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28)

조회 수 912 추천 수 0 2019.10.08 21:27:37

신정론

무죄한 자의 고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기독교인들에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다. 간혹 병원 24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불의의 사고를 만난다거나 불치병에 걸려 투병하는 사람들 앞에서 무슨 이유나 위로를 제시하기가 힘들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장애를 가진 어린아이들을 볼 때는 더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의, 사랑, 전능과 같은 속성의 하나님 바로 그분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런 숙명적 고난의 이유를 해명할 길이 막막하다. 의롭지 않든지, 아니면 전능하지 않든지, 아니면 인간 세상의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무감정의 존재이어야만 이런 이유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직신학의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라는 주제로 어느 정도 대답을 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인리히 오트가 정리한 것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대답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을 향한 욥의 대답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무지로 말하였습니다. ... 당신에 대해서는 내가 듣기만 했으나 이제는 내가 당신을 눈으로 봅니다.” 즉 이런 궁극적인 고난에 관한 질문에는 하나님만이 대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는 십자가 신학의 대답으로써 악과 고난이 일어나는 그 현장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이런 논리로 집필된 책이다. 셋째는 부활신학의 입장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절대적 무의미성이라는 무로부터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넷째는 종말론적 대답으로써 마지막 날이 이르면 우리에게 밝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윤리적 대답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끊임없이 고난과 악에 대항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대답들이 나름으로 성서적, 신학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하나의 대답이 악과 고난과 무의미성의 모든 근원적 문제를 완전하게 풀어줄 수 없다는 점에서 이제 우리는 종합적으로 접근해 보려고 한다.

우선 이 세상은 여전히 비밀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게 좋을 듯싶다.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이라서 그런지 늘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것만을 참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의 인식 능력을 약간만이라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 없는 고난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그래서 신비한 현상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 위에 귤이 놓여 있다. 이게 무엇일까? 어디서 왔을까? 왜 이 시간에 내 앞에 있어서 나의 미각을 자극하는 것일까? 당연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하나의 귤이 완성되려면 태양과 물과 탄소가 물리, 화학작용을 일으켜야 하며, 어느 농부의 손을 빌려 이런 준비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 태양의 출처는 어디이며, 지구의 물과 탄소는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우리는 그 자세한 경로를 알지 못한다. 과학자들의 설명은 우리가 과학의 원리라고 생각하는 그런 범주 안에 들어온 현상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궁극적인 것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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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2:10 new

  • 2024-05-07
  • 조회 수 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3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요한은 두루마리를 ‘인봉하지 말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인봉이라는 단어는 계 5:1절에도 나옵니다. 거기에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편에 있는 두루마리가 나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인봉되었습니다. 아무도 그 두루마리의 인봉을 열지 못합니다. 어린 양만이 그 인봉된 두루마리를 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22:10절에서 언급된 두루마리는 인봉되면 안 됩니다. 이유는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계 22:9 new

  • 2024-05-06
  • 조회 수 4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2 22: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천사는 요한에게 자신을 경배하지 말라고 말립니다. 천사 자신은 요한과 마찬가지로 경배받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할 종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신출귀몰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지성이나 도덕성에서 존경받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경배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이들에 대한 경배는 우상숭배니까요.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

계 22:4

  • 2024-04-29
  • 조회 수 5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7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는 종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라(4절) 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걸 문학적으로 무엇이라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라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출 33...

계 22:5

  • 2024-04-30
  • 조회 수 6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8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불리면서 거룩한 성이자 새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그곳에는 밤이 없다고 합니다. 빛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빛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밤이 없다는 말은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악이 준동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 하나님’이라고 할 때 ‘주’는 그리스어 Κύριος(Lord)이고, ‘하나님’은 Θεὸς(God)입니다. 퀴리오스라는 ...

계 22:8

  • 2024-05-03
  • 조회 수 6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1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글을 쓴 이가 요한이라는 사실은 여기 계 22:8절만이 아니라 계 1:1, 2, 4절 등등에도 나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요즘도 영어 이름으로 ‘존’이 흔하듯이, 당시에도 흔해서 실제로 그가 누군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지도자로 활동하던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만 분명합니다. 그는 ‘보고 들은 자’라고 했습니다. 보고 듣는 행위...

계 22:6 [1]

  • 2024-05-01
  • 조회 수 9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9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6절부터 21절까지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제가 달렸습니다. 앞에서 묘사된 모든 묵시적 미래가 예수의 오심으로 실현된다는 뜻이겠지요.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라도 해도 괜찮았을 텐데 선지자들의 영이라는 표현을 ...

계 22:7 [2]

  • 2024-05-02
  • 조회 수 10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0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내가 속히 온다.’라는 문장에서 주어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추정되기는 하나 문맥으로만 보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지금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에게서 말을 듣고 그가 보여주는 환상을 따라가는 중입니다. 이런 문맥에서만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천사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전체 관점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락에서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

계 22:2

  • 2024-04-25
  • 조회 수 13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5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 나무가 하나의 품종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열매를 맺는 나무를 포괄하는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생명 나무 열매를 먹고 살겠지요. 매력적입니다. 과일만으로도 영양 공급이 충분할 테니까 말입니다. 육식을 즐기는 분들은 에덴동산도 그렇고 여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계 22:3 [2]

  • 2024-04-26
  • 조회 수 16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6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요한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절대적인 생명의 세계로 묘사하려고 온갖 묵시적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이미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나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반복해서 읽다 보면 하나님을 옥황상제나 임금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보좌도 임금이 앉는 최고급 의자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성경 문장은 메타포(은유)이...

계 21:27

  • 2024-04-23
  • 조회 수 16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3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27절에 다시 생명책 이야기가 나옵니다. 생명책에는 구원받을 자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적히지 못한 자들은 이 세상의 악한 권력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계 13:8절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그들은 구원에서 영원히 제외...

계 22:1

  • 2024-04-24
  • 조회 수 16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4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우리는 이제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까지 왔습니다. 22장에서도 요한은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를 통해서 묵시적 환상을 경험합니다. 생명수의 강은 창 2:10-14절 내용과 연결됩니다. 창세기가 전하는 에덴동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이 아니라 여러 줄기의 강이 나옵니다. 첫째 줄기의 강은 비손이고, 둘째는 기혼이며, 셋째는 힛데겔이고, 넷째는 유브라데입니다. 창세기...

계 21:26

  • 2024-04-22
  • 조회 수 17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2 21: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6절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모든 사람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영광(δόξα, glory)은 요한계시록에 흔하게 나오는 단어입니다. 요한계시록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리켜서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붙일 수 없는 개념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완전히 변화된 세상이라서 사람도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영광...

계 19:19

  • 2024-02-19
  • 조회 수 18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9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지금 요한은 계속해서 묵시적 환상에 사로잡혀서 글을 쓰는 중입니다. 묵시적 환상이라는 표현이 어떤 이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세계관으로 비칠 겁니다. 하늘 보좌, 무저갱, 용, 짐승, 천사, 천군 등등이 등장하니까요. 비록 신화적인 용어가 사용되기는 하나 묵시적 환상은 아주 분명한 역사 인식이고 세계관입니다. 글쓰기 형식은 신화적이나 내용은 역사적이라는 뜻입...

계 19:18

  • 2024-02-16
  • 조회 수 18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8 19: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8절부터 새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끔찍한 명령이 내립니다. 모든 사람의 살을 먹으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모든 자’는 실제로 모든 사람을 가리는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지 불분명합니다. 아마 후자겠지요. 어쨌든지 새들이 사람의 살을 먹는 풍경은 끔찍합니다. 우리가 볼 때 끔찍할 뿐이고 새들에게는 ...

계 19:21

  • 2024-02-21
  • 조회 수 18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1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검에 죽는다거나 모든 새가 나머지 사람들의 살로 배를 불린다고 표현한 19절은 섬뜩한 느낌이 정도입니다. 표현만 그렇지 실제로 그 문장이 가리키는 의미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심층적인 차원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 탄 자’의 검에 나머지가 죽는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심판받는다.’라는 뜻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온...

계 20:3

  • 2024-02-28
  • 조회 수 18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4 20: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당시 사람들은 천년을 세계 역사가 변하는 한 단위로 생각했습니다. 벧후 3:8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시 90:4절입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천년을 날수로 계산하면 365,000일입니다. 하루와 천년은 비교 자체가 ...

계 18:24

  • 2024-01-23
  • 조회 수 19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20 18: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요한이 묵시적 심판을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24절에 나옵니다. 이 말을 하려고 앞에서 동어반복으로 들릴 정도로 길게 심판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죽임을 당한 모든 자가 로마에서 피를 흘렸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목숨을 잃거나 박해를 피해서 고향을 등지거나 일자리를 잃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교 ...

계 19:10

  • 2024-02-06
  • 조회 수 19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0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요한은 천사에게 절하고 경배하려고 했습니다. 천사의 아우라는 우리를 무릎 꿇게 할만합니다.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 산악인의 심정을 상상해보십시오. 에베레스트의 위용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초라한지를 절감합니다. 등정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본격 등정에 나서...

계 19:5

  • 2024-01-30
  • 조회 수 19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25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보좌에서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보좌는 ‘하늘’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거룩한 존재가 거기에 있기에 지금의 생명형식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보좌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요한은 보좌에는 하나님이 앉아 계실 뿐 아니라 이십사 장로들이 앉아있다고 이미 4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장로들을 지금 한국교회에서 활동하는 장로가 아닙니다. 보좌에 앉...

계 19:20

  • 2024-02-20
  • 조회 수 19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0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열리면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힙니다. 그들이 더는 악한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짐승은 ‘무저갱’(계 11:7)에서 올라온 세력이라고 묘사할 수밖에 없는 악한 무리입니다. 계 13:1절 이하에는 짐승에 대한 설명이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뿔이 열이고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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