있었겠지요. 그들의 인격이 수준 이하라거나 삶의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고요. 제가 보기에 신앙과 일상과 밀착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문제를 요한이 지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사실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게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길들었기에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를 실감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신앙심이 깊어 보이는 듯한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자였던 라오디게아 교회 신자들과 오늘 우리와 뭔지 모르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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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23.02.17 09:28:15

공동번역 [3:15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껍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새번역 [3:15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신앙의 첫 시작은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은 우주론적 큰 사건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던 것은 창조 사건의 처럼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자 이제 내 주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다시 태어나는 벅찬 기쁨 그 자체일테고요.

그 창조적 사건을 잘 간직하고 계속해서 그 만남을 이어진다면 이보다 더 좋을수 없겠지요.

우리 사는 세상도 조금은 더 달라질테고요.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를뿐.

교회도 인격으로 만나는 수준의 장(場)으로만 전락 한다면 타성적인 교회 활동과

부조리한 교회나 세상에 대해 눈감기만 할테고요.

하나님과 만나기 전의 예전사람과 별반 다들게 없겠죠.


예전 성찬식에서 보면 '주님은 죽으셨고, 주님은 부활하시고,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창조적 사건은 과거형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행형이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구원 사건은 다시 종말론적으로 완성 되겠고요.
제가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나 의심이 듭니다. ^^!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지적 해주셔요. 때론 죽비같은 믿음의 채찍질도 필요 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주님의 도움심을 늘 간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면 

인격적 교인으로 살아가야 하느냐는 선택 기로에서 멍하게 서 있을 뿐이겠지요.

선택의 기로에서 창조적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다시 걸어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에 제 길을 물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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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2.17 20:36:22

잘 읽었습니다. 새하늘님.

매 순간을 '살아있음'에 초점을 맞추고 산다면

비록 우리의 수준이 낮아서 주님께서 

의롭다고, 또는 제자라고 인정해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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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23.02.18 08:10:08

"차갑던지 뜨겁던지"

요즘엔 커피를 주문할때  "아아" "뜨아" 주세요. 라고 합니다^^

아아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뜨아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저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무조건 '뜨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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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3.02.18 20:22:52

ㅎㅎ 그렇군요.

저도 기회가 되면 한번 '뜨아' 주세요 말해보겠습니다.

저는 전형적으로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주변에서 그렇게 느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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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5:9 [4]

  •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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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91 5: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9절 문장에는 주어가 생략되었습니다.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앞에 ‘주님께서는’이나 ‘어린 양은’이 들어가야 합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당신’이라는 단어가 함축되었습니다.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라는 표현도 어떤 뜻인지 대략 느낌은 오지만 딱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새번역> 성경...

계 5:8 [4]

  • 2023-03-22
  • 조회 수 51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90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위 구절이 묘사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시겠지요. 어린 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두루마리를 전달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가장 초기의 신앙고백을 묵시문학의 관점에서 묘사한 것으로서 그가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뜻입니다.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 형상을 한 네 생물과 이십사 장...

계 5:7 [4]

  • 2023-03-21
  • 조회 수 45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89 5: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어린 양’(Agnus)은 문학적 메타포입니다. 광야에서 유목민으로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양은 아주 친숙한 동물이었습니다. 풀과 물이 풍부했던 애굽의 고센 땅에서는 소도 키웠으나 광야에서,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주로 양을 키웠습니다. 그런 삶의 자리에서 볼 때 고대 유대인들이 하나님 표상을 목자에게서 찾았다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일종의 유목민 신 표상인 거지요...

계 5:6 [3]

  • 2023-03-20
  • 조회 수 53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88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요한은 ‘어린 양’을 봅니다. 그 어린 양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9절에는 세례받으러 온 예수를 본 세례 요한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이 나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사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를 더 줄이면 라틴어 불가타 ...

계 5:5 [5]

  •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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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87 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유대 지파의 사자’라는 표현에서 사자는 ‘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심부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사자(使者)라고 생각했습니다. 원어를 찾아보니 예상 밖으로 정글의 왕인 사자(獅子)라고 하네요. KJV 성경에는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라고 나옵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가 다윗이라는 말인지, 다윗을 계승하는 예수가 바로 그 사자라는 말인지, 문...

계 5:4 [4]

  •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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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86 5: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요한은 울었다고 합니다. 인류 미래에 관한 대답을 얻을 수 없다는 답답함 때문에 울었겠지요. 사람들은 답답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울지 않습니다. 그냥 무덤덤하게 사는 겁니다. 자기 나름으로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니기는 합니다. 벌이 꽃송이에 파묻혀서 꿀을 빠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 벌은 곧 거미줄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고, 요행히 천수를 다한다고 하더라도 곧 죽음을 맞이합...

계 5:3 [4]

  • 20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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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85 5: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요한이 말하는 하늘 위와 땅 위와 땅 아래는 우주 전체를 가리키겠지요. 천체 물리학에 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던 성서 시대의 사람들은 자기들을 둘러싼 세상이 얼마나 높고 넓고 깊은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다.’라는 말은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이 완전한 비밀이라는 뜻입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앞으로 행하실 사건들이기에 완전한 비밀이라는 말은 당연합니다. ...

계 5:2 [4]

  •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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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84 5:2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일곱 인(印)이 열리는 이야기는 6장부터 시작합니다. 그 이전 5장에는 일곱 인을 뗄 자가 누군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천사가 등장하여 누가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인을 뗀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거든요. 인을 뗀다는 건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여러 전래 동화에 나옴 직합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 이야기...

계 5:1 [4]

  • 2023-03-14
  • 조회 수 62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83 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요한은 4장에서 초현실주의 작품이 연상되는 하늘 보좌를 묘사한 다음 이제 5장에서는 미래에 벌어질 사태가 기록된 두루마리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 요한계시록 읽기에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정말 이상한 이야기가 이어지거든요. 그걸 제가 충분히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되긴 합니다. 단테의 『신곡』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테는 지옥부터...

계 4:11 [4]

  •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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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82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4:9절에서는 특이한 형상의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린다는 표현이 나오고, 이제 11절에서는 이십사 장로들이 그분께서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영광과 존귀는 같고 감사와 권능만 다릅니다. 같은 뜻이겠지요.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이신 하나님께 ...

계 4:10 [3]

  • 202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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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81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9절에서는 네 생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더니 이제 10절에서는 이십사 장로들이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드렸다고 합니다. 네 생물이나 이십사 장로나 모두 똑같이 하나님을 보좌하는 신적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사들이 천상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듯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 땅에서 당연...

계 4:9 [4]

  • 2023-03-10
  • 조회 수 61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80 4: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네 생물이 하나님께 돌린 영광과 존귀와 감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바칩니다. 이를 주제로 하는 찬송도 많습니다. 영어로 각각 glory, honor, thanksgiving입니다. 세 번째 단어가 재미있습니다. 헬라어로 εὐχαριστία(에우카리스티아)라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성찬을 영어식으로 Eucharist(유카리스트)라고 하는데, ...

계 4:8 [6]

  • 2023-03-09
  • 조회 수 72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9 4: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여섯 날개가 있고 눈들이 가득한 네 생물이 밤낮 쉬지 않고 ‘ἅγιος’(하기오스)를 외친다고 합니다. 이사야도(사 6:3) 성전에서 천사들의 이런 합창 소리를 들었습니다. 중세기 미사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의 하나가 바로 라틴어 ‘상투스’입니다. 하나님께만 붙일 수 ...

계 4:7 [4]

  • 2023-03-08
  • 조회 수 54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8 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이 나옵니다. 사자와 송아지, 그리고 얼굴이 사람인 생물과 독수리입니다. 3절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를 벽옥과 홍보석 ‘같다’라고 했듯이 네 형상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이 네 생물을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겠지요. 셋째 생물은 사람 얼굴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바벨론 신화에 그런 형상이 종종 등장합니다. 상반신은 사람...

계 4:6 [3]

  • 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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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7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요한의 상상력은 대단합니다. 현대 초현실주의 화가나 소설가의 작품을 보는 듯합니다. 요한이 묘사하는 형상을 그림으로 그려도 예술 작품으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그는 보좌에 앉으신 이를 극한으로 높이려고 수많은 사물과 형체와 색깔과 생물들을 끌어들입니다. 그것이 각각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피는 일은 제 능력에서 벗어납니다. 저런 ...

계 4:5 [4]

  • 2023-03-06
  • 조회 수 66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6 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이제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존엄을 당시 가장 위력적인 자연현상으로 묘사했습니다. 2천 년 전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십시오. 번개와 천둥은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 겁니다. 누구도 하늘에서 내려치는 번개와 우렛소리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그런 현상이 지나기만 기다릴 뿐입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자연현상을 보면 두렵기는 하지...

계 4:4 [4]

  • 2023-03-04
  • 조회 수 73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5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하늘에는 보좌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이십사 개나 됩니다. 하나님이 앉으신 보좌를 둘러싼 보좌들입니다. 그 보좌에 이십사 장로들이 앉아있습니다. 장로들은 흰옷을 입고 금관을 썼다고 하네요. 보좌에 앉으신 이에 대한 묘사와는 다릅니다. 벽옥과 홍보석와 녹보석이 나오지 않고 흰옷과 금관만 나옵니다. 이십사 장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을 가리키겠지요. 이십...

계 4:3 [3]

  • 2023-03-03
  • 조회 수 67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4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가장 값지고 귀한 보석이 나열되었습니다. 벽옥, 홍보석, 녹보석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녹보석을 비취옥이라고 부르는군요. 비취옥 같은 무지개가 보좌를 둘러쌌습니다. 아주 환상적인 모습입니다. 본문은 보좌에 앉으신 이를 직접 벽옥과 홍보석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그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비유이자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직접 볼 수 없고 직접 경험할 수 없습니다...

계 4:2 [3]

  • 2023-03-02
  • 조회 수 63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3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보좌와 거기에 앉으신 이가 나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자리를 보좌라 부르고 하나님을 거기에 앉아있는 분으로 묘사했습니다. 하나님이 옥황상제처럼 묘사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말하려면 당시 사람들이 실감할 수 있는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이런 단어와 문장을 사실적인 것으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아직도 자신을 ...

계 4:1 [6]

  • 2023-02-27
  • 조회 수 76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72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요한의 가르침이 끝났습니다. 이제 요한계시록 특유의 묵시적 상상력이 발휘됩니다. 전체 42장으로 구성된 욥기가 1~2장과 마지막 42장의 서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내용이 친구들과 벌인 논쟁으로 채워졌듯이 요한계시록도 이제 대부분 내용이 이런 묵시적 상상력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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