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23)

조회 수 1434 추천 수 0 2019.10.02 20:14:32

218-25 그리스도의 고난과 공의의 하나님

18)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사환이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공동번역은 하인이라고 번역했다. 18,19절은 오늘의 관점으로 보면 오해받기 쉽다. 특히 19절에 나오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참으면...”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오늘날은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면 당당하게 맞서는 게 옳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니까 한 가지만의 대답으로 해결할 수 없다. 베드로전서가 기록되던 시대는 하인이 저항할 방법이 별로 없었다. 저항하다가 오히려 더 큰 화를 당할 수 있었다. 베드로 사도는 기독교인이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기보다는 더 큰 화를 당하는 것보다는 참는 게 더 낫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 게 아닐는지.

이런 맥락과 비슷한 역사적 사건은 1524-1525년에 벌어진 독일 농민 전쟁이다. 30만 명의 소작 농민들이 영주의 군대와 싸움을 벌이다가 10만 명의 소작인들이 학살당했다. 끔찍한 일이다. 당시 소작인 농민들을 지지하던 종교개혁자는 토마스 뮌처이고 영주를 지지한 종교개혁자는 마틴 루터다. 이 사건에서만은 루터가 많은 이들에게 비판받았다. 루터가 종교개혁 과정에서 영주의 지원을 받았기에 영주 편을 든 게 아니냐고 말이다. 상식적으로만 보면 루터도 당연히 농민 편을 들었어야만 한다. 루터도 싸움 초창기에는 영주들에게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화하면서 루터는 더 이상의 살생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영주들이 농민들을 잔인하게 진압해도 좋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루터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발언했는지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한다. 루터는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뚫어보았을 것이다. 농민과 영주와의 싸움은 결과가 뻔했다. 대량살상으로 끝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뮌처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농민들 편을 드는 게 옳았는지, 아니면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주 편을 드는 게 옳았는지, 누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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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최용우

2019.10.03 08:06:58

누구는 옳고 누구는 틀리고가 아니라

뮌처나 루터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행동을 했으니 둘다 옳다고 봅니다.

양쪽에서 두 사람 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있을 했으니까요.

문제는 오늘날 나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고 아무 행동도 안하고 있다는 것이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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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9.10.03 19:55:21

최용우 님은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라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오히려 자유롭게 이쪽과 저쪽을 포함하여 '무위이무불위'의 삶을 살아내고 계시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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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하늘연어

2019.10.03 12:15:37

무슨 의미인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 논리가 궤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일용할 양식의 영성이 실존의 일상에서 참담하게 무너지고 마는 것도

결국 탐욕의 결과가 아닐까요? 


그리곤 말하죠. 개인의 영적 깊이의 문제라고.....,

틀린 말은 분명 아니지만.... 결코 쉽지도 않은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읽다 보면 참 따듯하고, 좋고, 힘이나고, 긍정됩니다.

목사님의 영성이 부러워지는 순간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제겐 감사할 일입니다.


부디 강건하시고, 오래오래 저희와 함께 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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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9.10.03 20:01:00

세월이 참 빠르네요.

대구성서아카데미 사이트가 열린지 벌써 15년이 되었군요.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아남을지가 궁금합니다.

여러가지로 혼탁한 세월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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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6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요한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절대적인 생명의 세계로 묘사하려고 온갖 묵시적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이미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나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반복해서 읽다 보면 하나님을 옥황상제나 임금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보좌도 임금이 앉는 최고급 의자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성경 문장은 메타포(은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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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2 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6절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모든 사람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영광(δόξα, glory)은 요한계시록에 흔하게 나오는 단어입니다. 요한계시록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리켜서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붙일 수 없는 개념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완전히 변화된 세상이라서 사람도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영광...

계 21:25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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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24 [2]

  •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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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23

  • 2024-04-17
  • 조회 수 14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9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요한은 해가 필요 없고 달도 필요 없는 세상을 내다봅니다. 빛이 필요 없는 세상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되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사 60:19-20절에서 이에 관해서 통찰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

계 21:22

  • 2024-04-16
  • 조회 수 14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8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2절에는 아주 특별한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겁니다. 성전 하나쯤 있어야 거룩한 성이 빛나 보일 텐데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라 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성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종교 건물이 없는 곳을 거룩하다고 이름 붙일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러나 요한이 본 거룩한 성은 그것 자체로 완벽하기에 성전은 없어도 ...

계 21:21 [2]

  • 2024-04-15
  • 조회 수 18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7 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12절에서 언급된 열두 문이 21절에서 다시 소개됩니다. 각각의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있습니다. 진주 한 알이 박혀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문 전체가 진주로 되어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문을 만들만한 크기의 진주는 세상에 없습니다. 문이 진주 모양을 했다는 뜻인가요? 그냥 편하게 진주로 된 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문에 이어지는 길이 나옵니다. 길은 ‘맑...

계 21:20

  • 2024-04-12
  • 조회 수 16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6 21:20 다섯째는 홍바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다섯째부터 열두째까지 당시의 모든 보석이 열거됩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석들이군요. ...

계 21:19

  • 2024-04-11
  • 조회 수 14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5 21: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각각 기록된 열두 기초석도 보석으로 꾸며졌다고 합니다. 19절에는 네 가지가 나옵니다. 벽옥, 남보석(사파이어), 옥수, 녹보석(비취옥)입니다. 옥수(玉髓)는 낯선 단어인데, 보석의 일종으로 보면 됩니다. 정말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요한은 자기가 살아가면서 본 것 중에서, 그리고 상상할 수 ...

계 21:18

  • 2024-04-10
  • 조회 수 14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4 21: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8절에 다시 벽옥과 정금(순금)이 나옵니다. 요한이 어디서 이런 건축물을 실제로 본 적이 있을까요? 사람은 건축물에 대한 욕망이 에로스처럼 강합니다.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빛나는 건축물을 향한 욕망 말입니다. 그런 건축물을 통해서 자기의 이름을 빛내고, 더 근본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가끔은 사랑하는 아내나 연인을 위해서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건축물을 짓기도 합니다. 성경에 나오...

계 21:17

  • 2024-04-09
  • 조회 수 15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3 21: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성곽은 144 규빗이라고 합니다. 1 규빗이 대략 50cm 정도니까 72m가 되는 셈입니다. 성곽, 즉 성벽의 전체 둘레는 물론 아니고, 높이이거나 두께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앞 구절에서 성체의 높이가 2,304km라고 했으니까 72m 높이의 성벽은 너무 낮아 보입니다. 144규빗은 성벽의 두께라고 보아야겠습니다. 그런 정도라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두께입니다. 옛날에는 철근 콘크리트 없이 순전히 기하학적인 기술로...

계 21:16 [9]

  • 2024-04-08
  • 조회 수 30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2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거룩한 성에 대한 묘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위 16절을 문자 그대로 생각해봅시다. 거룩한 성은 정육면체이거나 피라미드 모양의 탑입니다.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12,000 스다디온이라고 합니다. 1스다디온은 192m라고 하니(계 14:20) 자그마치 각각의 길이가 2,304km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저런 크기의 성 앞에서는 높이가 대략 ...

계 21:15 [2]

  • 2024-04-05
  • 조회 수 22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1 21: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자를 가졌더라 요한에게 말하는 자는 앞서 계 21:9절에 나왔듯이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입니다. 그 천사가 성과 문과 성벽을 측량하려고 합니다. 보통 자가 아니라 금으로 된 자막대기입니다. 요한은 거룩한 성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중입니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해도 재창조될 새 예루살렘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애벌레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비의 세계를 정확하게 경험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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