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18)

조회 수 1014 추천 수 0 2019.09.26 20:44:27

거룩한 자가 되라!

이제 베드로전서는 예수 재림으로 인해서 주어질 은혜(구원)에 근거하여 교인들을 향해서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자가 되라.”(15)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16절에서는 레 11:44(19:2, 20:7 참조)을 그대로 인용한다. 거룩하다는 말은 앞에서 확인했듯이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니 피조물인 세상과 완전히 구별된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세상과 구별되거나 거룩해질 수는 없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다.

거룩해진다거나 구별된다는 말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거룩해지고 구별되는 삶이다. 예를 들어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칭의만 보더라도 분명해진다. 칭의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기에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난다. 세상에서의 인정은 재력, 학력, 신분 등으로 결정된다. 주변에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많으면 자신도 덩달아 수준 높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느낀다. 칭의 개념은 세상 사람과 삶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그게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창조론과 죄론에서도 기독교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삶과 구별된다. 기독교인이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말을 듣는 이유는 기독교 신앙이 왜곡되었다는 데에 있다.

실제의 삶에서 그런 신앙적인 삶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각자가 살펴서 깨닫고 선택해야 한다. 사람들이 물불 가리지 않고 돈과 학력에만 몰두할 때 기독교인은 일용할 양식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권력자를 두려워하고 부러워할 때 기독교인은 거부할 수 있다. 구별된 거룩한 삶의 극단은 순교다. 초기 기독교인 중에서는 순교자가 된 이들도 있었다. 우리가 실제로 순교자가 되는 시대를 살지 않지만, 그것도 은총이라면 은총인데, 기본적인 자세만은 순교자의 길을 가야 한다. 일종의 바알 숭배라 할 자본주의를 거스르려면 순교자처럼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억지로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깊이 들어갈 때만 그것이 가능하다. 예수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말씀이 우리에게 삶의 능력으로 다가올 때만 우리는 순교자 영성을 살 수 있다. 기독교인들을 성도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조: 바바 하리 다스 <성자가 된 청소부>(류시화 역)에는 평범한 삶에서 신적인 경지로 들어간 일곱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그중의 하나가 청소부 이야기다. 그 사람은 인생의 역정을 거쳐 마을 청소부로 산다. 청소를 통해서 그는 성자의 반열에 오른다. 일종의 도()를 이룬 것이다.

거룩한 삶의 한 특징이면서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관점의 하나는 자신의 실존을 나그네로 규정하는 것이다. 인사말인 1절에 이미 디아스포라 나그네라는 표현이 나왔다. 나그네는 반복해서 떠나는 사람이기에 늘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이 긴장은 양면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를 피곤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를 영적으로 각성시킨다. 나그네 실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오늘 죽는다고 하더라도 미련이 없어야 한다. 이게 쉽지 않다. 구도 정진의 자세를 잃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매 순간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게 바로 기독교인의 종말론적인 삶이다. 그래서 벧전 1:20절은 그 시대를 말세라고 표현했다. 나도 설교하고 글 쓰는 데만 머물지 말고 떠날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가 무한히 작아지는 것이다. 죽음이 임박해서는 자기가 살아있는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자기가 가벼워져야 한다. 이렇게 살아가려면 거룩한 두려움(누미노제)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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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nus Dei [1]

  • 201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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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0일 Agnus Dei 대림절은 예수 재림만이 아니라 초림을 포함하는 절기다. 예수 초림에 따라다니는 인물은 세례 요한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안드레는 원래 요한의 제자였다가 자기 형 시몬(베드로)와 함께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네 복음서가 다 언급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의 세례 건은 잘 알려진 사건으로 보인다. 예수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건 가능한 피하고 싶은 일종의 ‘불편한 진실’이었는데도 복음서 기자들은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세례 요한 추종자들이...

12월25일 그가 살아나셨다(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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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25일 그가 살아나셨다(8)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16:5) 어제 묵상에서 천사는 바로 고대인들의 하나님 경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경험은 확실한 겁니다. 확실하지만 직접적일 수 없는 하나님 경험을 고대인들은 천사를 매개로 설명했습니다. 위의 설명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말이 안 되는 거라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태초에서 종말에 이르는 전체 역사를 통해서만 그 실체...

누가복음 톺아읽기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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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199, 눅 9:1~6, 제자 파송 https://youtu.be/tJuTf-o3Fic

주간일지 2월27일 예수 변모 주일 file

  •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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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1), 3월23일 [7] [2]

  • 200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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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3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1> 한국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같은 이름의 교단만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복음’을 간판으로 내건 교단도 있습니다. ‘복음교회’가 그 교단입니다. 복음교회는 그렇게 보수적이지만도 않고 그렇다고 진보적이지만도 않은, 비교적 건전한 교단입니다. 복음을 간판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복음교회보다 훨씬 더 복음이라는 단어와 밀착된 교단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가 그 교단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회도 나뉘어졌기 때문에 지금 제가 정...

마사토 fil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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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사토 2톤을 구입했다. 마사토는 1톤 짜리와 2.5톤 짜리를 살 수 있다. 1톤 트럭은 7만원, 2.5톤은 12만원이다. 우리집은 당연히 2.5톤 짜리를 사야하는데, 앞마당까지 들어오기에는 2.5톤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1톤 짜리 두 차를 샀다. 마사토 가격이 14만원에다가 10% 부가세 별도, 합계 154,000원이 들었다. 이렇게 가격까지 말씀드리는 이유는 다비안들께서 참고하시라는 뜻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마사토를 구입한 이유는 앞마당에 화단으로 꾸며볼 생각에서였다. 우리집 마당은 돌과...

3월9일 데나리온 [5]

  • 200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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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9일 데나리온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12:16)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싶다는 바리새인들과 헤롯파 사람들의 요구는 어느 쪽의 대답을 하든지 시빗거리가 되었습니다. 바치라고 하면 율법을 범하는 것이며,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법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함정에 빠지게 하는, 참으로 비열한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 자체가 비열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문제로 시시비비 말...

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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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0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술로부터 복음서 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우리를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하게 만듭니다. 우선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으로 존재하는 성서의 하나님이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하는 헬라 신화의 여러 신들처럼 자식을 두었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낙타털 옷, 4월6일

  • 200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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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6일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막 1:6) 낙타털 옷 마가의 설명에 따르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고급 모피코트를 입은 멋쟁이군요. 동물애호가들이 이 구절을 읽으면 요한이 활동하고 있는 광야로 나가서 데모를 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가 누군지 아시죠? 하나님이십니다. 선악과 사건 이후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과 이브에게 야훼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성서에 ...

10월30일 제삼시

  • 200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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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30일 제삼시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15:25)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을 ‘제삼시’로 못 박습니다. 오늘의 시간으로 오전 9시입니다. 제육시, 즉 낮 12시에 온 땅에 어둠이 깔렸고(막 15:33), 제구시, 즉 오후 3시에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지르며 운명했습니다.(막 15:34, 37) 마가복음의 이런 연대기적 진술은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을 말하지 않고 대신 어둠이 깔린 낮 12시와 예수님이 운명하신 오후 3...

결혼예식 기도문 [2]

  • 201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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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8일(금) *내일 대구샘터교회 남청년이 구미에서 결혼한다. 신부가 경북 구미에 살기 때문이다. 관례대로 신부측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주례를 감당하시고, 나는 기도를 맡았다. <매일 기도하라>에 이미 쓴 결혼 기도문을 기초로 해서 다시 살을 붙였다. 혹시 결혼예식에 기도할 기회가 있는 분은 내 허락을 미리 받지 않아도 이 기도문을 사용하실 수 있다. 오석원, 윤성희 결혼예식 기도 주님, 꽃처럼 아름다운 신부 윤성희 자매와 늘 푸른 나무처럼 듬직한 신랑 오석원 형제가 지금 여기 부부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많은 증인들 ...

오순절 마가 다락방 [2]

  •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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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 오순절 마가 다락방 어제 성령강림절 설교 본문은 행 2:1절 이하에 나오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 이야기였다. 바람, 불, 방언 현상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나마 설교 시간에 했으니,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하자. 120명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는 말은 100% 정확한 거는 아니다. 120명은 행 1:15절에 근거한 것이고, 마가의 다락방은 행 1:13절과 행 12:12절에 근거한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이 아무리 커도 120명이 들어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에 교회에 모이는 숫자는 들쑥날쑥하지 않았겠는가. 장소도 경우...

예수 그리스도 (막 1:1), 3월21일 [5]

  • 2006-03-21
  • 조회 수 10610

2006년 3월21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어떤 사본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루터는 1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군요.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사본에 따라서 성서의 내용이 아주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들쑥날쑥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현재 발견된 수천 개에 이르는 사본 중에서 동일한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 3월22일 [2]

  • 2006-03-22
  • 조회 수 10572

2006년 3월22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성서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네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분적으로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열두 살 때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출가한 후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러 체포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소위 공생애가 핵심입니다.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1년여, 길게 잡으면 2년여가 됩니다. 다른 종교창시자나 성인들과 비교할 때 전체 삶도 짧았을 뿐만 아니라 활동...

원당일기(70)- 창 file

  • 2020-09-18
  • 조회 수 10143

저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보냅니다. 건강에는 나쁘지요.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스트레칭을 합니다. 책상이 창 바로 옆에 놓여 있어서 창을 바라보는 시간도 상당히 깁니다. 제 방의 창이 마음에 듭니다. 오늘 하루 종일 설교 준비하다가 오후에 찍은 사진인데, 한번 보세요. 의자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대로 그대로 찍은 탓에 네모 반듯하게 나오지 않았네요.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진입니다. 밖이 밝으니 창틀이 어둡게 나왔습니다. 창 자체가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창을 통해서 보는 밖을 좋아하는 거겠지요. ...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 2007-06-23
  • 조회 수 9991

2007년 6월23일 발먼지를 털어내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막 6:11) 제자들이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규칙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했을 때 발먼지를 털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발먼지를 어떻게 털어내라는 것일까요? 발을 땅바닥에 대고 쾅쾅 울리라는 것인지, 아니면 발을 들고 신발에 묻는 먼지를 손으로라도 털어내라는 것인지, 무엇일까요? 이것은 그 당시의 일반적인 습관, 또는 격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

교회 일꾼들을 위한 기도, 11월20일(화) [1]

  • 2012-11-20
  • 조회 수 9844

주님,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최선으로 수고와 봉사를 아끼지 않는 일꾼들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당신께서 부르신 일꾼들입니다. 청지기들입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허투루 듣지 않고 영혼을 기울여 순종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교회 공동체가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땀은 바로 하나님의 땀입니다. 주님, 교회 일꾼들은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인간적인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오해와 시기심으로 인해서 ...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 조회 수 9620

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복음 (2), 3월24일 [4]

  • 2006-03-24
  • 조회 수 9618

2006년 3월24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2>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福音,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기록된 구약성서에서 볼 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출애굽과 바벨론포로 귀환입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이집트 땅으로 이민 갔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해야만 했을 고난,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질로 잡혀갔던 바벨론 제국에서 당해야만 했을 모욕이 그들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는 긴...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 2006-03-27
  • 조회 수 9546

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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