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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삶의 확실성과 하나님 [2]

  • 2010-10-21
  • 조회 수 2301

삶의 확실성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는 어제 묵상의 마지막 단락에 대해서 오늘 보충해야겠소. 어제는 급하게 마무리하느라 비약이 있었던 것 같소. 우선 삶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경험이라는 것이 결코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오. 우리는 세상에 던져진 존재요. 세상 안에 들어와 버렸다는 뜻이오. 밥을 먹어야 하고, 자식을 낳고, 돈을 벌면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세상이오. 이런 세상의 밖을 우리는 모르오. 인간의 삶에 길들여진 우리는 나무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오. 고체, 액체, 기체를 사물...

주기도(14) [2]

  • 2010-08-02
  • 조회 수 230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 대한 앞서의 설명을 통해서 그대는 하나님에 대한 표상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소? 이것을 잊지 마시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명제는 우리 신앙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오. 한국교회 신자들은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경험하기만 바란다오.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그대도 대충 알고 있을 거요. 단적으로 한국교회에 이단이 자주 크게 발흥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신앙적인 특성에 놓여 있다오. 인간에게는 종교심이 있으니까 단순히 열광적인 태도만으로도 무언가 깊은 신앙경험을 한 것 같은 기분...

5월20일- “나를 따라오라!” (1) [2]

  • 2006-05-20
  • 조회 수 2300

2006년 5월20일 “나를 따라오라!”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난 2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의지해서 세속에서 이루고 싶었던 모든 삶을 포기하고 수도원으로, 오지로 떠난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인류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위인들의 어록에서 바로 이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말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명령문은 두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나’를 ‘따라...

삶(3)

  • 2013-09-11
  • 조회 수 2299

9월11일(수) 삶(3)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삶을 습관적으로 대한다. 좋은 습관도 있긴 하다. 공부 잘 하고 돈 잘 벌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좋은 습관들이다. 문제는 습관을 절대화하는데 있다.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고 의심해보지도 않은 채 그냥 그렇게 믿고 산다.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살면 된다. 다만 삶에 대한 참된 경험은 포기해야 한다. 삶에 대한 경험은 습관으로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습관에 충실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돌아갈수록 삶의 본질에서는 멀어질 염려가 있...

사순절 영성(4) [2]

  • 2011-03-22
  • 조회 수 2298

셋째, 사순절 기간에 신자들은 구제와 선행에 힘을 썼다. 바로 위에서 두 번째로 언급한 금식이 식욕이라는 인간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구제와 선행은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위한 생존 본능을 제어하는 신앙 태도다. 말하자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차원으로 영적인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이를 성만찬 영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빵과 하나의 잔을 형제애로 나눈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더불어 살아가려면 결국 ‘너’와 공동체를 배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2월8일 마가복음 후기(18)

  • 2010-02-07
  • 조회 수 2298

2010년 2월8일 마가복음 후기(18)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16:19) 승천에 이어서 ‘하나님 우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신자들은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하나님에게도 우편과 왼편이 있는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이런 표현들은 모두 종교적 메타포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에게 상대적 개념에 불과한 우편과 좌편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된 이 세상의 위치 개념에 제한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마가...

책읽기(7), 2월5일(화)

  • 2013-02-05
  • 조회 수 2297

어제 묵상 마지막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만 짚고 이 묵상 시리즈를 그만둬야겠다. 너무 상투적인 이야기처럼 들려도 이해를 바란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스승을 만난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렇다. 한 사람의 스승을 만나기도 힘든 세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책을 통해서 수많은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책 한권을 소화한다면 스승의 모든 사상을 다 받아들인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책은 세상에서 가장 싼 상품이다.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삶이 변화될 기회를...

모과

  • 2010-11-10
  • 조회 수 2297

집사람이 어제 모과 한 광주리를 사왔소. 아파트 앞 단골 과일점에서 샀다 하오. 과일점이라도 해봐야 거의 노점상 비슷하오. 대충 4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주인이오. 집은 하양에서 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와촌이라고 하는데, 과일장사 일로 매일 아파트 앞으로 출근하오. 과일점 주인의 고향집에 모과나무가 많은가보오. 약을 하나도 치지 않고 키운 고향집의 모과를 따다 파는 거라 하오. 집사람이 내 방에 두 개, 차에 두 개, 거실에 두 개, 안방에 두 개, 이렇게 배열했소. 지금 책상 위의 모과 한 개를 바로 컴...

주기도(10)

  • 2010-07-30
  • 조회 수 2297

아버지 표상이 보호자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기독교 영성의 차원에서 이해하려면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오. 하나는 우리의 삶이 아버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할 정도로 그 토대가 부실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사람에 따라서, 또는 상황에 따라서 생각이 다를 거요. 양쪽의 대답이 모두 가능하오. 어떤 사람은 잘난 척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말고 자기 주먹을 믿는다 하오. 액수가 늘어나는 저금통장과 주식, 그리고 부동산에 취미가 있는 현대인들은 주로 이런 생각을 많이 할 것이오. 어떤 사람은 매사를 ...

몰아내는 힘, 성령, 4월20일

  • 2006-04-20
  • 조회 수 2295

2006년 4월20일 몰아내는 힘, 성령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12) 마가복음 기자는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성령이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설명합니다. 그 성령은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하늘로부터 내려온 영이겠지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오순절을 성령 임재의 시기로 잡지만 예수님의 활동이 이미 성령의 주도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오순절 운운은 정확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굳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정당화하려면 예수님의 활동과 함께 했던 성령이 오순절에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구체화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

주기도(26) [2]

  • 2010-08-15
  • 조회 수 2294

-당신의 나라(6)- 어떻소? 하나님 나라에 대한 표상이 그에게 넓어졌소? 또렷해졌소? 그렇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는 마시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오. 구원과는 직접 연관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영성과는 연관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그림 감상과 비교해보시오. 윌리엄 터너의 그림 <Snowstorm>이 우리 앞에 있다고 생각하시오. 터너의 그림세계를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 중에서 누가 이 그림을 더 잘 감상할 수 있겠소? 물론 전이해가 없다 해도 직관력만 있으면 ...

6월24일 배신(1) [5]

  • 2009-06-23
  • 조회 수 2294

2009년 6월24일 배신(1) 열둘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14:10)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가룟 유다의 처음 등장은 제자 임명이 이루어진 막 3:19절입니다. 거기서 그는 이미 “예수를 판 자더라.”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이제 14:10절과 막 14:43절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모든 구절이 예수님을 팔았다는 사실과 연관됩니다. 마태복음 27:3절 이하는 유다가 자기 행위를 후회하고 목매달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첨가합니다. 물론 마태복음만의 독립 전승입니다. 가룟 유다는 누군가요? 그...

종교개혁 494주년(20)

  • 2011-10-18
  • 조회 수 2293

이것들 위에, 참으로 이 모든 것들 위에, 믿음의 의, 혹은 기독교적인 의가 있다. 이 의(義)는 다른 모든 의로부터 철저히, 그리고 주의 깊게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외냐하면 위에 말한 의들은 이 의에 반대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황제의 법들, 교황의 법들, 그리고 계명들에게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며, 우리의 행위로 구성된 것들이며, 스콜라주의자들이 가르치듯이 ‘순전히 자연적 재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며, 은사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공로...

9월27일 생베 조각 [4]

  • 2006-09-27
  • 조회 수 2293

2006년 9월27일 생베 조각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인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막 2:21) 21절의 생베 조각과 22절의 새 포도주 이야기는 유대인들의 격언입니다. 성서 기자는 이런 격언을 통해서 예수님과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와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함께 묶어 놓으면 한쪽이 손상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손상되는 쪽은 유대교와 그 가르침입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면 얼마 안가 낡은 옷이 해어지고 말듯이 말입니다. 아주 리...

11월30일 열두 제자 (1)

  • 2006-11-30
  • 조회 수 2293

2006년 11월30일 열두 제자 (1)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막 3:13) 막 3:13-19절은 열두 제자를 부르고, 사명을 주신 사건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들이 바로 열두 사도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정확하지 않습니다. 열두 제자, 또는 열두 사도에 대한 내용도 복음서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그런 건 조금 복잡하고, 현재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접어두기로 하지요. 우선 예수님이 왜 제자들을 부르셨는지 잠시 생각해보시죠. 이 문제와 연관해서 우리는 세 가지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습니...

6월15일 귀신 제어 권능

  • 2007-06-15
  • 조회 수 2292

2007년 6월15일 귀신 제어 권능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막 6:7)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다고 합니다. 축귀는 예수님에게서 많이 발생한 사건입니다. 이제 제자들도 예수님의 이런 일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서에 귀신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성서시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오늘 우리보다 훨씬 신비로운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영의 작용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불치병은 그들의 ...

4월26일 귀신들린 사람 (22)

  • 2007-04-26
  • 조회 수 2292

2007년 4월26일 귀신들린 사람 (22)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막 5:18) 이곳을 떠나라는 마을 사람들의 요구를 듣고 예수님이 무슨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성서는 일절 말이 없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곳을 떠나라는 말이오, 내가 어디를 가든지 그건 내 자유이니 상관 마시오, 하면서 옥신각신했는지, 아니면 발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내면서 똥이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고 말씀하셨을까요? 아니면 오늘 성서본문의 묘사처럼 한 마디 말씀도 없이 그냥 타고 오...

2월3일 들을 귀 (6) [5]

  • 2007-02-03
  • 조회 수 2292

2007년 2월3일 들을 귀 (6)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막 4:9)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이 들어야 할 소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듣는지 오늘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음성학적인 차원에서 듣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들은 모든 실체가 드러날 종말에 일어납니다. 물론 성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진술하지만, 그것은 문학적 수사입니다. 자신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한 어느 시인의 노래...

주간일지 3월7일, 사순절 셋째 주일 file

  • 2021-03-08
  • 조회 수 2289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1년 3월7일, 사순절 3주 1) 십계명- <데칼로그> 영화를 설교 초반부에 소개했습니다. 옛날에 나왔던 <십계>라는 영화와는 내용도 다르고 관점도 다릅니다. <십계>는 볼거리를 제공한다면 <데칼로그>는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오늘날 십계명이 가리키는 그 삶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은 많습니다. ‘주기도’ 역시 준비가 없으면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인간 삶이 십계명에 다 담길 수는 없으나 십계명이 삶의 전체 방향을 제시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십계명은 오늘 우리가 놓인 ...

호모 사피엔스

  • 2017-06-27
  • 조회 수 2288

6월276일, 화 호모 사피엔스 지난 설교 도입부에서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정확하게 부르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한다. 호모는 ‘호모 섹셜리티’(동성애)라는 말에서 보듯이 ‘같은’이라는 뜻이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그 ‘호모’는 동물을 屬(속)으로 구분할 때 슬기로운 속에 속한다는 뜻으로 보통 ‘인간’을 가리킨다. 그냥 간단히 표현하자면 지금의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다. 예수의 정체성을 가리킬 때는 쓰는 개념이 있다. ‘베레 호모 베레 데우스’가 그것이다. ‘참된 인간 참된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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